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의 골육(骨肉)종 이야기]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한 해에 대한민국의 고독사가 수천 명이라는 TV 보도 프로그램을 봤다. 누가 고독사를 할까 싶은데 막상 개별 사연을 보니 저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나이 많은 노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최근에는 40대의 고독사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아 차 하는 순간에 경제적으로 무너지고 인간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중병마저 들면 어떤 사람은 바로 고독사로 가는 것이다. 개별 사연을 들어보면 멀쩡했던 사람이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이 노숙자 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다발성 골수종으로 치료받고 있는 60대 남자 환자가 있다. 항암 치료 도중에 좌측 어깨 관절의 골절이 생겨서 다발성 골수종에 의한 전이성 골절이겠거니 하고 협진 의뢰가 왔다. 수술이 필요해서 입원 장을 줬는데 당일에 입원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후로는 잊었다. ‘왜 그 환자가 입원하지 않았지?’라고 궁금해야 했는데, 늘 그렇듯 일에 치이고 다른 입원환자 챙기다 보니 아쉽게도 이런 일이 드물게 생긴다.
그 일이 있고 1개월 보름이 지난 바로 며칠 전 친구의 손에 이끌려서 환자분이 외래로 왔다. 지난번에 왜 입원을 안 했냐고 물으니 2인실 밖에 없다고 해서 당일에 입원을 못 했고 그다음 날 다인실이 났다는 연락은 받았는데 그냥 입원을 안 했다고 한다. 대단한 이유도 없다. 그냥 그랬다고 한다.
며칠 전에 본 고독사 문제가 떠올랐다. 아, 이런 식으로 고독사의 길에 접어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이 환자는 친구가 있어서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만일 챙겨주는 친구가 없었다면 아직도 집에 틀어박혀 있었을 것이고 상태로 봐서는 방치되면 한두 달 안에 사망했을 것이다.
서둘러 입원시키고 응급으로 MRI를 찍고, 조직 검사도 하고, 정신없이 뭔가를 하던 3일째 회진 때다. 침울하게 누워서 말도 없던 환자가 일어나 앉아서 웃으며 통증도 많이 완화됐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한다. 생각해보니 암 환자 한 분을 구한 게 아니라 고독사로부터 구출한 것인 것 같다.
암이 의심돼서 방문하는 환자의 모습은 참 다양하다. 몇 명의 가족에게 둘러싸여 오는 분, 부부만 오는 분, 그리고 늘 혼자 오는 분. 삶의 여정이 한순간에 다 드러난다. 암 진단을 받고 온 가족의 격려와 걱정 속에 치료를 마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단 한 번도 환자 이외의 가족을 만나본 적이 없는 분도 있었다. 별생각 없이 치료해 왔는데 이제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혼자 오시는 분들을 유심히 들여다봐야겠다. 자칫하면 암은 치료했지만 사람을 잃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병원협회 산하 한국병원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