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진미향 부회장
국내서 치료 받길 원하는 암 환자들, 해외로 등 떠미는 규제들
루타테라 치료, 국내서 총 6회로 제한…해외치료 이력 포함도
3차·4차 치료 때 루타테라 급여…"최소 2차 치료에 급여 필요"
"위산 등 내뿜는 기능성 신경내분비종양일 땐 적극적 치료를"
독일이나 말레이시아로 해외원정치료를 다니던 암 환자들이 의료인프라가 잘 갖춰진 국내에서 '동일한 암치료'를 받기 위해 한 뜻으로 뭉쳐서 차세대 항암신약이라 불리는 방사성의약품 루타테라의 도입부터 급여까지 꾸준히 목소리를 내 국내 새로운 암치료환경을 만든 '희귀암'이 있다. 바로 신경내분비종양이다.
신경내분비종양은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계' 세포에 생기는 희귀암이다. 대장부터 위, 소장, 맹장, 폐, 흉선, 췌장 등등 우리 몸에 내분비계 세포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 신경내분비종양이 생길 수 있으며, 국내에는 이 가운데 위장관계 신경내분비종양, 췌장 신경내분비종양 등이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귀암이어서 의료진조차 인지도가 낮은 '신경내분비종양'에 대한 국내 진단과 치료 환경은 현재도 열악하지만,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이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강건욱 교수의 도움으로 독일이나 말레이시아로 대규모 해외원정치료를 떠나기 시작한 2017년에 비해서는 그나마 많이 개선됐다.
그때는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간동맥화학색전술 등 국내에서 해볼 수 있는 모든 치료법으로 더는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이 '차세대 항암신약' 루타테라 치료를 받기 위해 해외원정치료를 가야 했지만, 지금은 국내에서 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데다 급여까지 가능해진 것이 무엇보다 큰 변화다.
루타테라는 신경내분비종양에만 발현되는 소마토스타틴 수용체를 표적한 핵의학 치료로, '소마토스타틴 유사 물질'과 방사성 동위원소 '루테슘'을 결합한 방사성의약품이다. 암세포의 소마토스타틴 수용체에 달라붙어 방사성 물질로 집중 포격하므로 강력한 표적치료 효과가 있다. 이 치료의 국내 도입 계기는 환자들의 목소리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해외원정치료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이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17년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를 만든 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연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루타테라가 2019년 11월 미허가 긴급도입의약품으로 인정돼 국내 들어올 수 있었고 2021년 3월부터 급여까지 이뤄졌다.
이 덕분에 독일에서 1회 5,000만원가량, 말레이시아에서 1회 1,300만원 가량의 비용을 들여 루타테라 치료를 받아야 했던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이 국내에서 산정특례를 통해 전체 비용(약 2,200만원)의 5%만 내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급하게 루타테라에 대한 급여가 이뤄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해외원정치료를 가지 않고 국내에서 루타테라 투약을 받기 위해 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가 목소리를 내온 것인데, 루타테라에 대한 급여 설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암치료인데 치료 횟수가 국내에서 총 6번(급여 4번, 비급여 2번)으로 제한되면서 다시 해외로 원정치료를 나가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진미향 부회장(55세)은 "국내에서 총 6번의 루타테라 치료를 한 환우 중 다시 종양이 자란 환우는 7번째 루타테라 치료를 위해 또 다시 해외원정치료를 나가고 있다"며 "해외원정치료를 나갈 경제적 여력이 없는 환우들은 치료를 포기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우리나라처럼 암치료인 루타테라 치료에 치료 횟수 제한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진 부회장은 "말레이시아나 독일은 루타테라를 횟수 제한 없이 쓸 수 있다"며 "일본과 미국 등에서도 효과가 있으면 4회 이상 치료를 보장한다"며 '급여' 횟수는 통제하지만 '치료' 횟수는 통제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결국 루타테라 치료에 대한 보건당국의 횟수 제한 규제는 '횟수 제한이 없는 나라'로의 해외원정치료를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이 해외원정치료를 받지 않기 위해 힘겹게 노력한 값진 결과가 중간 어딘가에서 왜곡돼 다시 환우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비행기 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진미향 부회장은 "일반 항암제는 종양이 다시 커지면 그 약에 내성이 생긴 것이지만, 루타테라는 치료를 하면 또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때문에 루타테라는 일반 항암제 기준이 아닌 별도 급여 기준을 둬야 한다"며 루타테라에 대한 치료 횟수 제한 규제는 환우들의 치료권 보장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원정치료 환우들이 모여서 2017년 만들어진 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에서 최근 이슈가 된 것도 같은 선상의 문제다. 10여년 전 해외원정치료를 통해 루타테라로 죽음의 위협에서 빠져나온 한 환우가 지난해 다시 신경내분비종양이 악화돼 국내에서 처음으로 루타테라 치료를 받게 됐는데, 최근 치료비 삭감 조처가 된 까닭이다.
