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백민환 회장
창립 뒤 신약 급여화 목소리 내…그간 '5종 신약' 급여
“신약 접근성 확대 위해 약가 참조국 A9으로 확대를”

한때 희귀혈액암으로 불렸지만, 인구 고령화로 ‘희귀’라는 용어를 떼야 할 만큼 국내 늘어난 암이 있다. 혈액암의 하나인 다발골수종이 그것이다. 1990년 초반만 해도 다발골수종 환자는 한 해 100명가량 발생했다. 30년이 지난 요즘은 그보다 17배 많은 환자에게 발병하고 있다. 2021년 중앙암등록본부에 따르면 2019년 한 해에만 1,737명의 환자가 발생할 만큼 다발골수종 환자는 국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다발골수종은 백혈병·림프종과 함께 국내 3대 혈액암으로 꼽힌다. 이 암은 혈액 내 항체를 생성·분비하는 형질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골수에 축적되면서 골절, 빈혈, 고칼슘혈증, 신부전 등을 일으킨다. 재발이 잦고 치료 차수가 올라갈수록 치료 반응률과 반응 기간이 떨어져 과거 의학교과서에는 완치가 불가능한 암으로 분류됐지만, 현재는 치료 기술의 발달로 재발을 거듭해도 15년 이상 사는 환자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백민환 회장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백민환 회장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백민환 회장의 아내(66세) 역시 지난 2008년 5월 삼성서울병원에서 다발골수종 진단을 받은 뒤 재발을 네 번이나 거듭했지만, 현재 항암치료를 받으며 강건하게 생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가 진단될 당시만 해도 치료 옵션이 탈리도마이드와 벨케이드 등으로 좁았지만, 이후 꾸준히 국내 다발골수종 항암신약이 개발·도입되면서 국내 치료 환경이 점차 개선된 까닭이다.  

지난 2009년 12월 다발골수종 2차 치료제 레블리미드를 시작으로 포말리스트, 키프롤리스, 닌라로, 다잘렉스, 엑스포비오 등 치료 옵션이 5차 약제까지 꾸준히 국내 도입됐다. 현재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지 않았지만 기존 약들과 비교해 효과적인 다발골수종 항암신약이 개발되고 있는 상황도 고무적이다. 약이 있어도 환자 손에 닿기 어려운 여건들도 하나둘 개선돼 현재 국내 도입된 약 가운데 다발골수종 치료제 중 급여가 이뤄지지 않는 약은 5차 약제 엑스포비오 1종 뿐이다.  

잦은 재발로 '메디컬 푸어' 양산한 대표 질환 '다발골수종'

이 같은 치료 여건이 개선된 데는 다발골수종환우회의 목소리가 한몫 했다. 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질환 정보를 나누고 서로의 치료 경험을 나누던 전국의 다발골수종 자조모임이 2010년 10월 3일 대전의 한 식당에 자발적으로 모여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가 설립된 것이라고 백민환 회장은 설명했다. 백 회장은 “당시 신약 레블리미드가 나와 있었지만 한 번에 내야 하는 약값이 1,108만원에 달해 이 치료제를 쓰는 많은 환자들이 메디컬 푸어(medical poor)로 전락했고 결국 사회 최저계층으로 떨어져 약을 쓰지 못해 사망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회상했다. 

노후 준비로 마련한 아파트를 팔아 약값을 내고 전세로 이동한 다발골수종 환자가 재발로 다시 월세로 가고 또 다시 재발해 지하 월세방으로 쫓겨 가다가 결국에는 약값이 없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일은 다발골수종 자조모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고 한다. 백민환 회장은 “약값이 너무 비싸서 캡슐약인 레블리미드를 가위로 잘라 반만 먹는 환자도 있었다”며 “자조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약을 쓸 수 없다는 절박감 속에 서 있는 환우들과 함께 숱하게 울었다”고 그 당시를 떠올렸다.

대학에서 경제학 전공 뒤 당시 현대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일하던 백 회장은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다발골수종 환우의 남편이자 환우회 회장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보건복지부의 문을 차례로 두드렸다. 심평원 대표전화로 연락해 다발골수종환우회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며 면담을 요청해 환우 4명과 함께 면담을 한 것이 첫 시작이었다. 심평원은 환우회의 목소리를 듣고 복지부 약제급여 담당과로 이들을 보냈고 복지부에서는 심평원 업무라며 이들을 다시 심평원으로 보냈다. 핑퐁처럼 심평원과 복지부를 끈질기게 왔다갔다하면서 백 회장이 들은 최종 답은 레블리미드 급여를 위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백 회장은 이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다시 국회 문을 두드렸다. 114로 연락해 겨우 국회의원실과 선이 닿으면 국회의원과의 면담을 요청했고, 국회의원과 면담이 어렵다는 답을 들으면 전화 받은 보좌관이나 비서관들에게 면담을 요청하며 환우회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끈질긴 호소 끝에 백 회장은 어렵사리 두 명의 국회의원을 만나게 됐고, 2012년 레블리미드는 급여 첫 관문인 심평원의 급여평가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당시 유일한 다발골수종 급여 치료제인 벨케이드가 급여에 발목을 잡았다. 다음 급여 관문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약가 협상 과정에서 대체제로 벨케이드가 있기 때문에 레블리미드 급여가 어렵다고 한 것이다. 레블리미드가 벨케이드 주사 치료 뒤 내성이 생겨 쓸 수 없는 환자에게 쓰는 2차 약제라는 것과 치료제가 있는데도 경제적 이유로 레블리미드를 쓰지 못하는 상황을 이해시키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결국 레블리미드는 2014년 4월 급여가 이뤄졌다. 

