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도 땀 거의 없고 체육시간엔 늘 벤치行이라면 의심을
당지질 대사에 작용하는 효소에 문제가 생긴 유전성희귀질환
당지질 축적돼 신장·심장·뇌 등 장기손상…조기진단·치료 중요
다친 데가 없는데 손발에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거나 이유 없이 자주 복통을 호소하는 아이를 보면 꾀병이라고 오인하기 쉽다. 특이하리만큼 땀이 잘 나지 않지만 조금만 뛰어도 죽을 것 같다며 체육시간을 습관적으로 빼먹으려는 아이도 마찬가지다. 별 문제가 아닌 것 같고 아이가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하는 이런 증상은 유전성희귀질환 '파브리병'을 앓는 아이에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파브리병은 당지질, 당단백질로부터 말단 알파갈락토실 부분을 가수 분해하는 글리코사이드 가수 분해 효소인 '알파갈락토시다아제'가 없거나 감소돼 당지질이라는 대사물질이 축적되는 병이다. 알파갈락토시다아제를 만드는 유전자에 문제가 생긴 채 태어나 효소가 없는 기간이 오랫동안 쌓여서 증상이 나타나고 결국 신장·심장·뇌 등 장기까지 망가뜨리는 병이다. 때문에 조기 발견해 빠르게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고대구로병원 신장내과 권영주 교수는 대한신장학회 유튜브 채널 '내 신장이콩팥콩팥'에서 "소아에게 손발에 타는 듯한 통증이나 복통이 반복될 때, 꾀병이라 생각하지 말고 한번쯤 파브리병을 의심해야 된다"고 조언했다. 현재 파브리병은 조기진단이 늦는 대표적 희귀질환이다. 병원에서 진단이 어려운 병은 아니다. 이 병을 의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진단이 잘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의료진의 공통된 설명이다.
파브리병은 전신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전형적인 파브리병과, 신장·심장·뇌 등 주로 한 개 장기에 국한돼 증상이 발현되는 비전형적 파브리병으로 나뉘는데, 현재 이들 모두 진단은 대부분 성인에서 이뤄진다. 권영주 교수는 "전형적인 파브리병은 소아부터 시작을 해서 나이 들어서 남자는 20대나 여자는 30대 늦게 진단될 수 있고, 비전형적인 경우는 성인이 되어서 대개 진단을 한다"고 말했다.
특이하게도 손발에 타는 듯한 통증 등 어렸을 때 나타났던 증상들은 성인이 되어서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중앙대병원 신장내과 김수현 교수는 한 파브리병 환우를 예로 들며 "어렸을 때 굉장히 손발이 아픈 증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미 성인이 돼서는 통증도 사라졌다고 한다"며 "단순하게 단백뇨가 있으면서 혈압은 정상이고 심장비대가 있는 것이 아주 전형적인 파브리병"이라고 설명했다.
파브리병에 나타나는 증상에는 무엇이 더 있을까? 손발에 타는 듯한 통증이나 이명 현상이 나타나는 '말초신경질환'과 자율적으로 신체 작용을 조절하는 말초신경에 영향을 미쳐서 설사, 복통, 구토 증세를 초래하는 '자율신경질환' 이외에 땀이 전혀 나오지 않거나 나와도 극히 적은 '무한증', 각막 일부나 전체가 불투명해지는 '각막혼탁'이 있을 수 있다.
또한 피부에 검붉은 발진인 '혈관각화증(전신에 뻗어있는 미세혈관인 모세혈관의 확장 또는 사마귀 모양의 증식을 특징으로 하는 피부질환)'이 나타나는데, 혈관각화증은 대부분 몸통 부위에 생긴다. 김수현 교수는 "혈관각화증은 환자의 몸을 다 벗겨야만 볼 수 있어서 쉽게 보지는 못한다"고 진단이 쉽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파브리 신장병으로 말기신부전으로 진행할 수 있고, 심비대증, 부정맥, 판막증, 뇌경색증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파브리병은 나이 들어가면서 콩팥도 망가지고 심장도 망가지고 뇌졸중도 많이 생기게 되는 병이다. 권 교수는 "신장의 문제는 대개 40대 후반, 뇌경색증은 40대 초반 혹은 50대에 나타난다"며 "뇌경색증 중에서도 소혈관 뇌경색증이 왔을 때 파브리병을 의심할 수 있다"고 짚었다.
파브리병은 알파갈락토시다아제 효소 검사와 유전자검사를 통해 확진할 수 있어 검사가 어렵지 않고, 치료제가 나와 있어서 현대의학으로 병의 악화를 막을 수 있다. 권영주 교수는 "이 병은 그래서 조기진단, 조기치료가 가장 중요하다. 친척까지 그 기회를 공유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유전질환이라고 숨기지 말고 친척들한테 알려주는 것이 조기진단, 조기치료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파브리병을 조기 발견해서 치료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김수현 교수는 한 파브리병 환아 아버지의 이야기라며 "아들이 체육시간에 한 번도 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파브리병으로 인한 무한증 때문에 운동을 하려고 조금만 움직이면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효소치료 후에 자기가 운동을 하는데, 전혀 그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서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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