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한국폐암환우회 이희정 이사 인터뷰
최근 달라진 폐암 치료환경에도 '4기' 말기암으로 오인
폐암, 인식 개선 필요…폐암, 고령·흡연자만 걸리지 않아
40대·비흡연자 폐암 가능성 간과…조기 진단 체계 필요
폐암 환자, 효과↑부작용↓치료 통해 사회 복귀 도와야
폐암은 치료성적이 나쁜 암으로 악명 높지만, 암세포의 표적이 되는 세포신호전달체계를 타깃한 표적치료가 가능하거나 암세포의 면역억제단백질을 차단하는 면역치료가 가능할 때는 이젠 예전의 잣대로 치료성적을 재단할 수 없을만큼 치료성적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실제 10년 전 '폐암 4기'의 5년 생존율은 5%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30%로 뛰어오를만큼 폐암 치료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특히 폐암 중 최악의 상태라고 봤던 '뇌 전이 폐암 4기' 환자 중에서도 치료를 통해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고 폐암 4기 환자 중 10년 넘게 생존하는 환자를 더는 기적이라 표현하지 않을만큼 폐암 4기는 더는 말기암으로 재단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변화된 폐암 치료환경과 동떨어져 폐암 4기에 말기암이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까닭에 적지 않은 폐암 환우들이 '암밍아웃(암과 커밍아웃의 합성어)'을 꺼린다. 한국폐암환우회 이희정 이사(49세)도 지난해 7월 뇌 전이를 동반한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4기 진단을 받은 직후 EGFR 변이를 표적한 3세대 표적항암제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를 매일 한 알씩 복용하면서 뇌에 전이된 암이 사라졌고 씨가 뿌려진 듯한 모양의 폐암도 줄었지만 직장에서 암밍아웃을 아직 못했다고 한다.
이 이사는 "진단 후 '폐암 4기'를 '죽음'과 연결하는 일은 그만뒀다"며 폐암 4기가 말기암이 아니라는 증거가 '그녀 자신'이라고 말하면서도 직장에서 암밍아웃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폐암 4기 환자는 꾸준히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고 1년에 몇 차례 정기진료가 필요한 까닭에 직장에서 암밍아웃은 당연할 것 같지만, 폐암이 오랜 흡연자에게 생기는 병이란 편견과 폐암 4기가 말기암이란 오인까지 덧칠해져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재 관광업계에 종사하는 그녀는 슬기로운 암 극복을 위해 암밍아웃의 필요성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암밍아웃을 한 뒤 직장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기기에 암밍아웃을 못했다고 한다. 암과 암환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암밍아웃은 여전히 뛰어넘기 어려운 현실의 벽으로 폐암 환우에게 남겨져 있지만,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더 폐암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이희정 이사는 말한다.
그 이유가 있다. 이 이사는 "진단 전까지 폐암 환자가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폐암은 담배를 오랜기간 피운 고령자에게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했지 담배를 피운 적이 없는 40대 여성에게 생길 수 있는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우리나라에 비흡연자 여성 폐암이 확실히 많은 것을 알았다면 기침이 2주 넘게 멈추지 않았을 때 적극적으로 국내 다발암인 폐암 가능성을 두고 의료이용을 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동아시아에서 최근 비흡연자 여성 폐암 환자가 늘고 있고 우리나라는 비흡연자 여성 폐암이 특히 많은 것으로 보고되지만 비흡여자 여성에서 폐암 위험성은 흔히 간과된다. 수많은 의학적 근거에 기반한 국가암검진프로그램에서 2년마다 저선량 폐CT를 권고하는 폐암검진 대상도 현재는 54~74세 중 30갑년(30년간 매일 담배 1갑 흡연) 이상 흡연자에 국한돼 있다.
이희정 이사는 "폐암은 생각조차 못하고 5월에 이비인후과의원에 갔고, 원래 있던 역류성식도염이 악화돼 기침이 지속된 것이라고 여겨 역류성식도염약만 먹었는데, 도무지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며 "일이 바뻐 3~4주 후에 중소병원에 가서 흉부 X-ray를 찍었는데, 이상소견이 보여 CT를 찍었고 거기서 결핵 아니면 폐암이 의심되는데 그 중 폐암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폐암이 처음 생에 진입했던 때를 떠올다.
