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욱의 희귀질환 톺아보기]
분당차여성병원 임상유전체의학센터 유한욱 교수
부신 겉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합성의 유전적인 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선천성 부신증식증(congenital adrenal hyperplasia)이라는 질환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이다.
선천성 부신증식증은 성 발달 이상의 주요한 원인으로 아주 드문 질환은 아니다. 부신 겉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은 스테로이드계 호르몬으로, 콜레스테롤로부터 만들어지며 코티솔, 알도스테론(염분 저류 스테로이드)과 안드로젠(남성 호르몬)으로 구분된다. 코티솔은 혈액 순환과 신체대사의 정상적인 유지에 관여한다. 신체가 스트레스에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하는 역할과 혈당을 정상적으로 유지하여 저혈당을 예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알도스테론은 체내에서 염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안드로젠(또는 남성 호르몬)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부신 겉질에서 형성되며 남성의 고환에서도 생성된다. 남성, 여성 모두에서 부신안드로젠은 사춘기에 음모를 발달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들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만드는 데는 약 10개 미만의 여러 효소들이 단계적으로 필요하다. 이 효소결핍들은 모두 유전적 장애로 발생한다. 그리고 모두 상염색체 열성 유전을 한다. 즉, 부모는 보인자이고 이런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1/4이 환자가 된다.
의과대학생들이나 내분비학을 전공하지 않은 의사들에게도 생소한 질환들이다. 질환명도 다양하게 불린다. 일반적으로 선천성 부신증식증 또는 선천성 부신과형성으로 불리는데 이는 병리학자의 입장에서 명명된 이름이다. 이 환자들의 부신 겉질이 비정상적으로 증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화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구체적으로 특정한 효소결핍에 의한 질환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지난 회에 다룬 21-수산화효소결핍증 등이다. 또한 이 질환들이 성 발달 이상을 초래하기 때문에 임상가의 입장에서는 부신성기증후군(adrenogenital syndrome)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름 만큼이나 스테로이드 합성단계와 발병기전도 매우 복잡하다. 발병기전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여러 개의 다목적 댐이 있는데 상류의 특정 댐을 영원히 막아버리면 하류는 물부족 현상을 겪을 것이다. 상류에 저류된 물이 넘쳐서 다른 지류의 강으로 흘러 들어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너무 과장해서 단순화한 것 같은 걱정이 든다.
이번 회에는 유전적으로 남성(XY), 여성(XX)에 상관없이 모두 여성으로 살아가야만 하는(아주 드문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두 질환을 다루고자 한다. STAR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는 지질성 선천성 부신증식증(lipoid congenital adrenal hyperplasia)과 CYP17이라는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한 17-알파-수산화효소결핍에 의한 선천성 부신증식증이다.
지질성 선천성 부신증식증은 제일 상위 댐이 막힌 것과 같은 질환이다. 하류의 심한 물 부족은 당연한 것이다. 즉, 부신에서 생성돼야만 하는 코티솔, 알도스테론(염분 저류 스테로이드)과 안드로젠(남성 호르몬)이 모두 결핍된다. 스테로이드 합성 첫 단계 장애다. 스테로이드는 콜레스테롤을 기본으로 하여 합성되기 시작한다. STAR단백은 콜레스테롤을 부신 및 성선 세포 내의 사립체안으로 이동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단백질 기능에 장애가 있으면 스테로이드들의 모든 합성 단계가 차단되는 것은 물론 콜레스테롤이 사립체에 들어가지 못하고 세포 내에 축적돼 부신이 지방축적으로 커지며 조직도 파괴된다.
발생빈도는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국인과 일본인에게는 상대적으로 흔하다. 1990년대 초에 이 질환이 STAR 유전자의 이상 때문이라는 것도 한국과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환자들에서 처음 알려졌다. 매우 흥미로운 점은 STAR 유전자의 특정한 돌연변이(258번째 글루타민 아미노산이 정지코돈으로 바뀐 변이)가 한국인과 일본인 환자애서 흔하다. 특히 한국인 환자에서는 거의 90%를 차지한다. 필자의 연구진들은 이 돌연변이의 한국인 조상효과(founder effect)에 관한 연구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한국인 조상에서 시작해서 아마도 도래인을 통해 일본에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임상증상은 전형적인 형태의 경우 매우 치명적이다. 신생아 선천성대사질환 스크리닝 검사로도 선별해 낼 수 없다. 출생 후 수 시간, 수일 이내에 심한 염분소실과 저혈당으로 쇼크가 발생한다. 피부색깔은 심하게 착색돼서 매우 검다(이는 뇌하수체에서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부신에 호르몬을 합성하라고 너무 많은 신호를 보내서 그러하다).
