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간질환환우회 민경윤 대표
건강한 B형간염 환자서 하루아침에 간암 환자 돼
적극적 검사로 2㎝일 때 조기 발견…“검진 중요해”
"간수치 정상이어도 항바이러스제 복용 필요하다"
바이러스는 암을 일으킨다. 인유두종바이러스(HPV)가 유발하는 대표적 암이 자궁경부암·외음부암·질암이라면, B형간염 바이러스(HBV·hepatitis B virus)와 C형간염 바이러스(HCV·hepatitis C virus)는 간암의 주범이다. B형간염 바이러스와 C형간염 바이러스 등은 한 해 1만5,000명 넘게 발생하는 국내 간암의 주요 원인이다.
암 치료율을 높이고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국가암검진 프로그램에서 B형간염 바이러스 항원·C형간염 바이러스 항체 양성인 만 40세 이상에게 6개월마다 간초음파검사와 혈청알파태아단백(AFP)검사를 무료로 해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7대 다발암인 간암을 조기 발견해 치료율을 높이고 사망률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간암은 다른 암과 달리 확실한 예방·치료 방법이 나와있다. B형간염은 백신이 나와 있고 바이러스 활성을 낮추는 수많은 항바이러스제가 시판돼 있다. C형간염은 백신은 없지만 진단만 되면 바이러스에 직접 작용하는 항바이러스제 8~12주 치료로 98% 완치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30년 C형간염을 지구상에서 퇴치할 수 있다고 선포한 근거다.
가장 문제시되는 상황은 B형간염·C형간염 바이러스 활성을 억제하지 못해 간경변에 이어 간암이 초래됐는데,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정기 검진마저 건너뛰어 간경변, 간암이 늦게 발견된 경우다. 국내 간암 수술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고, 다양한 치료기법의 발달로 수술 가능한 수준에서 발견되면 치료 성적이 좋다. 수술 뒤 25% 정도의 재발률을 보이지만 꾸준히 검진해 조기 치료하면 생존 확률은 높다.
하지만 수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간암이 발견되면 이 모든 게 소용 없다. 수술하기 어려운 간암의 경우 치료 옵션이 많지 않고, 최신 항암제로도 효과를 보는 환자가 많지 않다. 진행성 간암 환자에게 현재 처방되는 1차 표적항암제의 최고 반응률은 41%(렌바티닙)이고, 최저 반응률은 12%(소라페닙)다. 이 약들은 평균 생존기간도 짧게는 3.6개월(소라페닙), 길게는 19.2개월(아테졸리주맙+아바스틴) 늘려주는데 그친다.
간염, 간경변, 간암 등 온갖 간질환을 앓는 환우들이 4만명 가까이 모인 간환우협회 민경윤 대표(68세)는 스스로 운이 아주 좋은 간암 완치자이자 B형간염 환자라고 말한다. 그는 B형간염 바이러스 보균자 어머니로부터 출생과정에서 바이러스를 전달받아 평생을 B형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로 살았다. 6남매 중 두 형과 두 누나가 민경윤 대표처럼 수직감염됐고, 이중 두 형이 B형 간염에서 시작된 간경변으로 59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50대 초반에 사망했다.
당시 20대 중후반이었던 민경윤 대표는 자신도 형들처럼 60세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위기감에 그는 20대 후반부터 매년 꾸준히 간수치 검사를 해왔고, 그간 LG그룹·한국미쓰비시 계열사에서 근무하며 직장인 건강검진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받았다. 때론 1년에 두 번 혈액검사를 했지만 그의 간수치는 항상 정상이었다. 단 한 번도 간수치가 올라간 적이 없었고, 대기업 임원 건강검진에 포함된 초음파검사에서 나온 문제라고 해봐야 ‘거친 간’ 소견이 전부였다.
그의 간에 이상이 확인된 것은 은퇴 뒤인 2014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대장내시경검사를 받는 아내를 따라 갔다가 그 병원에 의사로 있던 선배가 온 김에 복부초음파검사나 한 번 하자고 권했단다. 그 검사에서 아주 작은 덩어리인 결절이 간에서 발견됐다. 그는 바로 세브란스병원으로 갔다. CT검사를 통해 그는 그간 아무 증상 없이 B형간염이 간경화로 진행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초음파에서 발견된 결절은 AP 션트(Aeterioportal shunt)였다. 간의 주요혈관인 간동맥·간문맥 끝부위 미세혈관이 비정상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뭉쳐져 결절로 보인 것이었다. AP 션트는 간조직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변에서 호발한다. 그는 꾸준히 혈액검사를 통해 간수치를 모니터링했는데도 B형간염이 간경변으로 진행된 것을 몰랐다는 사실에 나름 충격을 받았다.
