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암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국가 간, 인종 간 차이가 느껴진다. 문화적으로는 구소련 연방 국가는 대체로 비슷한데, 러시아, 몽골, 우즈벡 환자는 늘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초콜릿 선물을 잘한다. 그리고 반드시 다인실을 원한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
흔히 생각하기를 그 나라에서 아주 잘 사는 사람들이 올 것으로 생각하지만 최근에 오는 환자들은 꼭 부자라서 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자국에서는 평균 이상으로 사는 환자들이기는 하지만 자국의 의료가 워낙 신뢰를 못 주니 중산층에서도 치료 목적으로 들어온다. 이런 경우 경제적인 부담이 커서 다인실을 당연히 원한다.
몽골 환자들은 입국 시 식자재도 바리바리 싸 들고 왔었는데 요즘은 서울에서도 워낙 몽골 사람들이 많다 보니 식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어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 중동 환자는 질문도 많고, 걱정도 많고 주문도 많은데, 대신에 늘 선물을 한 보따리씩 가져온다. 그리고 반드시 1인실을 선호한다. 그것도 아주 큰 방을 원한다.
중동 갑부들이 오는 것은 아니고 중동에서도 중산층이 오기는 하는데 국가가 부자다 보니 모든 비용을 국가가 책임지니까 부담 없이 원한다. 연구된 바는 없으나 왠지 유럽 인종이 지혈이 잘 되는 것 같고, 통증도 잘 참는 것 같다. 구소련계의 환자들은 정말 지혈도 잘 되고 통증도 잘 참는데, 이상하게 중동 환자는 유독 통증에 예민한 사람이 많다. 엄청 많은 환자를 진료한 것은 아니니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경험상 그랬던 것 같다.
25세의 두바이 거주 여자 환자. 대퇴골에 골육종이 의심되서 미국, 영국, 독일을 거쳐 내게 왔다. 이미 두바이에서 두 차례 수술도 했는데 최종 진단명은 저등급의 골육종. 거쳐온 병원들에서 어떤 치료를 권유받았냐고 물어보니 미국의 메이요클리닉에서는 대퇴부 절단, 영국과 독일에서는 사지구제술을 권했다고 한다. 사지구제술이란 골육종이 있는 대퇴뼈를 광범위하게 떼어내고 인공 관절 기구를 삽입한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사지를 살린다는 그런 의미다.
극명한 두 가지 방법의 치료를 권유받으니 환자로서는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전 세계 최고의 병원인 메이요클리닉에서 절단술을 권한 이유를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지? 분명 절단할 상황이 아닌데, 왜 절단을 권했을까?
저등급의 골육종이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 두바이에서 수년 전부터 자잘한 수술을 받고 지금까지 지냈다면 악성도가 높은 골육종일 가능성은 매우 낮고, 그렇다면 절단술은 맞지 않는데, 왜 그랬을까? 메이요클리닉의 소견서가 있길래 확인해보니 분명 절단술을 권하고 있다. 당혹스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치료법과 그 이유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보낸 뒤 잊고 있었다. 설마 내게 수술해달라고 할까 싶었서였는데, 어라? 몇주 뒤에 다시 왔다. 내게 수술을 받고 싶단다.
왜 내게 수술을 받으려고 하냐니까 지금껏 만난 의사 중에 내가 설명을 제일 잘해 준 의사란다. 아, 놔 찜찜한데. 그놈의 메이요클리닉에서 절단술만 권하지 않았어도 부담없이 했을텐데, 수술 직전까지도 왜 미국의 의사가 절단을 권했는지 알지 못했다.
수술은 역시 어려웠다. 대퇴골을 상당 부분 잘라내고, 인공관절을 넣고. 그럭저럭 수술은 잘 됐다. 출혈도 적어서 당연히 수혈도 하지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연구실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는데 다급한 연락이 왔다. 병실에서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환자가 통증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한단다.
뛰어 올라가 보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통역은 쩔쩔매고, 환자의 가족들은 안절부절. 무통 주사도 달고 있지만, 추가로 진통제를 쏟아 붓고, 그렇게 이틀간 난리가 났다. 아프겠지. 뼈를 잘라냈는데, 그렇기는 한데 대개는 무통 주사 달고 진통제 주사 맞고 하면 대개는 고만고만한데 그야말로 이렇게 우는 환자는 처음이다. 그렇게 그렇게 온갖 하소연을 하고는 거의 3주간 입원해 돌보다가 퇴원했다.
그렇게 두바이로 갔다가 3개월 뒤, 6개월 뒤 다시 왔고, 이제 1년이 지났다. 내원 때마다 양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온다. 과자, 화장품, 가방, 넥타이 등등. 당혹스럽지만 선물은 무조건 챙겨오는데, 재발도 없고, 전이도 없고, 경과가 좋다고 설명해도, 수술 부위는 여전히 간간이 아프다고 하면서 운다. 아 정말 힘들다.
가족들은 매우 궁금해한다. 왜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지. 나도 궁금하다. 내가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환자가 통증에 민감한 것인지 몰라서 말이다. 이때 해 주는 말이 있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안 것이 있는데 중동 환자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말은 바로 겸손한 태도로 “인샬라(신의 뜻이라면)”라고 말한다는 것. 정말 그렇지 않을까? 의사인 나도 모르는 것이 있으니 말이다.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병원협회 산하 한국병원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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