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癌중모색② 페이션트 스토리] 삼중음성유방암환우회 이두리 대표
비급여 고가 항암신약, 환자 경제 상황 따라 사용 여부 결정
'기적 같은 신약'에 희망 품다가 고가에 다시 절망하는 현실
효과적인 치료법 없어 치료 성적 낮은 말기 삼중음성유방암
신약들 국내 허가됐지만 급여약은 전무…"빠른 급여화 절실"
중증난치질환으로 분류되는 암 치료는 환자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정해주는 대로 치료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의 국내 암치료는 이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기존 항암치료 옵션보다 효과가 높은 것으로 입증된 고가의 항암신약이 치료 옵션으로 새롭게 나왔을 때가 대표적인데, 이때는 현재의 건강보험체계에서 고가 항암신약에 대한 급여를 적용하지 않으면 대학병원 진료실에서 의사가 치료 옵션을 설명하고 환자가 가정 형편이나 사보험 약정에 따라 치료법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20세기 국민의 건강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건강보험체계를 만들었지만, 21세기 지금도 여전히 소득 수준에 따라 건강불평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있는 것이다. 지난해 발표된 2020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83.5세의 기대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9%에 달한다. 표적치료제·면역항암제·항체약물복합체·키메라항원수용체T세포치료제 등 각종 고가 항암신약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한국인 남성 5명 중 2명(39.0%), 한국인 여성 3명 중 1명(33.9%)이 이같은 현실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삼중음성유방암환우회 '우리두리구술하나' 이두리 대표(35세)는 전문진료 영역인 암치료에서 치료 방법을 때로 의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결정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한다. 지난 2019년 3월 삼중음성유방암 3기 말로 진단되고 1년 뒤 4기로 악화된 그녀가 맞닿뜨린 현실이기도 했었다. 이두리 대표는 "흉막에 첫 전이를 병원에서 확인할 때쯤 삼중음성유방암 4기 환자에게 적용되는 면역항암제가 국내 허가됐다. 그 약으로 총 치료 스케줄을 다 마치려면 8,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며 그 당시를 떠올렸다.
이대목동병원 주치의에게 치료 옵션의 하나로 설명 들은 비급여 고가 항암신약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 치료에 대해 그녀가 고심하고 있을 때, 그 약이 이두리 대표에게 맞지 않는다는 최종 결론이 났다. 키트루다는 암세포 표면에 PD-L1 단백질 발현이 있어야 효과적인데, 이 대표에게는 PD-L1 단백질 발현 비율이 0%였기 때문에 치료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오히려 이같은 결론이 난 것에 대해 "다행"이라며 "그 이유는 치료 비용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제까지의 치료 비용에 더해 가족에게 더 큰 경제적 부담을 지우기 힘겨웠기 때문이었다.
비단 이두리 대표만의 생각이 아니다. 현재 재발·전이 삼중음성유방암 환우들이 처한 현실이 거의 이렇다. 국내 재발·전이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에 실제 의료진이 제시하는 치료 옵션은 1차 치료제인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2차 치료제인 PARP억제제 린파자(성분명 올라파립), 3차 치료제인 항체약물복합체(ADC) 트로델비(성분명 사시투주맙 고비테칸) 등인데, 현재 모두 비급여다. 억대에 가깝거나 억대를 넘어선 치료 비용을 재발·전이 삼중음성유방암 환우가 100% 지불해야 치료가 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풍족한 일부 환자는 임상연구를 통해 삼중음성유방암에는 국내 허가가 없지만 가장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 ADC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를 쓸 수 있는 나라에 원정치료를 가기도 하고, 일부는 국내에 허가된 비급여 고가 항암신약을 쓰기도 한다. 기존 치료제로 재발·전이 삼중음성유방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12%에 불과할만큼 효과적인 치료 옵션이 없는데, 신약을 쓰면 이보다 높은 생존 확률을 보이는 까닭이다. 하지만 전체 유방암 환자의 11%에 해당하는 국내 삼중음성유방암 환자 중 이런 치료를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다.
공격적 특징으로 다른 유방암 아형에 비해 재발·전이 비율이 높은 삼중음성유방암 환자에게 효과적인 '급여 치료' 옵션이 단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한 까닭이다. 억대 금액의 치료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의사가 제시한 고가 항암신약 치료 옵션을 쓰지 못한 환우들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까. 이두리 대표는 "결국 호스피스 완화병동으로 가는 환자들이 많다"며 "삼중음성유방암 환우들이 고대하던 신약이 국내 도입되고 있지만 비급여로 결국 신약을 사용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환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현실을 짚었다.
