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의 골육(骨肉)종 이야기]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골육종을 비롯한 암 환자 치료에 있어서 종종 맞닥트리는 어려움이 있으니 바로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여호와의 증인)가 있을 때다. 십 수 년 전에만 해도 잠시의 고민도 없이 이런 환자를 만나게 되면 단호히 자신 없다 하고 내쳤다. 그리고 지금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수혈을 거부하는 경우가 옳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종교적 신념은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필자는 2012년부터 최소 수혈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종교적인 관점이 아닌 과학적 관점에 근거한다. 즉, 과거 수혈의 문제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수혈은 좋은 치료라는 관점에만 매몰돼 있다가 지나친 수혈이 환자의 치료 성적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학설-Patient blood managemeht-과 지금까지의 수혈 방식이 과도했다는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해 내 환자에게는 최소한의 수혈을 통한 치료를 실행해 왔다.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 수술을 무수혈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의도한 바도 없는데 여호와의 증인 환자들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골육종의 경우 2013년 이후 지금까지 무수혈로 하고 있다. 수술의 방식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데, 환자 수가 많지 않아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은 아니지만, 과거 평균 6pints (혈액 6봉지)를 수술 전후에 사용했다면 현재는 일절 수혈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수술 후 그 흔하던 수술 부위의 감염은 단 한 건도 없고 환자들의 회복 속도는 훨씬 빨랐던 것 같다.

앞서 말했지만, 수혈은 수술 후 감염과 직결된다. 그래서 나름대로 만족하고 자긍심도 있는데, 문제는 이런 나로서도 무수혈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를 만날 때의 당혹감이다.

골반 골에 발생한 연골육종, 40대 남자환자가 있었다. 어찌나 종양이 큰지, 골반 골의 절반을 절단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정형외과 교과서에 특정 수술에서의 출혈량을 기술하지 않는데 이 수술만은 출혈량을 적시하고 있는데 그 양이 무려 3,000cc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3,000cc는 대가 기준일 것이니 그저 그런 나 같은 전문의가 수술하면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 환자의 혈색소 수치는 겨우 10.0g/dL를 상회(정상이 13~14g/dL)하니 만일 3,000cc 이상의 출혈이 발생하면 보나 마나 사망할 것이 분명한데도 환자는 무수혈을 고집했다. 수혈하고 안 했다고 하면 되지 않냐고? 절대 안 된다. 수혈을 안 해서 사망하는 경우는 문제가 안 돼도 수혈해서 살린다면 그것이 더 문제가 된다. 고민 끝에 기발한 아이디어도 생각해서 겨우 수술은 마치고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대화도 했지만 결국 그날 저녁을 못 넘기고 사망했다.

수술은 잘 됐는데도 불구하고 환자가 사망했으니 어찌나 속상하고 죄스럽던지 환자 가족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전화를 드렸는데, 되려 환자의 신념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다. 더불어 종교적 신념을 가진 환자를 위해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대개의 의사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수혈 거부에 대해 비난을 한다. 십 수 년 넘게 그들을 치료하다 보니 지금은 그들을 비난하거나 설득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 주는 것에 치중하고 있다. 종교적 신념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 그 너머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박종훈 교수
박종훈 교수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병원협회 산하 한국병원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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