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수포성표피박리증환우회 김영주 회장
“우리 아이들도 꿈을 키울 수 있게 해주세요”
장애가 있지만 장애인이 되지 못하는 환자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17일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한 여고생이 교육당국과 고신대병원의 배려로 수능시험을 치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장쇄 수산화 탈수소효소 결핍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던 그 여고생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인공혈관 등으로 링거를 맞아야 했는데 부모와 병원측이 요청한 입원실 시험이 허락되면서 무사히 수능을 볼 수 있었다.

최근 코리아헬스로그가 만난 수포성표피박리증환우회 김영주 회장도 딸 권새론 양이 초·중·고 진학할 때마다 학교며, 교육청이며 찾아다녀야 했던 그 때를 회상했다.

수포성표피박리증환우회 김영주 회장이 코리아헬스로그와의 인터뷰에서 딸 권새론 양이 앓고 있는 수포성표피박리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수포성표피박리증환우회 김영주 회장이 코리아헬스로그와의 인터뷰에서 딸 권새론 양이 앓고 있는 수포성표피박리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매년 학기 초가 되면 아이가 앓고 있는 수포성표피박리증에 대한 자료를 갖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선생님들도 저희 딸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면 교육청에도 갔어요.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우선 배정할 수 있게 요청하려구요. 의료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도 성장하면서 학교생활을 하며, 꿈을 키워가야 하잖아요. 학교가 집에서 멀어지면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은 학교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어요.”

‘수포성표피박리증’이란 유전적 결함으로 표피와 진피가 떨어지지 않게 고정하는 단백질이 결핍돼 가벼운 접촉에도 쉽게 물집이 생겨, 피부표피가 벗겨지는 희귀질환이다. 유형에 따라 ▲단순형(EB simplex) ▲연접부(JEB) ▲이영양형(DEB) 등 3가지로 나뉜다. 전세계적으로 17만명당 1명, 미국에서는 소아 2만명 당 1명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단순형 92명, 연접부 70명, 이영양형 92명 등 약 250여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치료제가 없어 피부 수포와 미란, 궤양 등 피부병변에 대한 상처치료와 2차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항생제 치료, 가려움증과 통증을 완화해주는 대증요법만 이뤄지고 있다.

단순형 수포성표피박리증의 경우 피부의 바깥층인 표피의 기저세포에 있는 케라틴섬유의 이상으로 기저세포층이 분리, 대부분 손바닥과 발바닥에 수포가 발생한다. 신체발육은 정상이지만 구강에 수포와 상처가 생길 경우 음식물을 섭취하기가 곤란해 빈혈과 영양부족으로 인한 성장장애가 동반될 수 있다.

연접부 수포성표피박리증은 표피와 진피 경계부 기저판 아래에서 층 분리가 일어나 수포가 발생한다. 태어날 때부터 피부에 광범위한 수포들이 생겨 쉽게 벗겨지고 극심한 통증이 동반된다. 상처가 나아도 흉터가 남고, 상부호흡기에 수포가 발생하면 호흡기도폐쇄 등 생명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영양형 수포성표피박리증은 표피의 가장 아래층인 기저층에 수포들이 생긴다. 넓은 부위의 피부에 수포들이 생기고 벗겨지며, 심한 통증을 초래한다. 유전형태에 따라 상염색체우성과 상염색체열성 유전형으로 구분되는데 열성 유전형의 경우 혀, 눈, 치아, 손, 발 등에도 이상이 생겨 더심한 증상과 후유증을 초래한다.

권새론 양은 수포성박리증 유형에서도 가장 예후가 좋지 않은 이영양형(DEB, 상염색체열성 유전형) 수포성표피박리증을 앓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코 밑에 생긴 수포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6개월 만에 강남세브란스병원 김수찬(피부과, 현 용인세브란스병원) 교수로부터 수포성표피박리증 확진을 받았다.

‘우리 아이에게 왜 이런 병이 생긴 걸까’ 생각도 할 새 없이 김영주씨와 그의 남편 권영대씨는 외국논문들과 블로그, 유튜브 등을 뒤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떻게 생활했는지, 드레싱은 어떻게 해주면 되는지, 손가락과 발가락이 휘어지고 붙게 될 때 응급조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익히고 또 익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죠. 저희 아이는 어렸을 때 발가락들이 붙을 것 같으면 저희가 발가락 사이사이 소독제를 붓고 잘라줬어요. 유튜브에서 응급조치하는 외국 사례를 본 적이 있었거든요. 완전히 협착되면 자를 수 없게 돼요. 지금도 많이 휘어있고 굽어있기는 하지만 초기에 잘 대응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다른 아이들도 우리 아이처럼 하면 된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케이스가 다 다르거든요.”

김영주 회장은 권새론 양이 그나마 빨리 진단된 경우라고 했다. 치료제가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빠르게 대증치료라도 할 수 있어 예후가 나쁜 유형이라도 현재까지 버텨 낼 수 있었다고. 권 양은 올해 초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다.

하지만 김 회장과 남편 권씨는 수포성표피박리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간다고 했다.

