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의 골육(骨肉)종 이야기]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50대 초반의 아는 동생이 동네 정신과의원에서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멀쩡한 친구가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고 비급여 약을 처방받았다고 하길래, 자세히 물어보니 뇌파 검사로 진단을 했다는 것이다. 요즘은 뇌파 검사로 치매 진단도 하나 싶어 신경과 의사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환자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수 있지 싶어 그 병원에서 가서 검사한 것을 복사한 다음에 의무 기록을 들고 종합병원에 가서 2차 소견을 들어보라 했다.
며칠 후 연락이 왔는데 동네 의원의 원장님이 화를 내면서 다시는 자기 병원에 오지 말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자기를 못 믿느냐는 그런 식이다. 뭐 새삼스럽거나 놀랍지도 않다. 전문가라는 족속이 대개 그러니까.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다. 종양을 전공하는 의사들은 아마도 나 같을 것이다. 환자가 다른 병원에 가보고 싶다고 하면 전혀 언짢지 않다. 왜 그러냐고?
암 환자 치료는 정말 예측 불가하다. 수술이 매우 잘된 것 같은데 재발이나 전이가 생기기도 하고, 수술이 다소 아쉬움이 있을 정도로 완벽하지 않았는데 완치가 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환자 한 분 한 분이 업’이라고 느낀다. 그러니 어려운 케이스의 환자가 재발되고 전이돼서 내게 실망한 나머지 다른 병원도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면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네, 당연히 그러셔야지요”라고 한다.
병적 골절로 다른 병원에서 수술한 뒤 내게 온 연골육종 환자가 있다. 이런 경우 재발은 불 보듯 뻔하다. 아니나 다를까? 수개월 간격으로 여기저기서 재발하는데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다. 이 환자가 진료 보러 오는 날이면 나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또 어디인가에서 재발했을 텐데, 이번에는 또 어떻게 수술하나? 면목도 없고, 답은 없고 그런 거다. 그러니 환자가 다른 병원 한번 가보고 싶다면 화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느 날이다. 다른 병원 한번 가보고 싶단다. 환자도 답답하겠지. 그러라고 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제가 안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거죠?”, “어떻게 알았지? 티나요?” 서로 이런 농담도 하는 사이다. “일단 가보고 올 거예요.” 그러라고 했다. 3개월 전이다. 그제다. 문득 그 환자가 생각났다. 잘 치료받고 있나? 그리고 그날 진료실에 나타났다. 대단한 촉이다. 나 정도 구력이면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나는 환자는 반드시 나타난다.
진료실에 들어오더니 대뜸 “다시 와서 실망하셨죠? 선생님, 저 포기하지 마세요.”
“그럼요, 제가 봐야지요.”
정년퇴직하기 전에는 할 수 없다. 다른 의사에게 한번 가보고 싶다는 환자, 절대 잡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라.
왜냐고? 다른 의사에게서 더 나은 치료를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의사와 환자도 인연이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 연륜이 쌓일수록 든다. 환자는 업이다.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병원협회 산하 한국병원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