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환우회 김준 회장
1시간 5만~6만원 ‘인지치료’로 IQ 올려놓으면 지적장애 판정 못 받아
장애인복지법·고용촉진법 혜택서 제외…“질환 특성 반영한 판정 필요”
평생 의료 비용 드는 '희귀질환', 산정특례 본인부담비율 5%로 낮춰야

사진=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환우회 '희망둥이마을' 제공
사진=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환우회 '희망둥이마을' 제공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은 22번 염색체의 장완(한쌍의 염색체 중 긴 쪽) 11.2 위치에 생긴 미세결실로 인해 여러 증상들이 나타나는 증후군이다. 

선천성 심장병, 눈매가 좁고 눈이 가늘며 코가 뭉툭하고 사춘기쯤 광대뼈와 턱이 도드라지는 얼굴, 면역 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흉선의 형성부전, 입천장이 갈라져 있는 구개열, 경련을 유발할 수 있는 저칼슘혈증, 갑상선이나 부갑상선의 기능 저하, 탈장, 요도하열, 잠복고환, 신장무형성, 요관 이상, 근육긴장 저하, 수면무호흡, 위식도역류, 저신장, 척추측만증, 학습장애, 지능장애, 정신과적 이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은 다른 희귀질환과 마찬가지로 병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거의 모든 증상을 갖고 있는 아이도 있지만, 학습장애 수준의 증상만 보이는 아이도 있다. 가장 심각한 증상인 선천성 심장질환도 약 70%의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 환아가 갖고 있지만, 약 30%는 심장질환이 없다. 

지난 2010년 3월 태어난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환우회 ‘희망둥이마을’ 김준 회장의 둘째 딸은 이 질환으로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산전양수검사를 했지만 김준 회장은 딸의 병을 미리 알 수 없었다. 일반 염색체검사로는 22번 염색체의 장완 11.2 위치에 생긴 미세결실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산전초음파검사로 태아에게 심장질환이 발견된 뒤, ‘미세변이검사’를 해야 이 병을 발견할 수 있다.

태어난 직후 청색증과 호흡부전 증세로 김준 회장의 딸은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곧바로 인공호흡기가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이틀 만에 겨우 삼성서울병원으로 전원돼 태어난 지 일주일만에 심장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김준 회장 딸의 심장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었다. 폐동맥 폐쇄와 폐동맥판막 이상, 심장 중격 결손 등이 그것이다. 

수술이 끝난 뒤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의 권유로 염색체검사를 해서야 김준 회장은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이라는 딸의 병명을 알 수 있었다. 딸이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어서였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병명에 김준 회장은 인터넷 검색부터 했다. 그러나 이 질환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환우회 ‘희망둥이마을’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김 회장은 “그 당시에는 희망둥이마을의 존재 자체만으로 참 감사하게 생각됐다”며 “그곳에 올려진 글들이 희망이 됐고 향후 아이에게 일어날 일들을 예측할 수 있게 돼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태어난 지 두 달 뒤 일반병실로 온 딸의 병치레는 끝이 없었다. 모성면역이 끝난 생후 3개월을 기점으로 흉선 부전을 가진 아이의 낮은 면역력 탓에 온갖 병들이 찾아왔다. 건강한 아이에게 가벼운 병치레로 끝나는 모세기관지염 같은 병도 그의 딸에게는 가볍게 끝나는 법이 없었다. 

김 회장은 “제일 무서운 게 딸이 모세기관지염에 감염되는 것”이라며 “애가 모세기관지염에 걸리면 사경을 헤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후천 면역을 획득하면서 첫 돌 뒤에는 처음보다 절반, 두 돌 뒤에는 처음의 20% 수준으로 힘든 일들이 줄었다. 그는 앞으로 딸에게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걱정돼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에 대한 온갖 문헌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희망둥이마을 공식카페에도 꾸준히 업데이트하면서 같은 처지의 부모들과 정보를 나눴다. 

사진=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환우회 '희망둥이마을' 제공
사진=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환우회 '희망둥이마을' 제공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난 2012년 그는 희망둥이마을 2대 회장을 맡게 됐다. 서울아산병원에서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환우회 모임이 열릴 때였다. 2003년 희망둥이마을 카페를 공식 오픈하고 10년 간 회장 역할을 해오며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이 지난 2007년 9월 희귀질환 코드를 받는데 기여한 환우 A양의 모친이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김준 씨에게 모두의 눈이 쏠린 것이다. 

