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신약 나왔지만 희귀질환 특수성에 급여에서 소외
알려지지 않은 희귀질환 '신약', 원칙에 맞게 급여 책정을
우리사회는 그간 치료사각지대에 놓여있던 '희귀질환' 극복을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가장 큰 변화는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되고 2016년 본격 시행되면서 이뤄졌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은 지난 2018년 926개에서 시작돼 2020년 1,086개, 2022년 1,165개로 꾸준히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희귀질환관리법에 기초해 희귀질환에 대해 다양한 지원 정책들이 추진되면서 국내 총 약품비 중 희귀의약품 비중은 2014년 1.3%(1,729억원)에서 2018년 2.1%(3,775억원), 2022년 2.7%(6,224억원)로 꾸준히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기적의 치료제라 불리는 희귀질환 신약이 환자 손에 닿기 어려운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희귀질환 신약들이 모두 억대의 고가 신약인데다 환자 수가 적어 대규모 임상연구가 불가능해 임상적 유효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한계에 놓인 것만이 다가 아니다.
8,000여종의 희귀질환 각각의 내밀한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희귀질환에 대한 치료제가 있어도 형평성에 맞는 급여 치료를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 대표적인 질환이 유전재발열증후군(Hereditary recurrent fever syndromes)이다.
유전재발열증후군은 유전자 이상으로 '면역물질' 인터루킨-1베타(IL-1β), TNF-알파(TNF-α), JAK, 인터페론 등이 과다 생성돼 우리 몸에 불필요한 염증반응을 일으켜서 각종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 병이다.
이상 유전자가 MEFV 유전자이면 '가족성 지중해 열(FMF)', NLRP3 유전자이면 '크리오피린 관련 주기적 증후군(CAPS)', TNFRSF1A 유전자이면 '종양괴사인자 수용체 관련 주기적 증후군(TRAPS)', MVK 유전자이면 '고면역글로불린D증후군/메발론산 키나아제 결핍증(HIDS/MKD)' 등과 같이 세부질환으로 명명된다.
국내에는 그나마 FMF와 CAPS 환자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CAPS 환자도 20~30명 정도로 예견될만큼 환자 수가 매우 적다. 유전재발열증후군은 유전자 이상으로 어떤 면역물질에 문제가 나타나는지에 따라 치료법이 다른데, 대부분 인터루킨-1베타의 문제여서 현재 인터루킨-1베타를 타깃한 치료제인 아나킨라에 급여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
아나킨라는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정식 허가를 받은 약이 아니고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현재 국내 들어오고 있는 약인데, 현재 급여가 이뤄지는 '특수한' 배려를 받는 약제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 TNF-알파나 JAK 등의 경로에 문제가 생기는 유전재발열증후군 세부질환의 경우, 즉 더 극소수일 것으로 분류되는 유전재발열증후군 세부질환 환자들은 TNF-알파제제나 JAK억제제 등 국내 도입된 치료제를 손 쉽게 쓸 수 있는 상황이지만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성헌 교수는 "드물게 몇 명 되지 않지만 인터루킨-1베타가 아닌 또 다른 면역물질의 패스웨이의 문제일 때는 국내 들어와 있는 그에 맞는 생물학적제제를 쓴다"며 "하지만 그 약물들의 국내 허가 사항에 당연히 유전재발열증후군이 없기 때문에 비급여로 써야 한다"고 짚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별도의 질병코드조차 없어 신약이 있는데도 여전히 짙은 그늘에 놓인 희귀질환도 있다. 국내 약 100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랭응집소병이 대표적인 경우다.
현재 한랭응집소병 환자들은 '기타 자가면역성 용혈성 빈혈'로 분류돼 제 병명조차 찾지 못하고 있고, 이런 까닭에 한랭응집소병 진단 5년 내 사망률 35%라는 초라한 치료성적은 당분간 개선되기 힘든 상황이다.
올해 7월 한랭응집소병 신약 수팀리맙이 국내 허가되면서 한랭응집소병에 대한 치료환경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지만, 질병코드를 획득하고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로 지정된 뒤 산정특례까지 받아야 실제 환자에게 신약이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신약에 대한 급여 절차를 마무리 짓는데 더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더 문제는 진단방랑으로 떠돌던 희귀질환 환자들이 진단명을 찾아도 자신의 병에 대해 제대로 알기 어렵고, 60~70대 고령에 주로 발병하는 한랭응집소병 같은 극희귀질환의 경우에는 이 사회에 치료 불평등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조차 어려워 상황을 반전시키기 더 어렵다는 현실이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는 "일부 희귀질환은 신약을 썼을 때 항암신약보다 더 드라마틱한 치료 효과를 내는데, 여러 여건 상 효과 높은 희귀질환 신약의 급여 진입이 항암신약보다 더 어렵다"며 "무엇보다 극희귀질환의 경우에는 환자 수가 너무 적어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보니 당국에 이같은 현실을 알리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희귀질환 급여 관련 환우와 가족이 나서서 목소리를 낸 뒤에야 정부가 움직이는 현재의 구조에서 벗어나 정부에서 능동적으로 희귀질환 환우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선회가 필요하다는 것이 의료현장의 목소리이다.
장준호 교수는 국내 희귀질환의 여러 여건을 고려했을 때 "희귀질환 약제 급여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내 기구를 마련해 따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장 교수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면 건강 형평성에서 멀어지기 쉬운 희귀질환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해 "희귀질환 급여 별도 부서가 마련돼 환자들의 목소리가 아닌 신약 급여 원칙(질환 중증도·대체약 여부·치료 약제의 효과·치료 약제의 비용 효과성·제약사의 적극적 재정분담안 제출)에 맞는 급여가 모든 희귀질환에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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