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학대학 분당차여성병원 임상유전체의학센터 유한욱 교수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는 두가지 내분비기관이 있다. 하나는 남성에게만 있는 고환이고 다른 하나는 남성, 여성 모두 가지고 있는 부신이다. 부신은 우리 몸에서 양쪽 콩팥 위에 고깔 모양으로 올려져 있다. 길이는 콩팥의 1/4, 무게는 1/30 정도로 작지만 매우 중요한 장기이다. 부신은 병리학적으로는 겉질(피질)과 속질(수질)로 나뉘며 분비되는 호르몬도 다르다.
부신 겉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들을 합성하는데 필요한 효소들의 유전적인 결핍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이 있다. 바로 선천성 부신증식증(congenital adrenal hyperplasia)이다. 선천성 부신증식증을 2회 걸쳐서 소개하려 한다.
부신 겉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은 스테로이드계 호르몬이다. 스테로이드 호르몬들은 콜레스테롤로부터 만들어지며 코티솔, 알도스테론(염분 저류 스테로이드)과 안드로젠(남성 호르몬)으로 구분된다.
코티솔은 혈액 순환과 혈당 조절 등 많은 체내 대사의 정상적인 유지에 관여한다. 신체의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역할과 저혈당 시 혈당을 정상적으로 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알도스테론은 체내에서 염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안드로젠(또는 남성 호르몬)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부신 겉질에서 형성되며 남성의 고환에서도 생성된다. 남성, 여성 모두에서 부신 안드로젠은 사춘기에 음모를 발달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들 호르몬을 만드는 데는 여러 효소들이 필요하며 유전적 장애로 결핍이 발생한다. 가장 흔한 원인은 21-수산화효소결핍에 의한 것이다. 코티솔의 합성 과정에 관여하는 효소들 중 하나이다. 이 효소가 결핍되면 혈액 내 코티솔이 감소한다. 뇌하수체는 이러한 코티솔의 낮은 혈중 농도를 감지하여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을 많이 분비하게 된다. 이에 의해 부신 겉질이 증식된다.
선천성 부신증식증의 95%는 21-수산화효소결핍에 의한 것이다. 신생아 약 2만명 당 1명의 빈도로 발생하여 드물지 않은 질환이다. 모든 신생아를 대상으로 하는 선천성 대사질환 선별검사에서 ‘17-알파-하이드록시프로제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을 측정함으로 조기진단이 가능하다. 이 질환의 특징은 생명현상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코티솔과 혈중의 염분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알도스테론은 부족한 반면에 남성호르몬은 증가한다. 따라서 여자 신생아의 경우 출생시에 대부분 애매모호한 남자 같은 외부성기모양을 보인다. 여자를 비정상적으로 남성화시키는 가장 흔한 원인질환이다.
신생아 선천성대사질환 선별검사가 전국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1996년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는 진단이 늦어져서 사망하거나 유전적인 성은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점차 남성화되어 남자로 살아가는 분들도 있다. 이 질환은 상염색체 열성유전 형식으로 유전되기 때문에 부모님은 정상이나 형제, 자매간에 여러 명의 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환자를 낳은 부모는 다음 임신에서도 환자인 신생아를 출산할 확률이 25%이다.
임상증상은 세가지 형으로 분류하는데 제일 흔한 형태는 염분소실형이다. 선천성부신증식증의 3/4에 해당한다. 저나트륨혈증, 고칼륨혈증, 산혈증, 탈수, 저혈압이 생기고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하게 된다. 남아 환자의 경우 정상적인 남아 외부성기 모양을 보인다. 첫 증상은 대개 생후 1~2주 사이에 나타난다. 잘 먹지 못하고 체중이 감소하며 구토가 발생한다. 이러한 증상들은 알도스테론 결핍에 의해 염분과 수분이 소변을 통해 배출되면서 발생하며 응급 처치를 필요로 한다. 치료가 늦어지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여아의 경우 남성화된 외부 성기를 보인다. 음핵이 커져서 음경과 비슷한 모양을 띠게 된다. 때로는 심한 남성화 때문에 처음 아기의 성별이 불분명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어 부모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기가 여성 염색체(XX)와 내부에 정상적인 자궁, 질, 난소를 가지고 있다면 여아임이 틀림이 없으며 이러한 경우 외부 생식기의 성형술이 필요하다. 남아들과 마찬가지로 염분 소실의 증상이 나타난다. 치료는 스테로이드(하이드로코티손, 플로리네프)를 복용하는 것이다. 영아기에는 소금도 먹여야 한다. 소변으로 과량의 염분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두번째 임상형은 단순남성화형이다. 염분소실은 없다. 남아도 여아도 남성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신생아 선천성 대사질환 선별검사에서 결과가 애매하여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출생 후 남성화 현상이 진행되어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면 음모와 액모가 조기에 발현된다. 남아도 여아도 모두 남자의 형태로 성조숙증이 발생한다. 이들은 일시적으로는 나이에 비하여 키가 크나 골 성숙이 빠르게 진행되어 성장판이 빠르게 닫혀 최종 키는 작다.
여자 환자의 경우 내부 생식기가 여성이지만 유방 발달과 월경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여자 환자들이 성인까지 진단이 안 되면 남자로 양육되는 수도 있다. 치료는 스테로이드의 복용이고 여자의 경우 남성화된 외부성기의 성형수술이 필요하다.
세번째 임상형은 비전형적인 형태로서 무증상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유병률은 보고에 따라 다양하나 인구 1,000명 당 1명이라 하니 매우 흔하다 할 수 있디. 경미한 21-수산화효소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전형적인 형은 임상 증상이 다양하다. 전형적 21-수산화효소 결핍증과는 달리 출생 시 외부 성기의 변화, 탈수 증세는 없고 대개 사춘기가 진행함에 따라 부신 성호르몬의 과잉 증세를 보인다. 여자에서 불규칙한 생리주기, 배란 장애, 심한 여드름, 남성형 체모, 난임 등의 증세를 호소하며, 코티솔복용으로 호전된다. 남녀 모두에서 무증상으로 지내기도 한다.
요약하면 21-수산화효소결핍에 의한 선천성 부신증식증은 드문 질환은 아니며 현재 모든 태어나는 신생아에서 선별검사로 조기 진단이 가능하다. 유전적으로는 여성인데 남성화되는 원인 중 가장 흔한 질환이다. 치료는 코티솔의 분비 주기에 맞게 생리적인 용량의 스테로이드를 매일 보충해주는 것이다. 너무 많이 사용해도, 너무 적게 사용해도 환자에게는 문제가 생긴다. 또한 수술, 감염 등으로 스트레스에 처한 상황에서의 투약방법도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평생관리하고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본인의 유전적 성별로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특히 선천성부신증 여아 환자에 대한 부모님들의 걱정이 많은데, 주로 걱정하는 내용은 성 정체성의 변화에 관한 것들이다. 물론 치료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지만 신생아 시기에 진단된 거의 모든 환아들은 매우 정상적인 여자로서 잘 지낸다. 오히려 매우 적극적이고 지적이며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소위 '시크한 알파걸'들이다.
유한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마운트 시나이병원 유태인 유전학센터에서 연수한 뒤 미국의학유전학전문의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소장을 거쳐 소아청소년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 대한의학유전학회 이사장, 복지부 선천성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연구센터장, 진흥원 희귀난치병정복사업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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