수포성표피박리증은 피부에 상처가 나는 질환이기에 감염에 매우 취약하다. 구강과 식도, 내부 장기도 모두 피부조직이기에 상처가 심해지면 생명을 장담할 수 없다. 구강이나 식도에 상처가 나면 음식섭취가 곤란해지고 영양 불균형으로 피부 재생력이 떨어진다. 재생력이 떨어지면 상처가 쉽게 낫지 않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이는 심장에 과부하를 주게 되어 결국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 250명 정도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수포성표피박리증환우회에 가입돼 있는 가족은 40가족에 불과하다.

수포성표피박리증을 앓고 있는 권새론 양의 아버지 권영대씨.
수포성표피박리증을 앓고 있는 권새론 양의 아버지 권영대씨.

“수포성표피박리증 환아들은 피부 이외에도 영양상태 등 전반적인 케어가 중요해요. 드레싱 외에도 단백질과 지방 등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줘서 피부 재생능력을 키워야 해요. 사람들은 이게 피부병이라고 생각하지만 단순히 피부만의 문제가 아닌 거죠.”

장애가 있지만 장애인 혜택은 못 받는 희귀질환자들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필요하지만 이들이 받는 정부 지원은 희귀난치성질환자 등록에 따른 산정특례제도가 전부다. 희귀질환 산정특례제도란 고비용이 발생하는 질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건강보험에서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비용을 10%로 낮춰주는 것을 말한다. 질병관리청 희귀질환자 의료비지원사업 등을 통해 추가적으로 소득을 기준으로 본인부담금을 면제 받을 수 있지만 이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는 항목 일부에 불과하며, 비급여 항목의 장벽은 여전히 높다.

수포성표피박리증 환자들의 경우 피부의 구축과 협착으로 손발가락이 휘거나 붙고, 관절의 운동 범위가 제한되어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도 많다. 조금만 부딪혀도 상처가 쉽게 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은 피하게 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권씨는 수포성표피박리증이라는 병명으로는 장애진단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분명 장애가 있는데 피부만으로는 장애등급을 주지 않아요. 그런데 저희 아이들도 한 두 달만 드레싱 하지 않으면 관절 구축과 손발가락 붙음증(합지증)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장애인 혜택을 받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하는 부모는 없죠. 손발이 다 묶였을 때 지원해 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선제적으로 장애인에 준한 지원을 해주면 이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와 영역이 넓어지고 결국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의료비지원 제도 있지만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는 환자들

김영주 회장은 가장 힘든 것은 역시 경제적인 문제라고 했다. 회원들 중에는 정규직으로 직장을 다니는 부모들이 많지 않다고. 맞벌이를 하던 부모들도 한명은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거나 개인사업이나 비정규직으로 돌려 환아를 돌보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했다.

“경제 활동에 매진하면서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아이에게 매달리면 아이는 좋아지겠지만 얼마 못가 그 집은 풍비박산이 나겠죠. 치료비를 걱정하지 않기 위해 경제생활을 유지하면 환아들의 예후가 안 좋아지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희귀질환 산정특례를 받는다고 해도 의료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가요. 진료비와 치료재료 일부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만 아이를 위해 꼭 필요한 재료들은 모두 비급여거든요.”

수포성표피박리증 환자들은 매일매일 드레싱을 해줘야 한다. 한 롤(roll)에 3만원이 넘는 화상환자용 거즈를 사용하다보니 아이가 크면 클수록 드레싱 비용이 만만치 않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일반용 드레싱 거즈가 있지만 상처가 악화되는 경우가 있어 대부분 화상환자용 거즈를 사용하고 있다. 한달 드레싱 거즈 구입비용만 100만원이 넘는다.

이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권양은 피부과 외에도 소아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내분비내과, 치과 등을 정기적으로 다닌다. 말 그대로 종합병원인 셈이다. 수포성표피박리증으로 인한 합병증에 기인하지만 피부과를 제외하면 대부분 산정특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희귀질환 지원정책 홍보 미흡…병원마다 치료비 제각각

정부가 희귀질환자들이 거주 지역 내에서 치료 및 관리, 질환 상담 및 교육을 통해 통합적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12개의 희귀질환 권역별 거점센터를 운영하고 희귀질환자들에 대한 각종 지원정책을 홍보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수포성표피박리증 3개 유형 가운데 연접부·이영양형 외 단순형은 지난해까지 산정특례 대상이 아니었다. 올해부터 단순형도 산정특례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산정특례대상에 포함됐는지 환자는 물론 병원들조차 몰라 진료비가 병원마다 차이가 생기기도 한다는 게 김 회장 설명이다.

드레싱 재료 중 ‘메피렉스 라이트’라는 패드의 경우 비급여에서 한달에 12장까지 급여가 됐다가 현재는 제한이 없어졌다. 그러나 김 회장은 그러나 지방의 A병원은 여전히 12장까지만 급여를 해주고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병원들이 안해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몰라서 그럴 수 있다”며 “희귀질환자를 받아본 적 없으면 모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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