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진 회장 “빅5 중 혈우 환자 받아주는 곳 세브란스가 유일”
혈우병치료제 있는 병원 서울 4곳 불과…약 보유 병원 인지 필수
“의료대란으로 보유하던 약 소진 중…심각한 순간 올까 두려워”
4월 17일은 세계혈우연맹(WFH)이 지난 1989년 제정한 ‘세계 혈우인의 날’이다. 세계혈우연맹은 출혈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매년 슬로건을 정하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의 슬로건은 ‘모든 이에게 공평한 기회: 모든 출혈질환에 대해 알기’로, 출혈성 질환이 있는 모든 사람이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1994년 혈우병 환자들의 어머니들이 만든 한마음회가 혈우병 관련 환자단체의 시초로 청년단체인 고리회를 거쳐 현재는 한국코헴회라는 이름으로 혈우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 및 치료환경 개선 등을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한국코헴회 회장으로 취임한 박한진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비급여 의료비 지원 확대 ▲회원간 네트워크 구축 ▲회원 유대 강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회계 투명화 ▲혈우병에 대한 사회 인식 개선 등에 적극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앞으로 3년간 한국코헴회를 이끌어나갈 박한진 회장을 만나 국내 혈우병 환자들의 치료환경, 혈우병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한 과제, 회원 권익향상 방안 등에 대해 들었다.
- 환자들이 체감하는 국내 혈우병 치료 환경은 어떠한가.
혈액(종양)내과나 정형외과 등 혈우병 환자를 접해본 의료진들은 혈우병 환자들도 수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혈우병 환자들은 스케일링조차 동네병원을 이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일례로 지방의 2차병원 치과에서 생명포기 각서를 써야만 스케일링을 해줄 수 있다고 한다거나 사고로 인해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평상시 다녔던 병원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송됐는데 혈우병 환자라고 하면 수술을 못한다고 타 병원으로 전원을 시키는 경우다. 교통사고 등 응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자칫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때문에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회원들에게 약속한 것 중 하나도 회원들이 어디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어 가능한 빨리 치료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혈우병 약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전원을 시키는 것은 그나마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약이 있는 병원에서조차 혈우병에 대해 잘 몰라 일반 사람들처럼 진료하는 의사들도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에는 한 회원이 출혈로 인해 병원 응급실을 갔는데 혈우병을 치료하는 병원임에도 엑스레이부터 찍고 그 결과에 따라 응고제제를 맞을지 결정하겠다고 했다며 협회로 도움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대개 병원에 갈 때는 집에 있던 약을 가지고 가라고 하는데 약이 있었음에도 20시간이 넘도록 약을 놔주지 않았다고 하더라.
혈우병은 전세계적으로 1만명당 1명의 비율로 발생하는 희귀난치질환이다. 혈우병 환자는 출혈이 생겼을 때 응고가 잘 되지 않아 지속적인 출혈로 이어질 수 있고 잦은 출혈로 인해 출혈부위가 장애로 이어질 수 있으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어 주기적으로 응고인자를 투여 받아야 한다.
- 이유는 무엇이었나?
의료진이 보통의 환자들처럼 엑스레이나 MRI를 찍고 결과가 나오면 왜 그런지 판단을 한 다음에 그걸 맞아야 한다고 했다고 하더라. 몸속에서 터져서 그런 건지 다른 데서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지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그러나 혈우병 환자들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더라도 몸 속 어딘가에서 출혈이 있을 수 있다. 빠르게 지혈을 하지 않으면 조직이 파괴되기 때문에 주치의들은 응급조치로 응고제제부터 투여하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혈우병 환자가 있는 가정들은 응급약 개념으로 여유분의 약을 갖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혈우병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이 아닌 경우 그렇게 하지 않는 분들이 꽤 있다.
- 희귀질환의 특성상 혈우병조차도 아직 의료진들에게는 생소한 질환인 것 같다.
사실 빅5병원 중에서도 혈우병 환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세브란스병원이 유일하다. 그 외 병원에는 혈우병 치료제가 (병원에) 들어가 있지 않다. 즉, 서울대병원 앞에서 사고가 났다고 해도 (약이 없다보니)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야되는 상황인 것이다.
혈우병을 보지 않는 병원들이 환자가 오면 빨리 혈우병 전담 병원이나 클리닉으로 보내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내 혈우병치료제가 없다보니 환자가 오더라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거다. 암이라고 했다면 어느 병원이든 다 진료를 하기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보내려 하지 않겠지만 혈우병 같은 희귀질환의 경우 현실은 아직도 밀어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그렇다면 혈우병 환자들의 경우 응급 상황이 있을 때 갈 수 있는 병원을 다 인지하고 있을 것 같다. 서울의 경우는 어떠한가.
서울의 경우 강동경희대병원, 경희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이대서울병원 정도이며, 시도별로 1개 정도씩 있다고 보면 된다.
- 효과 좋은 혈우병 치료제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관절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게 되면 수술을 하게 될 텐데 질환의 특성상 수술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사실 과거에는 수술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데 경희의료원장을 지내신 유명철 교수님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시도를 하시면서 다른 병원들에도 전파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혈우병 약이 싸지 않다보니 정부에서는 비싼 약을 많이 쓴다고 자꾸 삭감을 한다. 힘들게 수술했는데 삭감되니 병원들로서는 점점 소극적이 되는 것 같다.
