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한국척수성근위축증환우회 문종민 회장
스핀라자·에브리스디 급여 조건인 '개선 후 유지', 아이러니
호흡기 단 절실한 환우엔 임상실험 안 해…"급여 진입 불가"
"변경 급여평가도구로 기존 급여 탈락 환자에 치료 기회를"
의무기록 부재로 SMA 발병 연령 입증 어려운 환자도 많아
치료기회 준 뒤 평가로 효과 없으면 탈락하는 안 검토 필요

척수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은 최근 10년간 치료환경이 급변한 유전성희귀질환이다. 5번 염색체의 ‘SMN1 유전자’의 결손이나 돌연변이로 운동신경단백질 ‘SMN 단백질’이 정상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전신 근육이 점차 약화, 위축되는 진행성근육병인 SMA는 대부분의 희귀질환처럼 치료제가 없는 병이었다. 

SMA 발병 시기 등에 따라 몸 안의 SMN 단백질 총량이 달라 SMA 환우마다 질병 경과가 조금씩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SMN 단백질 부족 탓에 근육의 힘이 약화돼 모든 SMA 환우가 걸을 수도, 설 수도, 앉을 수도, 팔을 들 수도, 목을 가눌 수도, 음식을 씹을 수도, 숨을 쉴 수도 없는 상황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을 길이 이전에는 없었다. 

하지만 201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최초의 SMA치료제 '스핀라자(성분명 뉴시너센)'를 승인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스핀라자 투약으로 SMN 단백질이 체내 백업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악화되기만 하는 병인 SMA에 '호전'이라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고 더는 악화되지 않고 유지 가능한 상황으로 질병 경과가 바뀌었다. 

스핀라자는 2017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통해 국내에도 정식 도입됐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4개월마다 약 1억원의 비용을 들여 평생 주사해야 하는 '스핀라자'에 대한 SMA 환우들의 치료 접근성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매년 약 3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치료를 지속할 수 있는 SMA 환우가 국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스핀라자 국내 도입 시기에 SMA 환우와 가족들이 필연적으로 뭉치게 됐다. 한국척수성근위축증환우회 문종민 회장(50세)는 "원래 척수성근위축증 부모모임이 있었는데, 스핀라자 도입을 계기로 척수성근위축증환우회가 만들어졌다"며 "스핀라자 급여로 아이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던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척수성근위축증환우회 문종민 회장
한국척수성근위축증환우회 문종민 회장

문종민 회장은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2005년 8월 태어난 둘째 딸 예영이가 2006년 분당서울대병원, 아주대병원에 이은 분당차병원 진료와 유전자검사로 SMA 진단을 받았지만 믿기 힘들었던 그는 마지막으로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채종희 교수를 찾아갔었는데, 치료할 방법이 나올 것 같다는 말을 들었던 까닭이다. 

그 희망을 붙들고 문 회장은 그 누구보다 딸의 재활에 힘을 쏟아왔다. SMA 진단이 이뤄진 생후 14개월부터 중학교 진학 전까지 예영이는 1년에 약 50일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재활치료를 다니며 병의 악화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예영이는 생애 단 한번도 걸을 수 없었지만 다른 환우에 비해 병의 악화 속도는 확실히 더뎠다. 

치료제가 나온 상황에서 예영이의 병이 더 악화돼 할 수 있는 게 더 줄지 않고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일을 덜어주기 위해 그는 가족의 만류에도 솔선수범 척수성근위축증환우회장을 맡았다. 문종민 회장은 "예영이가 치료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지'라는 생각이었다"며 모두가 꺼린 환우회 회장직을 맡게 된 까닭을 설명했다. 

문 회장을 주축으로 척수성근위축증환우회가 스핀라자의 빠른 급여를 위해 집중한 것은 베일에 가려진 SMA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문종민 회장은 "당시엔 1억원이 드는 약이 급여가 될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 못했던 때였는데, SMA가 얼마나 심각한 질환인지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척수성근위축증환우회가 진행한 '같이 숨쉬자 캠페인' 등 여러 캠페인을 통해 SMA가 숨 쉴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되는 병이지만 신약 개발로 이젠 악화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SMA를 앓는 아이의 치료를 위해 보험 급여를 해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고가약 '스핀라자' 급여에 힘이 실리게 된 것이다. 

