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2개월 전 좌측 어깨에 악성 골종양 의심 하에 조직 검사하고, 골육종 진단을 받은 20대 청년이 있다. 대개 그렇듯 수술 전 항암 치료를 2차례 하는데, 한 번 하고 두 번째 항암 치료 전에 진료를 보러 왔다. 무척이나 밝고 긍정적인 환자였는데, 나를 보자마자 엉엉 운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잠을 못 이룬다는 것이다. 상의를 벗고 어깨를 보니 터져나갈 정도로 종양이 엄청나게 커졌다. 항암 치료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하는 종양이 간혹 있는데 이 경우가 그런 경우였다. X-ray를 찍어보니 이런, 종양이 커지기도 했지만 뼈를 부서트렸다. 소위 말하는 병적 골절이라는 것인데, 이런 상황은 환자에게 아주 안 좋은 사인이다. 아마도 이 환자는 악성 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치료하면 되는 것 아니야?’라고. 그런데 이런 상황이 오니 두려움이 엄청 났을 것이다.
2번째 항암 치료를 들어갈 수가 없다. 격렬하게 저항하는 종양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수술하는 게 낫다. 자칫하면 종양이 자기를 죽이려는 항암 치료에 대해 급흥분해서 폭발하고, 그런 상황이오면 종양은 바로 칼끝을 환자에게 겨눈다. 온몸에서 난동을 부리고, 손을 쓸 수가 없다. 근자에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골육종은 처음 보다 보니 의사인 나도 당황하게 된다. 어떤 느낌인가 하면 종양이 나를 향해서 “봤지? 까불지 마!”라고 하는 것 같다.
서둘러 입원을 시키고, 통증을 완화하고, 수술 준비를 시작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무수혈을 원하는 환자이기도 하고, 나는 10여 년 전부터 종양 환자의 수혈은 극도로 자제하고 있어 혈색소를 올리기 위한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이 환자처럼 수술 전 항암 치료를 한 환자는 극심한 빈혈 상태라서 조혈 기능을 강화하는 약제도 투여하고, 적혈구를 생성하는데 필수요소인 철분제도 투여하면서 2주 정도를 기다리면 혈색소 수치가 정상에 가까워진다. 이날 이후, 나의 마음은 아주 무거웠다. 수술까지 2주간 환자가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이 엄청날 것이고, 커질 대로 커지고, 병적 골절까지 일으킨 종양은 수술 그 자체가 난제다. 수술을 어찌할까, 종양은 나를 비웃을 테고.
종양 내과에 입원한 지 5일째. ‘얼마나 더 커졌을까?’ 하는 긴장된 마음으로 환자를 만났는데, 환하게 웃으면서 “선생님, 갑자기 작아졌어요. 통증도 많이 줄었고요” 하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종양 부위를 보니 불과 며칠 사이에 종양의 크기가 엄청나게 줄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 종양 치료를 하다 보면 마주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항암 치료를 한 차례 더할 것인가, 아니면 예정대로 수술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생긴다. 종양의 기세에 수술자도 멈칫하기 때문이다. 인간인지라 당장의 소나기는 피하고도 싶고, 그래서 한 차례 항암 치료를 더 하고 기다려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정면 승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속지 말자. 엄청 교활하고 과격한 놈(종양에 대해 나는 종종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인데, 잠시 순한 척하는 것 같으니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된다. 서둘러 쳐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 며칠 후면 수술을 해야 한다. 사실 며칠 전부터 자다 깬다. 수술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다. 난이도가 제법 있고, 무수혈로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골절이 있는 종양은 그 성정이 격해서 수술 후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동안 터득한 지혜는 어려움이 예상되는 수술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게 정답이다.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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