김 회장은 1년 간 다른 환우회처럼 ‘희망둥이마을’의 틀을 만들어 놓고 바로 다음 해에 바통을 넘기는 조건으로 회장직을 수락했다. 그러나 회장을 맡은 지 올해 10년이 넘었지만, 그 자리에서 아직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회장이 된 뒤 김 회장은 회원 자격을 정회원과 비회원으로 나눴다. 그리고 정회원 자격을 주면서 회비를 걷기 시작했다. 희망둥이마을 정회원은 현재 60여명이다. 그는 그 돈으로 여러 가지 일을 시작했다. 우선 이전 회장이 사비를 털어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회비를 내던 것을 월 1만원 씩 걷는 희망둥이마을 정회원 회비로 내는 토대를 만든 것이 김 회장이 첫 번째로 한 일이다.

또 질환 정보가 부족한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에 대한 소책자를 제작하고, 희망둥이마을 공식 모임인 가족캠프 등도 회비로 풍성하고 알차게 만들었다. 모인 회비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픈 것도 있다. 김준 회장은 “희망둥이마을을 비영리 법인으로 만들어서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사회복지사 2년 치 월급이 모아지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희망둥이마을을 비영리 법인으로 만들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후원을 통해 재정 인프라가 어느 정도 쌓여지면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 환우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인지치료, 언어치료를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아이의 성장은 축복할 일이지만,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의 증상인 인지장애, 언어장애 문제가 성장과 함께 두드러지게 되면서 많은 환아 부모가 공통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아이가 사회에 나가 외톨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환아 부모가 인지치료와 언어치료에 매달린다. 또래아이들 속에서 지능이 떨어지고 언어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인지치료, 언어치료에 대한 국내 공적 인프라가 부족해 주로 사설 기관을 통해 치료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사설 기관의 치료 비용은 인지치료의 경우 시간 당 5만~6만원에 달한다. 이 치료를 보통 일주일에 2~3회 하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설기관이 많지 않아 대기 줄을 서기 일쑤다.

김 회장은 “희망둥이마을을 법인화하고 법인을 통해 후원을 받아 직접 언어치료와 인지치료 프로그램을 만들고, 치료사들을 고용해 저렴한 비용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면 환우와 가족에게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희망둥이마을 회장으로 요즘 목소리를 내고 싶은 것이 있다. 아이가 사회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게 부모가 적극적인 인지치료 등으로 IQ를 조금 올려놓은 일이 아이가 정부의 취업지원 혜택에서 배제되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는 상황 때문이다.

김준 회장은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 아이들은 지능장애 문제를 갖기도 한다"며 "그래서 부모가 열심히 인지치료 등을 받게 해 IQ를 72로 올려놓는 것인데, 지적장애 판정(70점 아래) 기준이 부합되지 않아 장애인 복지법, 고용촉진법 등의 혜택을 못 받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회장은 "희귀난치질환 특성을 반영한 유연한 장애 판정이 앞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 아이들은 IQ가 69이든, 72든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점들이 반영돼 장애 판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산정특례제도에서 희귀질환의 의료비 본인부담비율도 암과 같은 수준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암은 진단 뒤 항암치료 기간에 집중해 의료비가 높지만, 희귀질환은 평생 의료비를 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더구나 희귀질환의 경우 특정 상황 속에 의료비 부담이 큰 치료가 필요할 때도 있어 지금보다 보장성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신생아 때 수술받은 딸 아이의 심장도 내년쯤 재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며 "폐동맥혈관을 성인이 됐을 때도 사용 가능한 큰 혈관으로 교체해야 하고, 20% 가량 역류돼는 폐동맥판막도 다시 성형해야 하는데, 이런 수술은 큰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심장수술만이 아니라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의 다른 증상들이 추가로 확인되면 그때마다 추가 치료가 필요하다. 김 회장의 딸은 지난해 척추측만증 증세가 나타나 올해부터 250만~300만원 선의 척추교정기까지 써야 한다.

김 회장은 "희귀질환은 한 개인이나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라며 "희귀질환에 대한 국가적 지원 확대와 사회적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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