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연구 어려운데…급여 적용 위한 '엄격한 잣대' 고민해야
비허가 신약 접근성 확대 방안·허가 소요 시간 단축 필요해
신약 급여에 완치가능성·사회복귀로 인한 이득 등도 반영을
물에 빠진 사람은 일단 구하고 보는 것이 인정이다. 하지만 암이라는 깊숙한 수렁에 빠진 환자를 매일 같이 진료하는 암 전문의는 진료실에서 그저 지켜봐야 할 때가 많다. 효과 높은 신약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지만, 신약이 허가에 막혀있을 때도 있고 허가가 됐어도 모두 고가 약인데 대부분 급여가 되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암 전문의들은 신약의 허가와 급여까지 암 환자가 '존버(존나 버티기)'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을 씁쓸하게 한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암환자가 처한 비참한 현실이다.
길병원 종양내과 안희경 교수는 지난 5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연 '중증·희귀질환자 중심 건강보험재정 개편 방안 심포지엄'에서 "약이 급여가 되는지 등 접근성에 따라서 암환자의 장기 생존 여부가 굉장히 많이 갈리는 것 같다"며 국내 암환자의 현실을 짚었다.
안희경 교수는 "당장 약이 필요한 중증 암환자는 눈앞에서 지푸라기라도 좀 받았으면 하는 물에 빠진 사람과 같은 느낌"이라며 "물놀이를 하는 곳에 안전 보트를 제공하려면 그 안전 보트가 정말 잘 기능을 하는지, 비용효과적인지 등을 잘 점검해서 물놀이 장소에 비치해야겠지만, 일단 내 눈 앞에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그냥 내 옆에 있는 것 중 가장 물에 잘 뜰 만한 것을 던져주고 싶은 것이 옆에서 지켜보는 의료진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료진은 물에 빠진 암환자에게 뭔가를 던져주기 쉽지 않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안 교수는 "신약이 국내 허가가 나있지 않으면 환자가 원해도 처방이 어려워서 돈을 댄다고 해도 드릴 수가 없고, 또 허가초과요법이 있기는 하지만 준비하는 의료진의 개인적인 노력과 승인에 걸리는 시간이 환자가 기다리기에는 짧은 경우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암 전문의가 그 어느 때보다 애가 탈 때가 있다. 안희경 교수는 "저희가 가장 투여하고 싶은 약제는 좋은 연구 결과가 나오고 미국 FDA에서 승인을 받아서 국내에서 허가를 준비 중인 신약"이라며 "그런 약재가 허가초과요법의 대상이 되지 않아 허가를 기다리다가 속수무책으로 안 좋아지는 환자를 볼 때 의료진 마음에 안타까움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다"고 피력했다.
무엇보다 의료진을 씁쓸하게 하는 때는 허가는 됐지만, 급여가 되지 않을 때다. 안 교수는 "국내 많은 약들이 급여가 되고, 실제 아시아의 많은 종양내과 의사들을 만나보면 우리나라가 절대적으로 고가 항암제가 급여가 안 되는 나라는 아니다"며 "경제 대국인 만큼 굉장히 좋은 약제들에 많은 급여 혜택이 있지만, 지금 우리 급여 환경은 5% 아니면 100% 자기가 부담해야 되는 환경이라서 (급여를) 아무 때나 쓸 수가 없어 대부분은 환자들에게 구덩이가 너무나 깊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는 허가보다 급여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드리운다. 그것은 유전자검사로 맞춤치료가 굉장히 활발히 이뤄지고 표적항암신약 개발도 왕성한 폐암 치료의 명암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선별급여로 50%의 비용을 정부에서 대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검사를 통해 유전자 변이를 찾는 시스템이 2017년부터 폐암 치료에 갖춰졌지만, 소수 유전자 변이에 맞는 신약에 대한 급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안희경 교수는 "어떤 유전자 변이는 폐암 환자의 10~20%를 차지하지만 어떤 유전자 변이는 폐암 환자의 1~2% 밖에 되지 않아서 많은 환자를 모아서 임상시험을 시행하기 어렵다"며 "수백 명을 필요로 하는 3상 임상시험의 시행은 더 더욱 어려운데 기존에 고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에 따라서 3상 연구가 시행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고배를 마신 약제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이런 이유로 "유전자검사를 한 이후 급여가 되는 표적치료제도 있지만 대상자가 적은 여러 소수 유전자 변이의 경우에는 사용할 수 있는 약제가 국내 허가는 받았지만 급여는 거의 되지 않고 있다"며 "급여 적용을 위해서 정말 이러한 엄격한 잣대를 꼭 들이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고 역설했다.
대한민국의 암환자들이 신약 허가와 급여 '존버'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안희경 교수는 "제도적으로 허가와 관련돼 비허가 약제에 대한 접근성이 강화되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미국의 경우는 의사의 재량권이 커서 비허가 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이 높다. 국내도 '임상시험의약품 치료목적 사용승인제도' 등 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류 절차 등이 복잡해 임상현장에 맞는 비허가 약제의 신속 확보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안 교수는 "신약의 허가까지의 시간이 단축돼야 하고, 급여로 가는 여러 가지의 관문이 재검토돼 95% 급여가 아니더라도 약을 사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며 "이때 급여의 근거가 되는 신약의 임상자료와 더불어 신약을 통해 얻는 사회 복귀와 완치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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