간경변 진단과 함께 그는 항바이러스제 비리어드(성분명·테노포비르디소프록실) 복용을 시작했다. 이후 3개월마다 혈액검사로 간수치를 정기적으로 체크하며 약을 복용했다. 간경변 진단 1년도 되지 않은 2015년 10월 그의 요청으로 검사한 복부초음파에서 2cm 크기의 간암이 발견됐다. 간암 진단 직후 민 대표는 국내에서 간암 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 그해 11월 개복수술로 암을 떼어냈다.
이 경험은 그의 삶의 많은 것을 바꿔 놨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정기검진을 꾸준히 받았고 한 번도 간수치가 정상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간암 환자가 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간질환 블로그 등을 활용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공부한 것을 토대로 거꾸로 간질환 블로그들에 글을 올리고 답변을 달다가 책도 냈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2020년 5월 독자적으로 우리간사랑카페를 개설했고, 이 카페는 다음해 12월 말 사단법인 간환우협회로 탈바꿈했다. 현재 간환우협회에는 4만명 가까운 멤버가 가입해 있고, 한 달 1만원의 협회 회비를 내는 후원회원과 정회원도 25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가 간환우협회 계간지 행복나눔을 비롯해 그간 블로그와 카페, 책, 칼럼 등을 통해 수없이 쏟아낸 목소리는 두 가지로 축약된다. 만성 간질환이 있다면 정기검진을 잘 받고, 항바이러스제 치료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치료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민경윤 대표는 “간은 85% 망가질 때까지 증상이 없고 간염 환자는 간이 망가져도 혈액검사에서 간수치가 정상으로 나올 수 있다”며 “간수치가 괜찮기 때문에 괜찮은 줄 알았지만 간경화였기 때문에 간수치가 오르지 않았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고 씁쓸해 했다. 그래서 지금 그는 항바이러스제 전도사이자 정기검진 전도사가 됐다.
C형간염은 8~12주의 항바이러스제 치료만 받으면 간경변과 간암으로 이어지는 사슬고리를 끊을 수 있다. B형간염은 항바이러스제를 한 번 복용하면 평생 끊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간경변과 간암을 동시에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민 대표는 “때문에 만성 간염 환자들은 항바이러스제를 증상과 관계없이 복용해야 한다”며 "협회는 지금 만성 간염 환자들이 항바이러스제를 더 많이 복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협회 대표로 그는 더 많은 만성 B형간염 환자가 저렴하게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할 수 있게 보험 급여 처방 기준을 지금보다 낮춰줄 것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요구하고 있다. 이미 2018년 대한간학회 만성 B형간염 진료 가이드라인에서 만성 B형간염 환자의 정상 ALT 상한치가 40IU/L에서 남성 34IU/L, 여성 30IU/L로 바뀌었다.
만성 B형간염 환자에서 간질환 관련 사망률이 증가하기 시작하는 ALT 기준치가 남성 34IU/L, 여성 30IU/L로 최근 보고된 까닭이다. 이런 추이를 반영해 협회는 심평원에서 과거 항바이러스제 급여 기준을 정상 간수치의 2배 이상인 80IU/L 이상으로 설정한 것처럼, 남성 68IU/L 이상·여성 60IU/L 이상으로 급여 기준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만성 간염 환자에게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해주는 병원이 전국에 215곳에 불과할 만큼 간질환 전문의가 적고, 일선 병원에서 비급여로 만성 간염 환자에게 항바이러스제 처방을 꺼리는 까닭에 협회에서 항바이러스제 처방 가능한 병원을 알리는 일도 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민경윤 대표는 모든 간질환자가 적극적으로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아직 드러나지 않는 간질환 환자를 찾는데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경윤 대표는 “국내 간질환 진단과 치료 환경은 최고 수준이지만 잘못된 인식으로 간염 등의 질환을 숨기고 치료도 받지 않고 검사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며 “앞으로 오프라인 의료진 강의, 협회 게시글과 계간지 행복나눔 등 협회 활동을 통해 간질환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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