외부 성기 모양은 전형적인 여아의 모양이다. 염색체 검사를 하면 유전적으로 진짜(?) 여아(XX)일 수 도 있고 남아(XY)일 수도 있다. 남아의 경우는 외부 성기모양은 전형적인 여아이고, 자궁 및 난소는 없고 질의 아래 부분만 존재한다. 사타구니나 복강 내 고환이 존재한다. 여러 내분비학적 검사와 더불어 유전자 검사로 진단한다.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면 사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치료는 응급치료와 장기적인 치료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응급상황에서는 수액주사로 충분한 전해질과 포도당을 공급한다. 필수적인 것은 비교적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투여하는 것이다.
급성기에서 벗어나면 생리적인 용량의 스테로이드(하이드로코티손)와 프로리네프라는 염분을 저류하는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게 된다. 유전적 남아(XY)의 경우 적절한 시기에 고환을 제거한다.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가 되면 여성 호르몬을 복용하기 시작한다. 여성으로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 여아(XX)의 경우 난소에도 지방이 축적됨으로 난소낭종 등이 생겨서 낭종절제수술 및 여성호르몬 투여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난임이 동반된다.
17-알파-수산화효소결핍은 스테로이드 합성단계에 중간쯤에 있는 댐이 막혀서 코티솔과 안드로젠(남성호르몬)은 부족하게 되고, 댐이 넘쳐서 오히려 염분을 저류시키는 알데스테론은 증가한다. 따라서 유전적인 성(XY, XX)에 관계없이 모두 여성화를 보인다. 진단은 대개 늦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질환도 신생아 선천성 대사질환 스크리닝 검사로는 발견되지 않는다. 사춘기에 접어들었는데 가슴발달이 없어서 검사하다 발견되거나 사타구니에 고환 같은 것이 만져져서 진단되기도 한다.
성인기에는 고혈압 때문에 검사하다 발견된다. 알데스테론 증가는 염분흡수를 촉진하여 고혈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 질환은 내분비성 고혈압의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유전적 여성(XX)의 경우에는 사춘기가 지연되거나 발달이 부진하다. 난임이 동반된다. 진단은 내분비 및 생화학적 검사, CYP17 유전자 검사로 확진한다. 치료는 고혈압의 관리가 중요한데, 짠 음식에 혈압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함으로 싱겁게 먹고 스테로이드를 복용한다. 유전적 남성(XY)의 경우 고환을 제거하고 여성호르몬 치료를 함으로 여성으로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도록 한다. 유전적 여성의 경우에서도 난소기능부전으로 여성호르몬 투여가 필요하고 난임이 동반된다.
성 발달 이상은 생물학적인 것으로 불행하게도 유전학적인 성(XX, XY)과 외부 성기 모양, 생식샘(난소, 고환) 상태, 내부 생식기(자궁, 질) 모양, 성 호르몬의 농도 등의 생물학적인 특성들이 어느 특정한 성에 일치되지 않는 것이다. 환자의 부모님들은 유전적인 성(sex)만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한다. 물론 성 결정(sex assignment)은 쉬운 일은 아니다. 여러 생물학적 특성을 고려하여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쪽으로 성을 결정하되 너무 비가역적인 외과적 개입은 가능하면 늦춘다는 원칙이나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유전적인 성과 일치하지 않는 성별로 살아갈 때 부모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은 향후 “아이들의 성 정체성(gender identity)에 문제가 없겠느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큰 문제는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또 아이들에게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의학적 진실을 알려주어야 하나?”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다.
성 발달 이상 질환은 반드시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한 질환이다. 환자의 부모를 포함하여 소아내분비학, 소아비뇨기과학, 청소년부인과학, 소아정신과학, 임상유전학 및 유전상담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토의하고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의료적 지원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는 이러한 희귀질환들을 다루는 ‘성 발달 이상 특수클리닉’이 활성화 돼 있다. 국내는 ‘성장클리닉’, ‘성조숙증클리닉’만 보편화되어 있는 현실에 비추어 ‘성 발달 이상 클리닉’은 아직 미개척 분야라 할 수 있다. 불편한 이야기이지만 병원 입장에서 보면 투입되는 인력, 시간 등에 비해 수입이 적기 때문이다. 지금 의료개혁이 화두인데 많은 검사를 하고 고가의 약을 처방하는 데에만 재정을 투입할 것이 아니라 이런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한 희귀질환들의 진료비도 현실화해야 할 것이다.
유한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마운트 시나이병원 유태인 유전학센터에서 연수한 뒤 미국의학유전학전문의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소장을 거쳐 소아청소년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 대한의학유전학회 이사장, 복지부 선천성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연구센터장, 진흥원 희귀난치병정복사업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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