그녀는 병원의 도움을 받아 부랴부랴 국립암센터에 예약을 해 7월 초 진료와 검사를 했고 7월 중순 폐암 확진을 받아 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처음 내과의원에서 흉부 X-ray를 찍었다면 조금 더 빨리 폐암을 진단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 이사는 "폐암이 비흡연자, 여성, 40대에 걸릴 수 있다는 일반인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고, 이에 맞춰 조기 진단을 도울 수 있는 검진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흉부 X-ray로는 조기 폐암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폐암을 염두해두고 검사하려는 사람에게 최소 4년에 한 번 꼴이라도 저선량 폐CT에 선별급여를 적용해 검사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 이희정 이사의 의견이다. 또한 급변하는 폐암 치료환경에 발맞춰 신약에 신속히 급여를 적용해 환우들이 장기적 투병을 하며 겪는 경제적 부담과 이로 인한 사회적 고립을 줄여 건강한 사회 복귀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비급여로 타그리소 복용을 시작한 그녀는 폐암 진단 당일 막막한 심정으로 가입한 폐암환우회 이건주 회장의 도움으로 재난적의료비 정보를 얻어 어느 정도 타그리소 약값을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직장인에게 한 달 600만원이 넘는 약값은 큰 부담일수밖에 없었다. 이런 까닭에 그녀는 이 회장의 권유로 지난해 7월 말 환우회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회의할 때 1차 치료제로 타그리소가 절실한 4기 폐암 환우 대표로 참여했다.
폐암환우회는 이건주 회장이 폐암 신약의 급여 등재를 위해 대표성을 갖고 보건복지부, 심평원 등 정부 관계자와 협의하기 위해 2020년 4월 폐암 환우와 가족 50여명과 뜻을 같이 해 만든 단체로, 장기투병하는 폐암 환우를 위해 온라인카페, 유튜브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도 제공하지만 신약 개발이 가장 활발한 폐암의 치료환경 변화에 맞춰 국내 환우들이 빠르게 신약 혜택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이희정 이사는 타그리소 복용 환우 대표로 정부와의 회의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회장, 고문, 간사, 감사와 함께 6명의 이사로 꾸려진 10명의 폐암환우회 집행부 일원으로 지난해 10월 합류해 제약사, 정부에 환우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으며 환우들을 위한 프로그램 기획·운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또 환우회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필요한 정보들을 수시로 교환하며 환우들과 함께 암을 극복하기 위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뇌 전이 폐암 4기 환우인 그녀가 바쁜 직장생활에 더해 폐암환우회 이사로 활발히 활약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폐암환우회의 역할이 폐암 환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한 까닭이다. 실제 그녀가 처음 참석한 정부와 폐암환우회 회의에서 논의한 안건인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4기에서의 1차 치료제 타그리소 급여 건은 환우회의 오랜 노력이 더해져 올해 1월 실현됐다.
그 덕분에 현재 그녀는 한 달에 30만원가량의 약값으로 치료 문턱을 낮춰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됐고, 폐암이 잘 조절돼 폐암환우회 활동에 더해 직장생활도 큰 문제 없이 이어나가고 있다. 신약이 나와 있는 MET 변이 등 다른 소수 변이 폐암의 경우도 치료 문턱을 낮추면 더 많은 폐암 환우들이 그녀처럼 잘 살 수 있지만, 현재 소수 변이 폐암 신약들의 급여 문턱은 여전히 높다.
이희정 이사는 "현재 항암신약의 건강보험 등재 심사기간인 180일도 유명무실해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신약 보험 등재시스템이 환우들이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적지 않은 환우들이 기다리던 신약이 개발돼 국내 허가가 됐어도 급여가 안 돼 치료를 제대로 못 받고 사망하고 있는데, 환우회가 꾸준히 목소리를 내 폐암 환우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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