백민환 회장은 “레블리미드 급여가 됐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레블리미드 급여되기 한 달 전에 돌아가신 환우분들이 무척 많았다”며 조금만 더 일찍 급여가 이뤄졌다면 살 수 있는 환우들이 많았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클 수밖에 없었다고 백 회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백민환 회장 
백민환 회장 

레블리미드를 시작으로 환우회의 활동은 더욱 왕성해졌다. 그해 8월 다발골수종 3차 약제 포말리스트가 국내 허가된 데 이어 2차 약제 키프롤리스와 닌라로가 각각 2015년 11월과 2017년 7월 국내 도입됐다. 4차 약제 다잘렉스와 5차 약제 엑스포비오도 각각 2017년 11월과 2021년 8월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획득하면서 다발골수종 환자의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치료제들이 속속 나왔다.   

모두 고가 항암신약이었기 때문에 환우회는 실제 다발골수종 환자의 손에 닿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했다. 환우회의 목소리를 들어준 국회와 정부, 언론의 역할에 힘입어 포말리스트는 2017년 1월, 키프롤리스는 2018년 2월, 다잘렉스는 2019년 4월, 닌라로는 2021년 3월 급여가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환우회 창립 뒤 레블리미드를 포함해 총 5종의 다발골수종 항암신약이 건강보험 급여가 된 것이다. 급여를 통해 다발골수종 환우의 치료 문턱은 크게 낮아졌다. 대표적으로 레블리미드 급여로 다발골수종 환우가 내는 한 달 약값은 급여 직전 약 600만원에서 약 30만원으로 떨어졌다. 낮은 치료 문턱은 환자의 수명을 늘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백 회장은 “오랜 시간 많은 분들을 만나서 설득하는 일을 했지만 진짜 환우들이 필요로 하는 약이었고 환우들의 요구가 컸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평했다. 

미충족 수요 높아 신약 꾸준히 개발…급여 문턱 여전히 높아

현재 다발골수종환우회는 엑스포비오 급여에 힘을 싣고 있다. 재발이 잦은 다발골수종 환자의 최후 보루로 써볼 수 있는 약제지만, 급여가 되지 않아 한 달 약값이 1,500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이 약을 쓸 수 있는 환자들이 현재 많지 않은 까닭이다. 약은 있어도 약값이 없어 약을 쓰지 못하는 상황은 미충족 수요가 높아 신약이 끊임없이 나오는 다발골수종에서 계속되고 있다. 

올해 엑스포비오는 급여 첫 관문인 심평원의 암질환심의원회에 급여 신청을 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엑스포비오 같이 대체제가 없는 신약이 국내에서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경제성평가면제제도로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선결 조건이 3개 이상의 A7 국가(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에서 등재가 됐을 때 가능하게 되어 있다. 현재 엑스포비오는 A7 국가 중 미국과 독일 2개 국가에 등재가 돼 있기 때문에 급여 논의가 불가한 상황이다. 

비단 다발골수종환우회만이 아니라 지금보다 필수불가결한 신약의 접근성 확대를 위해서는 약가 참조국을 지금보다 더 넓혀야 한다는 환자들의 목소리가 높다. 백민환 회장은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고자 최근 심평원에서 약가 참조국을 넓히는 안건에 대해 의견을 모았고 호주와 캐나다를 집어넣어 A9으로 설정했다”며 “신약 접근성 확대를 위해서는 약가 참조국이 내년부터 A9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주와 캐나다가 약가 참조국이 되면, 엑스포비오의 급여 심사도 가능해진다. 이 약이 호주에서 올해 급여가 이뤄졌고, 캐나다는 급여 권장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백민환 회장은 다발골수종 혁신신약인 탈구에타맙의 국내 도입도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 신약의 도입으로 그의 아내를 비롯한 많은 다발골수종 환우들이 더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얀센의 탈구에타맙은 올해 6월 미국에서 4회 이상 치료에도 재발한 불응성 다발골수종 환자에게 써볼 수 있는 혁신신약으로 지정받았다. 이달 초 얀센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 신청을 넣은 상황이고, 한국얀센은 내년에 국내 식약처에 허가 신청을 할 계획이다. 환우회는 이 약이 개발·보급된 그 어떤 약제보다 더 많은 다발골수종 환자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환우회의 목소리에 더 큰 힘을 싣기 위해 2019년 늦깎이로 보건학 석사과정(연세대 보건대학원)을 마쳤다는 백민환 회장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씻고 난 다음 하는 일이 네이버 검색창에 다섯 글자 '다발골수종'을 치는 일"이라며 "최신 다발골수종 약제 개발 상황을 업데이트해서 환우들이 희망을 잃지 않게 하고 실제 우리나라에 이 약제들이 신속하게 허가·급여돼 하루라도 더 빨리 환우들의 손에 닿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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