문 회장은 "국민들의 공감을 굉장히 많이 받은 상황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역시 이같이 위중한 병이면 빨리 신약에 급여를 해주는 것이 맞겠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검토해준 것으로 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실제 스핀라자는 국내 도입된 지 1년 반도 채 되지 않은 2019년 4월, 이례적이라 평할만큼 아주 짧은 시간 내 급여가 이뤄졌다.  

여기에 더해 주사제 스핀라자의 경구용치료제인 '에브리스디(성분명 리스디플람)'가 2020년 국내 허가됐고 2021년에는 당시 글로벌 최고가 신약인 SMA 원샷 유전자치료제 '졸겐스마(성분명 오나셈노진아베파르보벡)'까지 도입됐다. 졸겐스마는 2022년 8월 20억원의 가격으로 급여에 진입했고, 2023년 10월엔 에브리스디까지 급여됐다.

빠르게 3종의 고가 SMA 신약이 국내 허가, 급여되면서 SMA 환우들의 치료환경은 확연히 바뀌었다. 그러나 그 속을 깊숙히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여전히 치료 사각지대에 남겨진 SMA 환우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가장 치료제가 절실한 호흡기를 단 SMA 환우들이 국내에서 가장 어두운 치료 사각지대에 남겨져 있다.  

문종민 회장은 "제약사는 임상연구 결과를 잘 내기 위해 호흡기를 단 SMA 환우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하지 않는데, 국내 급여 정책은 임상실험 결과에 기반하므로 호흡기를 단 환우들은 신약 급여 헤택을 받는 것이 불가한 상황"이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근거자료가 없어 신약 급여 검토 자체가 어렵다는 입장이기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신약 급여 혜택을 받다가 치료 효과를 운동평가도구 등의 문제로 제대로 입증하지 못해 현재 급여 치료 혜택에서 제외된 SMA 환우들도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긴 마찬가지다. 정부는 고가약을 써도 효과를 못 보는 환자를 가려내 건보재정의 출혈을 막기 위해 투약 전 '운동평가'를 통과할 때에만 급여를 인정하는 사전승인제도를 운영 중이다. 

운동평가로 치료 효과를 보는 SMA 환우에게만 고가 치료제에 급여를 해주겠다는 것인데, 지난해 9월까지 운동평가도구는 하이네(HINE-2, Hammersmith Infant Neurological Examination-2, 24개월 미만 환우 대상)와 해머스미스(HFMSE, Hammersmith Functional Motor Scale-Expanded, 24개월 이상 환우 대상) 2가지로 논란이 많았다.

이런 까닭에 심평원은 3년간의 스핀라자 급여 투약 경험을 바탕으로 급여 사전승인제도를 손 보면서 지난해 10월부터 24개월 미만 환우는 하이네, 24개월 이상 환우는 해머스미스로 평가하던 체계에 신경근육질환검사(CHOP-INTEND, CHOP-ATEND), 상지기능검사(RULM) 등을 추가하는 변주를 줬다. 이는 기존 운동평가의 문제를 인정한 셈이다. 

문 회장은 "대근육을 사용할만큼 힘이 남아있지 않은 SMA 환우는 해머스미스로 운동평가를 하면 모두 0점이고, 이 평가도구는 마이너스가 없어 악화된 것인지 볼 수 없었다"며 "이런 환우들을 해머스미스로 일괄 평가하면서 실제 환자 증상이 투약 후 유지·개선된 것인지, 나빠진 것인지 정확히 측정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라고 짚었다. 