이 환우와 의료진은 국내에서 이뤄진 첫 루타테라 치료이니 급여가 될 것이라 여겼지만, 보건당국의 판단은 달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해외에서 루타테라 치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급여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루타테라 치료비 삭감 조치를 내렸다. 삭감 근거는 의사가 꼼꼼하게 적어놓은 해외 루타테라 치료 이력이었다.
해외원정치료로 이뤄진 루타테라 투약 이력까지 보건당국이 치료 횟수로 치면 국내 많은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이 치료비에 대한 경제적 부담만이 아니라 '국내에서 치료받을 기회'까지 잃게 된다. 이는 국내 신경내분비종양 환우 상당수가 정부의 규제로 치료비에 더해 항공비, 체류비를 내고 해외원정치료로 내몰리게 됐다는 뜻이다.
더구나 보건당국이 정한 국내 루타테라 급여 기준도 너무 엄격하다고 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는 지적하고 있다. 현재 급여는 절제 불가능하고 분화가 좋은 소마토스타틴 수용체 양성 진행성·전이성 위장관 신경내분비종양 성인 환우의 3차 이상 치료, 췌장 신경내분비종양 성인 환우의 4차 이상 치료로 규정돼 있다.
2020년 5월 진 부회장의 남편은 췌장에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신경내분비종양 원발암이 있고 간 전이가 진행된 상태로 췌장 신경내분비종양 진단을 받으면서 전체 암치료비 중 5% 내고 받을 수 있는 '급여 루타테라 치료' 기회를 포기하고, 100%를 내야 하는 '비급여 루타테라 치료'를 서울대병원에서 받았다. 그 이유가 있다.
진 부회장은 "종양 크기가 적을 때 루타테라 치료 효과가 더 높은데 국내는 다른 약으로 1차 치료, 2차 치료, 3차 치료를 해서 각각 30% 이상 종양이 커질 때 쓸 수 있기 때문"이라며 발견 단계의 암보다 2배 가까이 커졌을 때 루타테라를 쓸 수 있게 급여 설정이 이뤄져 급여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신경내분비종양 전문 의료진은 처음 진단됐을 때 종양이 너무 많이 퍼져 있을 때 기존 약제로 조절할 수도 있지만 장기간 그 치료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에게는 1차 혹은 2차 치료로 루타테라를 권한다.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먼저 해야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삶의 질도 올릴 수 있는 까닭이다.
진미향 부회장은 "종양이 적을 때 효과적인 치료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호주는 루타테라가 1차 치료에 들어가 있고 미국도 앞단에서 루타테라 치료를 하는데, 국내는 너무 뒷단에 있다"며 "최소한 2차 치료제로 급여를 정하는 것이 암 환자의 생존율과 함께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에도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루타테라 치료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악화되는 신경내분비종양 환자에게는 루테슘 대신 악티늄을 넣는 치료가 현재는 유일한 대안인데, 지난 6월 한국원자력의학원이 연구자 임상시험을 통해 악티늄 치료를 시작하면서 이 치료를 위해 독일, 인도 등으로 향하던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하지만 방사선 동위원소 악티늄의 밸류체인 문제로 현재 한국원자력의학원에서 진행하는 임상연구에 차질이 빚어지는 게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자체 수급이 가능한 '의료용 방사선 동위원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적극적으로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진 부회장은 "방사선 동위원소는 모든 국가가 자국 우선주의를 택하기 때문에 수급에 언제든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에서 국민의 안전을 위해 연구를 막는데, 환자 입장에서는 의료 목적으로 방사선 동위원소를 이용하는 연구에 대해서는 문을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역설했다.
희귀암인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이 누구보다 의료진에게 바라는 것도 있다. 신경내분비종양은 내분비계 세포에 생기는 암으로, 일부 암은 혈당을 떨어뜨리는 '인슐린'이나 소화를 돕는 '위산' 등을 뿜어내며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데, 희귀암이어서 발견이 늦는 신경내분비종양에 적극적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 까닭이다.
신경내분비종양은 특이하게 암이 생긴 부위의 내분비계 세포 고유의 호르몬 과다 생산으로 저혈당, 위산과다, 혼수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기능성 신경내분비종양'이라고 별도로 칭하는데, 이들 기능성 신경내분비종양 환우들은 커진 암세포에서 내뿜는 과도한 호르몬 때문에 너무 처참한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진미향 부회장은 "밤새도록 과도한 위산 때문에 죽을만큼 아픈데, 4기 암이라서 병원에서는 수술해주지 않는 게 국내 현실"이라며 "유럽신경내분비종양 가이드라인에는 이런 환자들의 삶의 질을 위해 적극적으로 수술을 권하는데, 국내에서는 희귀암이어서 외면받고 있다. 희귀암에 대한 국내 의료진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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