유방암을 진료하는 암 전문의들은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항암신약의 급여가 절실한 분야의 하나로 현재 삼중음성유방암을 꼽는다. 삼중음성유방암도 신약을 쓸 수 있다면 과거 치료성적이 나빴던 다른 유형의 유방암과 마찬가지로 생존율을 높일 수 있고, 환자들의 삶의 질도 개선할 수 있는 까닭이다. 현재 재발·전이 삼중음성유방암 신약으로 키트루다가 급여 확대로, 트로델비가 신규 급여로 절차를 밟고 있는데, 암 전문의와 환우 모두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많이 살리기 위해 신약의 급여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 이유가 있다. 삼중음성유방암이 아주 빠르게 진행하는 암이기 때문에 조속한 '급여치료' 옵션이 나와야 환자를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까닭이다. 이두리 대표는 "올해 8월 친오빠와 만나는 중 길에서 쓰러져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났고 그때 머리를 다쳤을 수 있어서 뇌CT를 찍었는데, 뇌전이 진단이 나왔다"며 "이대목동병원 주치의에게 검사 결과를 들고 갔더니 이전 뇌영상 검사에서는 뇌전이가 없었고 짧은 사이 갑자기 생긴 것이라며 그만큼 공격성이 강한 암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2020년 3월 흉막 전이를 시작으로 그간 폐와 간에 전이가 됐고 올해 8월에는 뇌와 뼈 전이 진단을 받은 이 대표가 삼중음성유방암의 공격성에 대해 몰랐던 것은 아니다. 2019년 삼중음성유방암 진단 당시에는 삼중음성유방암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아 오히려 삼중음성유방암이니까 치료 예후가 좋을 것이라는 오해를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다른 아형의 유방암과 다른 특성을 지닌 탓에 유방암 환우 가운데 동 떨어진 느낌의 삼중음성유방암 환우끼리 뭉쳐서 정보와 경험을 나누고 공감하는 네이버 밴드를 직접 만들고, 환우 간 교류하면서 경험을 통해 명징하게 알게 된 진실이었다.
지식으로 알았던 '가능성'이 현실이 됐을 때의 충격과 깨달음은 그녀를 계속 행동하게 했다. 효과적인 치료 옵션이 별로 없는 4기 삼중음성유방암 환우가 됐을 때에야 이두리 대표는 사회에 지금의 삼중음성유방암 치료 현실을 알리고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낼 '삼중음성유방암환우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우리두리구술하나는 이 대표가 4기 진단 직후 네이버 밴드에서 만난 다른 4기 삼중음성유방암 환우 임구슬 씨와 2020년 봄 치료 현실을 개선해보고자 함께 구상한 삼중음성유방암환우회이다.
그러나 그 해 봄 구슬 씨가 유명을 달리하면서 결국 이두리 대표가 주도적으로 그 해 10월 우리두리구술하나를 만들게 됐다. 이 대표는 "그녀가 죽은 뒤 제게도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빨리 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체가 만들어지면 제가 없어도 누군가 계속 끌고 갈 것이기에 네이버 밴드에서 만난 환우들을 임원진으로 영입해 임의단체로 환우회를 조직하게 됐다"며 "진단 직후부터 재발의 공포,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 삼중음성유방암 환우들이 삶에 희망을 갖을 수 있도록 우리두리구술하나가 버팀목이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올해 8월 갑자기 쓰러져 심장이 정지되는 경험을 한 이두리 대표는 그간 환우회에서 걷기챌린지 같은 프로그램이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세미나, 의학세미나 등 환우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치료를 잘 받을 수 있게 지원하는 일들을 많이 해왔다면 앞으로는 실제 환우들의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내보겠다는 생각이다. 재발·전이 환우에게 절실한 키트루다·트로델비의 급여만이 아니라 조기 환우에게 재발률을 낮춰줄 수 있는 키트루다의 급여에 대한 환우회의 목소리가 우리사회에 분명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그녀는 믿는다.
무엇보다 이두리 대표는 삼중음성유방암 환우들에게 기적 같은 삶을 선물할 수 있는 신약들이 하루 빨리 급여화돼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암 전문의가 최선의 치료를 결정하고 암 환자들이 경제적 여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약사의 노력도 촉구된다. 이 대표는 "신약을 통해 환우들이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갖을 수 있도록,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혀 사용하지 못하는 환우가 없도록 제약사에서도 환급제도를 적극 지원해주면 좋겠다"며 삶의 희망인 '신약'이 약값 때문에 환우들에게 다시 절망을 안기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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