대한의학유전학회 전종관 이사장 인터뷰
국내 '유전자 진단 수준' 전 세계서 뒤지지 않아
희귀질환자 의료기관 접근성 미국보다 더 나아
유전의학 전문가 통한 '유전상담' 매우 중요
유전체 진단기술이 발달하면서 그동안 진단되지 않았던 희귀유전질환들이 하나둘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고 있다. 의학유전학이 그 중심에 있다.
의학유전학 분야는 의학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 중 하나이며, 의학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분야이기도 하다.
몸속 2만여개에 달하는 유전자를 통해 언젠가는 인간의 모든 병을 예측하고, 병이 오기 전 유전자치료를 통해 질병 없이 살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미래의학의 꽃이라 칭하는 '의학유전학'이 어디 만큼 와있는지 국내 의학유전학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대한의학유전학회 전종관(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이사장에게 들어봤다.
- 그동안 진단되지 않았던 희귀유전질환을 진단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고, 의학유전학 분야 연구도 활발해졌다. 국내 의학유전학 분야의 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궁금하다.
유전체 진단기술의 발달과 함께 국내 희귀질환의 유전자 진단 수준은 전 세계와 견주워 뒤지지 않는다. 국내 희귀질환이라고 예측되는 환자들의 의료기관 접근성도 미국 등을 비롯한 선진국보다 더 나은 상황이다. 소아의 경우 92.8%의 환자가 1년 안에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을 방문한다.
또한 최근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검사의 선별급여(일부 의료서비스를 선별해 본인부담금을 '급여'보다 높여 받는 제도. NGS 검사의 경우 50% 본인부담)와 함께 대학병원의 유전체 진단 기술 수준 또한 균일하게 상승해 적어도 알려진 희귀유전질환에 대한 진단은 어렵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다만 희귀질환 종류가 8,000종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하므로 각 유전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유전체 검사 결과를 정확하게 해석해 적절하게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과 전문적 지식이 있는 임상 의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술 향상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희귀유전질환 진료 영역은 시장 실패 영역이므로, 지속적인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과 사회적 인식 확대 등이 필요하다.
- 희귀유전질환의 경우 조금이라도 일찍 진단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안다. 치료제가 있다면 조기에 치료할 수 있고, 없다고 하더라도 대증요법 등을 통해 적절한 유지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희귀유전질환의 조기 진단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희귀유전질환의 경우 전반적으로 일찍 진단받은 것이 중요하다. 치료제와 치료법이 개발된 경우엔 당연히 조기 진단을 통해 일찍 치료할수록 질환의 중증도는 낮아지고 삶의 질이 달라진다.
또 비록 치료제가 없더라도 정확한 진단을 통해 불필요한 사회 경제적 비용과 환자 및 가족의 고통을 줄이고 적절한 대증요법을 시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추후 질환의 재발생을 예방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등 여러 장점이 있다.
조기 진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질환에 대한 조기 인식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의료 접근성이 우수한 편에 속하므로 전문의를 비롯한 의료인의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현재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권역별 희귀질환 거점센터 사업 등을 통해 권역에서 중앙으로, 또 중앙에서 권역으로의 의료전달체계가 원활히 이뤄지고 있으므로 이 제도가 좀 더 효과적이고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희귀질환 중 조기 진단이 심리적, 사회적으로 큰 충격이 될 수 있고 윤리적인 문제를 고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즉, 치료제가 개발돼 있지 않은 질환의 경우 증상이 전혀 없는 신생아 시기 등 너무 이른 시기에 진단되면 여러 가지 사회적, 윤리적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따라서 오랜 경험을 가진 임상의사를 비롯한 유전의학 전문가의 유전상담 등이 매우 중요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반드시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본다.
- 유전자검사 분야가 다양해지면서 일반인들에게 DTC 검사(Direct-To-Consumer·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환자가 할 수 있는 검사)가 규제 없이, 마치 물건을 사듯이 이뤄지고 있다. 의학유전학회 이사장으로서 현재의 DTC 유전자 검사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DTC 검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주고 유전적 성향 혹은 유전적 감수성에 따라 발생할 질환 가능성을 미리 알고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DTC 유전자 검사가 소비자에게 확실한 정보를 주지 못한다.