SMA가 꽤 진행된 환우에게 스핀라자 투약 효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도구로 평가가 이뤄지면서 실제 적지 않은 환우가 급여 치료에서 탈락했다. 문종민 회장은 "심평원은 계속 0점인 것을 '유지'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는데, 이런 이유로 급여 탈락된 환우들은 변경된 운동평가도구로 다시금 치료받을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치료 사각지대도 있다. 급여 조건 중 하나인 'SMA 증상 발현 연령'을 의무기록 부재로 입증하지 못해 급여 치료에서 배제된 환우들이 있는 것이다. 사실 지난해 급여 기준이 확대되면서 증상 발현을 입증해야 하는 연령이 만 3세 이하에서 만 18세 이하로 넒어졌지만, 다수 환우들이 의무기록 부재로 이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종민 회장은 "30대 후반이나 그 이상 나이대의 환우들은 의무기록을 찾는데, 없는 경우가 많다. 병원의 법적 의무기록 보관기간은 10년인데다 예전엔 다 종이차트였다. 이전엔 치료법이 없어 대부분의 SMA 환우들이 꾸준히 병원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에서 의무기록을 남겨놓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병원이 없어진 곳도 있는데, 이런 것은 SMA 환우의 잘못으로 초래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구제책 마련이 절실하다. 문 회장은 "어차피 '개선 후 유지'라는 평가 기준대로 잣대를 댈 것인데, 의무기록이 없다고 급여 치료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시적으로 의무기록이 없는 환우에게 급여를 풀어줘야 한다"고 짚었다.

사각지대에 있는 SMA 환우들에게 급여 치료 기회를 주는 것은 현재의 건강보험 재정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문종민 회장은 "3개 SMA치료제는 위험분담제의 총액제한형으로 연간 예상 청구액 총액이 정해져 있고, 이를 초과한 청구액은 제약사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환급한다"며 국내 환우들에게 치료 기회를 적극 줄 것을 제안했다.  

문종민 회장
문종민 회장

지난해 스핀라자와 에브리스디의 급여 조건이 '개선 후 유지'로 강화된 점에 대해서도 문 회장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SMA는 진행성질환으로, 치료로 병이 악화만 안돼도 신약 치료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예전 스핀라자 급여 조건은 유지 내지 개선인데, 지난해 급여 조건이 '개선 후 유지'로 바뀐 것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또 스핀라자·에브리스디에 적용되는 사전승인제도로 언제든 급여 치료에서 탈락될 가능성이 있는 탓에 SMA 환우들이 굉장히 불안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점도 그는 드러냈다. 운동평가 시점, 환우가 폐렴에 걸렸거나 수술받는 이벤트가 있었다면 운동평가 점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급여 치료에서 탈락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SMA 환우 중에는 꼭 필요한 수술도 뒤로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종민 회장도 "예영이가 올해 1월 SMA에 흔히 합병되는 척추측만증으로 수술을 했는데, 이전에 척추측만증 수술을 했어야 했지만 운동평가 점수가 떨어질까봐 안 하고 있었다. 척추측만증 수술을 하고 나면 못하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척추측만증 수술은 SMA 환우의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데다 수술로 골반, 어깨 등에도 핀을 박기 때문에 수술 뒤 몸을 구르는 동작 등이 어렵다. 때문에 수술 뒤엔 운동평가 점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 떨어진 점수를 심평원은 '치료제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단해 급여 치료에서 탈락시키곤 하는 상황이다. 

문 회장은 진단서에 소견서까지 첨부해 딸의 운동평가 점수가 떨어진 데 대해 철저히 대응했지만, 사실 이것은 환우 측의 철저한 대응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라고 짚었다. 그는 "결국 병원에서 교수가 사전심의를 올릴 때 '이 환자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방어를 철저히 해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이런 상황 탓에 어떤 주치의를 만나느냐가 SMA 환우의 치료 향방을 정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문종민 회장은 "운동평가 점수가 떨어진 합당한 이유가 사전심의에 반영되지 않으면 급여 치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며 스핀라자나 에브리스디로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우들이 급여 탈락에 대한 불안을 줄일 수 있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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