- 삭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응고인자가 40% 미만이면 혈우병으로 진단을 하는데 보통 성인의 경우 정상인이라고 해도 100%가 안되고 80%나 90%인 경우도 있다. 한 번 약을 맞아서 3일 동안 좋다 그러면 수술하는데 몇 시간이고, 치료하는데 며칠이고 하니 수술을 해도 괜찮다. 하지만 반감기가 8시간, 항체가 있으면 4시간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이지만 몇 시간만 지나면 혈액응고인자 수치가 뚝뚝 떨어지게 되니 수술하는 동안에도 맞아야 한다. 더욱이 밥 먹자마자 배 부른 것처럼 증상이 바로바로 나오는 게 아니다. 만약 10시에 채혈을 했는데 검사 결과가 1시에 나왔다고 하면 이미 30 정도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의료진 입장에서는 중요한 수술하는데 수술 중 떨어지면 어쩌나 불안하기 때문에 100%가 아닌 120%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니 정부에서는 '100이면 충분한데 120까지 써서 낭비를 하나. 낭비하는 것 만큼은 줄 수 없다' 하면서 삭감을 하는 것이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수술을 잘하려고 한 건데 약값을 물어내게 되니 병원으로서도 수술 안하려 하고 '혈우병을 우리는 안봅니다, 혈우병만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으로 가세요'라는 말이 나오는 거다.
- 최근 의대정원 증원 사태로 젊은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며 의료공백이 우려되고 있다. 혈우병 환자들의 경우 병원 이용에 문제는 없었는지.
지역마다 한 곳씩 있는 대학병원으로 약을 타러 가야하지만 진료가 미뤄지기도 하고 예약을 안받는 곳도 있다. 우선은 여유분으로 갖고 있는 약들을 쓰게 되겠지만 그것마저도 소진될 경우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허벅지에 염증이 심해 수술이 불가피했던 환자분이 있었는데 약이 있는 병원에서는 받아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약이 없는 병원에서 본인이 갖고 있던 약으로 수술을 받았다. 약이 더 필요해 처방 받으려 하니 타 병원에 입원해 있어 이중처방으로 1,2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더라. 혈우병 약을 100% 본인이 부담해야 했던 것이다.
결국 수술한 병원에서 회복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원을 해 다니던 병원에서 급여로 혈우병 약을 처방받았고, 그 이후 다시 수술했던 병원에 재입원을 했다. 그나마 염증이었으니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복부에 출혈이 온 상황에서 비슷한 상황이 생겼다면 환자에게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최근 혈우병 제제들이 많이 도입되고 건강보험까지 적용되는 등 치료환경이 좋아지는 것 같은데.
정부에서는 혈우병 약제들에 대해 건강보험을 확대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저희가 봤을 때는 어떤 약이 들어오든지 혈우병 관련 예산 규모는 사실상 동결상태라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약이 나오고 약가가 더 올라가든지 해도 정부에서는 비슷한 예산에서 집행을 한다.
반감기가 긴 신약 같은 경우는 좀 비싸게 책정되다보니 용량이 절반으로 줄게 된다. 예를 들어 100을 맞아야 100%의 효과를 보게 된다면 약값이 비싸니 정부에서는 용량을 50으로 줄여 급여를 해주는 것이다. 결국 환자들은 100%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1대 맞을 것을 2대 맞아야 하니 비용을 더 부담하거나 신약을 포기하게 된다. 좋은 약이 나왔으니 조금 더 혜택을 볼 수 있게 해달라 정부에 요구도 많이 해봤지만 그럴 때마다 정부는 희귀질환 가운데 혈우병은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 편이라며 그 정도에 만족하라는 듯 눈치를 준다.
그나마 혈우병 환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달에 처방 받을 수 있는 횟수를 6회에서 12회로 늘리는 데는 성공했다. 이는 환자의 편의 문제지 재정과는 무관하니 정부에서도 받아주더라. 그렇다고 쉽게 해준 것도 아니다. 그렇게 되는 데도 1년이 걸렸다.
- 혈우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과거 혈우병 환자를 보고 드라큘라나 흡혈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혈우병 환자나 가족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충격이 된다. 얼마 전 본 글에서는 남자친구가 혈우병이라고 하니 댓글에 '결혼하지 마라, 힘들다' 그런 댓글이 상당히 달려 있더라. 혈우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 인식 때문이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혈우병이 X 염색체 열성유전이어서 여자들 중에는 혈우병 환자가 없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여자 환자도 많다. 또한 혈우병이 유전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가족 중 아무도 없는데도 돌연변이로 혈우병 진단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교 다니면서 검사하고 심지어 군대를 다녀온 후, 나이 들어 수술하려 검사했다가 진단을 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
코헴회에서는 이러한 혈우병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올바른 정보를 적극 홍보해나갈 계획이다.
- 4월 17일은 세계 혈우인의 날이다. 이날을 기념해 준비하고 있는 게 있는지.
세계 혈우인의 날에 맞춰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인식 개선을 위한 대표적인 행사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한강에서 행사를 열기도 했고 그 이후에는 국회에서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세계혈우연맹에서는 매년 ‘레드 타이 챌린지’를 시행한다. 우리나라도 혈우병을 의미하는 붉은 색 넥타이(또는 브로치)를 착용하고 출혈 장애를 갖고 있는 환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영상으로 담아 소셜네트워크SNS(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해시태그 ‘#RedTieChallenge’ 또는 ‘#레드타이챌린지’를 걸어 게시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2024 세계혈우인의날 기념 영상 및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한다. 혈우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건강한 발전상을 담은 ‘영상 컨텐츠’와 ‘아이디어’를 공모해 사회에 확산하고 실제 사업 실행으로 이어지게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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