이 검사는 특정 형질에 대한 가능성의 추정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 소비자가 얻게 되는 정보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DTC 규정이 엄격하면 유전자 검사기관의 발전을 막는다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로 DTC 검사를 받고 병원에 결과지를 가지고 와서 그 의미를 설명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검사를 의뢰하지 않은 의사에게 검사 결과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의미가 있는 검사라면 의료기관을 통해서 검사하는 것이 소비자를 보호하고 유전정보도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게 하는 길이라고 본다. 그래서 학회는 정부 기관의 DTC 관련 자문이나 회의 등에 참석해 적극적으로 이 같은 의견을 개진할 계획이다.
- 희귀질환치료제 개발은 다른 치료제 개발에 비해 더 어려운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고, 국산 희귀질환 치료제가 만들어지는데 있어서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척수성근위축증의 치료제 개발까지의 과정을 보더라도 희귀유전질환의 치료제 개발은 단기간에 한 분야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영역이 아니다. 즉, 질환을 인식한 뒤 원인 유전자를 찾고 진단법을 고도화하며 이후 질환의 발생기전을 잘 밝히는 것, 또 여러 과학적 기술을 기반으로 동물모델을 개발해 전임상 시험(동물실험 수준의 임상시험)과 임상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까지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개발에 100여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될 만큼 어려움이 많은 분야다.
최근 유전체 기술의 급속한 발달, 데이터 사이언스(Data Science)와 정보통신기술 인프라(IT Infra)의 동반 발전이 유전자를 발견하고 질환의 기전을 밝히는 시간을 단축시켜 주고 있어서 고무적이긴 하나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는 환자들과 임상의사들의 열정과 노력, 기초과학의 학문적 깊이, 제약 및 산업계와의 협력, 정부 정책의 제도적 뒷받침 등 여러 분야의 협력이 뒤따라야 한다.
- 국내 의학유전학 분야가 좀 더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희귀질환 환자 및 연구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는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 중 하나가 유전상담사의 제도적인 정착이다. 유전상담사는 유전 관련 정보를 제공해 유전질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적절한 대응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인이다.
대한의학유전학회에서는 유전상담사 대학원을 인증하고 석사 과정을 마친 대학원생에 대해 시험을 거쳐 유전상담사 자격을 주고 있다. 2015년부터 의학유전학회에서 유전상담사 자격을 인증하고 있다.
유전상담사가 필요한 이유는 유전 관련 검사는 다른 검사보다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유전상담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유전상담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서비스 비용(수가)을 받을 근거가 없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의사 진료 중 이뤄지게 돼 충분한 상담을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고가의 유전자검사 비용을 감안하면 상담 과정에 좀 더 지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질병관리청 희귀질환관리과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해 현재 용역 사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의학유전학회는 충분한 자격을 가진 유전상담사가 국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 의학유전학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의학유전학회를 이끌고 있는 이사장으로서 대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의학유전학이란 유전학 중 질병과 관련된 유전학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학회 회원 중 많은 분이 의료기관에서 일한다. 의학유전학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분야로 학회 회원들은 우리나라에서 의학유전학 분야를 발전시켜서 더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바탕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밝혀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의학유전학과 관련된 내용들 중 왜곡되는 경우가 있는데, 정확한 정보를 알려드리기 위해 학회 차원에서 노력해 나가겠다.
- 국내 의학유전 발전을 위해 학회에서 앞으로 중점적으로 다루려는 현안이 있다면.
무엇보다 유전상담사의 제도적 정착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또한 최근에 유전질환 관련 지식이 늘어나면서 의학유전학 관련 교육이 필요해졌다.
학회에서는 의학유전학교육과정을 매년 갱신해서 제공하고 있고, 내년에도 새로운 모습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또 아직 우리나라에는 의학유전학 교과서가 없다. 현재 의학유전학 교과서 작업을 하고 있고 내년 하반기에는 출판될 것으로 예상한다.
- 마지막으로 <코리아헬스로그>가 암·희귀질환 등 중증난치성질환 전문매체로 정식 출발하는데, 새롭게 출발하는 <코리아헬스로그>에 기대와 조언할 말이 있다면?
우리 학회와 접점이 많을 것 같다. 중증난치성질환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서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매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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