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골육종 환자를 수술하면서 나는 평균 어느 정도의 수혈을 할까? 전혀 관심 없던 수혈이 갑자기 궁금해진 적이 있다. 내 실력이 같은 직종 의사들의 평균이라고 가정하고 내 수술에서의 수혈률을 조사해 본 적이 있다. 평균 7파인트(파인트는 혈액백의 단위)를 써왔다. 조사한 시점이 2012인데 그때까지는 그랬다.
대개 이렇다. 골육종 환자는 통상적으로 진단 후 2회 정도의 항암치료를 받는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 그렇게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이 장에서 설명하기는 그렇고, 아무튼 그렇게 한다. 2차례의 항암치료를 한 뒤 수술을 할라치면 앞서 시행했던 항암치료 효과 덕분에 환자는 극심한 빈혈 상태에 빠진다. 항암제 효과로 인해 골수 기능이 급격하게 저하된 결과다. 정상 혈색소 수치가 통상 13~14g/dL라고 하면 수술 직전의 골육종 환자는 8g/dL 이하인 경우가 많다. 심하면 6.6g/dL까지 떨어진 적도 있다. 마취과에서 요구하는 수술 전 혈색소 수치는 대개 10.0g/dL 이상이라, 수술 전에 이미 2~3파인트를 수혈하게 된다. 보통 그 정도 수혈하면 10.0g/dL 언저리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수술 도중에 출혈이 있으니 또 2~3파인트를 수혈하고, 수술 후 며칠에 걸쳐서 지연 출혈이 계속되니 또 2~3파인트를 수혈하니 평균 7파인트를 수혈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2012년 이전에는 내가 하는 수술에서 수혈이 잘 못 되고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2012년 겨울, 우연한 기회에 스위스에서 충격적인 강의를 듣게 됐다. 과도한 수혈이 환자 상태를 나쁘게 할 수 있다는, 그리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수혈 치료 대부분이 과도했다고.
아니, 내가 그동안 골육종 환자를 치료하면서 했던 수혈이 과도했다고? 그리고 그런 과도한 수혈로 인해 염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컸던 것이라고? 다들 그렇게 하는데?
그랬다. 지금도 다들 그렇게 수술하고 있고, 의사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과도한 수혈이 환자의 치료 성적을 나쁘게 하고 있을 수 있다. 아니 단정적으로 말해 그렇다. 수술 전에 빈혈 상태를 교정할 방법도, 수술 도중의 출혈을 최소화하는 방법도 그리고 수술 후 지연 출혈 환자의 관리 방법도 이미 너무너무 잘 알려져 있는데 다들 관심이 없다. 알고 나면 얼마나 끔찍한 짓을 하고 있는지 간담이 서늘할 텐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2013년 이후 나는 대부분의 골육종 수술을 무수혈로 한다. 7파인트나 주던 수혈을 단 한 개의 혈액도 주지 않는다고? 그렇다. 가능하다. 혹시 내 종교를 의심하나? 종교적인 이유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종교적인 이유로 무수혈을 원한다면 예전과 달리 지금은 기꺼이 받아준다. 사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늘 불안했다. 그냥 예전 방식대로 할까? 그런 유혹도 있었지만 수혈의 문제를 알고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과거 자료를 보니 10살 미만의 아이들에게 무려 9파인트의 수혈을 한 적도 있었다. 우리 몸의 혈액양을 7~8%라고 본다면 10세 이하면 체중이 대개 30~40kg이고 혈액양을 추산해보면 2L~3L 정도? 그런데 9파인트를 수혈했다? 거의 다 갈아치운 것인데, 엄청난 일이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했으니 한심한 일이었다.
1년 전쯤이다. 연골육종이라는 종양이 골반 뼈 가득했던 성인 남성 환자가 있었다. 골반의 절반을 잘라내야 하는 수술인데 종교적인 이유로 무수혈로 수술해 달라고 한다. 참 곤혹스러운 일인데 어찌어찌했다.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하기는 했다. 무사히 수술실을 나오고 환자는 중환자실로 들어가서 치료하던 도중 결국 사망했는데, 환자의 가족들이 내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신앙의 신념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굳이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해도 불필요한 수혈은 많은 문제를 초래한다. 물론 생명을 담보로 무리하게 무수혈을 시행하는 것은 결단코 반대다. 그렇기는 하지만 불필요하게 수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사라면 자신의 의료 행위를 살펴봐야 한다. 왜냐하면 수혈은 어떤 식으로든 불가피하게 환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암 수술에서는 그렇다. 이미 확인된 정설은 수혈이 수술 후 감염과 사망률, 암에 있어서는 전이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 희한한 것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의사가 자기는 수혈 치료를 아주 아주 적절하게 한다는 것이다. 절대 그럴 리 없는데 말이다. 지금도 어느 수술실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수혈하면서 수술에 집중하는 의사들이 있을 것이다.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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