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우측 허벅지가 아프다면서 깡마른 60대 초반의 여자분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무척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함께 온 30대 초반 아들의 부축을 받고 의자에 겨우 앉는다. 두 달 전부터 골반부터 허벅지까지 아파서 동네 병원에 다녔는데도 통증이 전혀 개선되지 않아 조금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심상치 않다면서 대학병원을 가라고 했단다.

전공의 부재 이후로 될 수 있으면 새로운 환자 예약을 받지 않았는데 의료 사태가 2년째 이어지니 더는 신환 진료를 미룰 수가 없어 2월부터 신환 예약을 받았더니 바로 예약하고 온 환자다. 아마 계속해서 신환 예약을 막았으면 내가 진료하지 않았을 텐데.

사진 출처=게티이미지
사진 출처=게티이미지

'2차 병원에서 어떤 검사를 했고 무엇을 보고 심상치 않다고 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환자가 가져온 영상 검사들을 훑어보니, 우측 대퇴골 상부 뼈가 비스켓을 베어 문 것처럼 한쪽이 사라졌다. 환자의 연령과 영상 소견을 고려한다면 분명 어디인가에 있는 암이 전이된 것이 분명하다.

흔한 것으로 여성의 경우 유방암과 폐암일 가능성이 크고, 이런 경우는 통증이 어지간한 진통제로는 진정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곧 골절되기 직전이다. 이런 상황, 즉 암이 의심되고 뼈에 전이된 경우, 만일 골절이라도 생기면 그래서 보행이 어려워지면 치료의 순서가 꼬이고 진단은 늦어져서 환자에게는 매우 안 좋은 상황이 올 수 있기에, 준 응급에 따르는 대퇴골 수술이 필요하다. 바로 입원해서 수술받아야 한다고 설명을 하니, 함께 온 아들을 진료실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한다.

“교수님, 제 아들이 가을에 결혼할 텐데요, 이번 일요일에 상견례가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 주에 수술하면 안 될까요?”

이런. 하필 이 순간에 왜 그런 계획이 있나.

사정은 딱한데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곧 부러집니다. 부러지면 치료가 산으로 가게 됩니다.”

손사래를 치는 환자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료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아들을 진료실로 불렀다.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상견례를 미루는 것이 어떨까요?“

당연히 아들은 그러겠다고 했고, 그렇게 서둘러 입원을 했다. 급하게 검사한 수술 전 폐 x-ray 사진에서 누가 봐도 폐암이 의심되는 종양이 보인다. 그것도 아주 크게. 추가로 검사한 전신 뼈 사진(whole body bone scan)에서는 대퇴골뿐 아니라 간에도, 골반에도 이미 암이 퍼진 양상이다.

수술 전날, 이른 아침 회진 때 환자분이 내게 조용히 묻는다.

”교수님, 아들 결혼을 가을로 생각하는데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요?"

나와 불과 한두 살 차이 밖에 안 나는데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다니. 종양 전문가로 살면서 이런 유사한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지만 이제 나도 환갑을 지나고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수술은 잘 됐고, 절대로 골절될 일은 없을 것이다. 통증도 상당히 완화됐을 것이고, 이제 남은 것은, 근본적인 암 치료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뼈에도 전이가 되었다면 유방암, 전립선암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치료하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다르다. 완치까지는 아니라도 상당 기간 생존이 가능하다. 거기에 희망을 걸어봐야지.

다행히 2주 후 상견례는 가능할 것 같다고 하니, 어찌나 기뻐하는지.

“건강한 모습으로 아들의 결혼식에 혼주로서 당당히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은 했는데, 꼭 그렇게 되기를.

박종훈 교수
박종훈 교수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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