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위궤양에 걸리거나 비만한 사람이 당뇨 진단을 받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라고.
그런데 암 환자는 어떨까? 어떤 암 환자도 그렇게 답하는 예는 없다. 대부분 “제가 왜 암에 걸렸을까요?”라고 말한다.
그렇다. 식습관이 잘못돼서 암에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과음, 흡연 등이 특정 암과 연관은 있지만, 일반적인 식습관과는 거리가 멀다.
유기농은 어떨까?
유기농으로 모든 식사를 만들기도 불가능 하겠지만 유기농은 과연 암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만일 이것이 가능했다면 1세기 전의 인류는 암에 걸릴 이유가 없을 것이고, 조선 시대를 살았던 조상들은 각종 암으로부터 자유로웠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솔직히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식습관은 딱히 없다.
소식에 채식 위주의 식단을 하면 장수할 가능성이 있다고는 하나 이 또한 의문이다.
언젠가 방송에서 본 어떤 80대 노인은 삼시 세끼를 라면으로만 해결하는 분이 있었다. 형편 때문이라고는 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노인의 경우 라면을 흐르는 물에 한 시간 정도 불려서 스프는 빼고 된장을 곁들여서만 먹는다. 라면에 많은 기름기를 제거하고 스프는 나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그렇게 먹으면 건강하게 장수할까? 암 전공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분이 건강하게 80세 이상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식습관은 사람마다 다르다.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 채식 위주의 식단을 선호하는 사람. 과식하는 사람, 소식하는 사람. 고기를 먹어도 기름기는 애써 발라내서 먹는 사람, 외국산 음식 재료로 만든 음식은 절대 안 먹는 사람 등.
물론 식단 관리를 잘하고, 비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대사성 질환자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대로 인체가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암 전공자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식단 관리가 불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암에 걸렸다고 해서 자책하지 말자는 것이다. '왜 암에 걸렸을까?'라는 고민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암 환자는 대개 암 치료에 들어간 순간 지나칠 정도로 식단을 관리하는데 오히려 해로운 수준이다. 육식도 안 하고, 소식을 고집하고, 민간에서 몸에 좋다는 것을 애써 찾아서 먹는다. 홍삼을 장기간 복용하고, 몸이 좋다는 고가의 버섯도 먹는다. 어떤 환자는 '치료가 잘 못되고 있나?'라고 의심될 정도로 체중이 빠져서 오기도 한다. 평소 안 하던 운동도 과하게 한다. 틈만 나면 뛰는 사람도 있다. 건강을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리라.
암 환자 진료가 전공인 나의 견해는 이렇다. 인생을 평안히 바라보라는 것. 식단에 유별날 이유도 없고–약간은 있지만–편식하지 말고 적당한 식사를 권한다. 과식은 금물이다. 암의 관점이 아닌 일반적인 건강의 관점에서다.
또 암 환자는 평소처럼 식사하기를 권한다. 거부할 음식은 많지 않다. 인스턴트 식품은 멀리할까? 내키지 않으면 멀리하자. 그러나 그런 음식이 암의 경과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먹고 싶으면 때로는 먹자. 왜냐하면, 암은 우리의 잘못이 아닌 운명이기 때문이다.
다만 권하고 싶은 것은 일정 기간 마다건강 검진은 하자는 것이다. 식단은 까다롭게 생각하면서, 정작 검진은 안 받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혹시 뭔가가 나올까 봐 겁이 나서 안 한다는 분도 있다. 구멍에 머리 박고 있으면 피해갈 수 있을까? 암은 운명이다.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