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장준호 교수에게 듣는 '한랭응집소병'

빈혈 증상과 함께 에어컨 바람에 손끝이 저릿저릿한 증상이 지속될 때 의심해봐야 하는 질환이 있다. 진단 5년 내 사망율이 35%에 달하는 치명적인 질환 '한랭응집소병(Cold Agglutinin Disease, CAD)'이 그것이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는 유튜브 채널 '의대도서관'에서 "한랭응집소병은 추위에 노출되면 적혈구가 보체의 영향을 받아 깨지면서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하는 희귀질환"이라며 "주된 메커니즘은 보체의 활성화"라고 설명했다. 

보체의 활성화로 모든 사람에게 있는 '응집소'가 많이 발현되면 응집소가 적혈구 표면에 달라붙어 적혈구를 파괴하는 용혈 현상이 나타난다.

때문에 빈혈 증세가 있는데다, 청색증(피부가 푸르스름한 색으로 변하는 증상)이나 레이노현상(손끝이 푸르스름한 색이 되면서 통증을 느끼다가 따뜻하게 해주면 회복되는 현상)으로 평소 상당히 고통을 받는다면 이 병을 의심해볼 수 있다. 

장준호 교수는 "용혈이 생기기 때문에 일단은 빈혈 증상으로 많이들 온다. 하지만 빈혈이 심하지 않더라도 한랭응집소병의 합병증인 혈전이 생긴다든지 손끝에 청색증이 생긴다든지, 그러한 것들로 고통받는 환자들도 꽤 있다"며 "사망한 환자의 대부분은 혈전이 발생해서 사망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랭응집소병이 악화될 때 적혈구가 심각할 만큼 많이 깨지면서 '혈전'이 생성되기 때문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 용혈 현상으로 신장에도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이 병은 온도에 따라 증상 발현에 차이가 있다. 따뜻할 때는 괜찮고, 추울 때는 악화가 잘 되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응집이 더울 때 일어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온도 이상에서는 응집이 활발히 일어나지 않는다"며 "겨울에 환자들이 더 악화되는 경향은 보이지만, 최근에는 여름에도 에어컨을 튼다든지 냉장고 문을 연다든지 그런 경우에도 환자들이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 한랭응집소병 환자들은 사시사철 언제든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장준호 교수는 "겨울에 환자들이 보통 많이들 악화돼서 오긴 하지만 여름에도 악화돼서 오는 환자들이 꽤 있다"며 "사시사철 악화될 수 있는 질환"이라고 말했다. 빈혈과 레이노현상 등으로 병원에서 검사를 한 뒤, 극희귀질환인 한랭응집소병을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들이 있다.

빈혈 중 가장 흔한 '철결핍성빈혈'이 아닌 빈혈이면서 LDH(젖산 탈수소효소, 우리 몸의 대부분의 세포에 존재하는 효소로 세포가 손상되거나 파괴될 때 유출되면서 세포 손상의 지표로 사용)나 MCV(적혈구 크기를 나타내는 값)가 높아져 있다든지, 소변색이 진해져 있다든지, 흔치 않은 곳에 혈전이 생긴다든지 할 때다. 장 교수는 "이럴 때는 한랭응집소(Cold agglutinin) 검사를 큰 병원에서는 간단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검사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랭응집소병은 특별한 원인 없이 생긴 경우를 일차성 한랭응집소병이라고 하고, 림프종, 다발골수종, 발덴스트롬 마크로글로불린혈증(Waldenstrom Macroglobulinemia, WM) 같은 암과 동반해 나타나면 이차성 한랭응집소병이라고 한다. 

희귀질환의 95%는 치료제가 없지만, 한랭응집소병은 현재 신약 '엔제이모(성분명 수팀리맙)가 개발돼 있다. 지난달 12일에는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통해 정식 도입됐다. 그러나 이 질환은 아직 질병 코드조차 만들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수팀리맙을 실제 환자에게 쓰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장 교수는 "심평원 등에서 보험 급여를 받으려면 ICD-10 코드가 있어야만 하지만 이게 없다. 물론 이 코드를 만들 수 있겠지만, 상당히 시간이 소요된다"며 "이미 약제는 식약처의 허가를 받았는데, 질병 코드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식으로 작업을 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동안 환자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수팀리맙은 보체 C1s를 억제해 약효를 낸다. 장준호 교수는 "보체시스템은 우리 몸에서 외부 균의 침범 등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한랭응집소병이 자가면역질환 같이 자기 몸을 공격하는 병태생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막아주는 보체억제제"라며 "새로운 약을 쓰면 상당히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약제를 쓸 수 없는 환자들은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만 가능하다. 빈혈이 굉장히 심하게 발생하면 피를 따뜻하게 해주는 기계를 통해 수혈을 하고, 잠시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스테로이드를 짧은 기간 쓰는 것이 치료다. 장 교수는 "효과는 없지만 잠시 용혈을 막아줄 수 있다"며 "또 자주 반복되면 리툭시맙과 같은 항암제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합병증이 심하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치료"라고 말했다. 

신약 수팀리맙의 효과는 어떨까? 장준호 교수는 "빈혈이 상당히 개선되고, 합병증을 확실하게 줄여줄 수 있다"며 "약제가 나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장기간 생존 개선에 대한 보고는 아직 없지만, 다른 보체질환들을 비교해보고 그 질환들 약제의 효과를 비교해서 미루어 보건데 이 질환에서도 상당한 효과, 생존율 개선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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