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로그가 만난 사람] '유전질환의 모든 것' 김아랑 대표운영자
콜롬비아대학병원에서 유전상담사로 근무하며 이화여대서 강의
진단 시 아무 소리도 안들려…설명해줘도 '못들었다' 하소연
“유전학과 외래 날짜가 잡혀있어요. 처음에는 잘 몰라서 어버버 하다가 지나갔는데 이번 외래 때는 다양하게 여쭤보고 싶어요. 어떤 질문을 교수님께 하는 게 좋을까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의 엄마가 네이버 ‘유전질환의 모든 것’이라는 카페에 올린 글의 일부다.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은 처음 진단을 받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에 열심히 설명하는 의사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조차 모르는 그들에게 쉽지 않은 유전학 용어는 마치 다른 세상의 언어를 듣는 것 같다고. 뒤늦게 인터넷으로 의사가 설명해준 용어들을 찾아보지만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고 맞는 정보인지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단다. 290명에 달하는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이 현직 유전상담사가 개설한 ‘유전질환의 모든 것’이라는 네이버 카페를 찾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전질환의 모든 것’이라는 카페를 개설한 김아랑 유전상담사는 “환자들과 가족들이 정보에 너무나 목말라 있고 한국말로 된 자료들이 많지 않다보니 환자 대부분 블로그에서 궁금증을 해결하게 된다”며 “하지만 블로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계가 있고, 그 글들이 믿을 수 있는 정보인지도 알기 어려워 미국에 있는 영어로 된 자료들을 번역해서 올려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카페를 개설하게 됐다”고 했다.
지난 12월말 개설된 카페는 문을 연 지 6개월만에 회원이 290명에 달할 정도로 희귀질환자 가족들에게는 답답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다. 카페 운영진은 2명으로 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유전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카페 대표운영자인 김아랑 유전상담사는 University of Cincinnati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5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Genetics Center, UCLA Pediatrics Genetics, Sema4 등 다양한 곳에서 산전진단 및 소아 및 성인 유전상담사로 근무했다. 현재는 뉴욕에 있는 Columbia University Medical Center 소아 유전학과에서 유전상담사로 일하며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유전상담학을 가르치고 있다.
공동운영자인 박민선 유전상담사는 시카고에 위치한 Northwestern University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8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에서 암 유전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에 코리아헬스로그는 ‘유전질환의 모든 것’이라는 카페의 대표운영자 김아랑 유전상담사와의 줌 인터뷰를 통해 카페를 개설한 이유, 희귀질환자들과 가장 많이 소통하는 것, 유전상담서비스 제도의 정착을 위한 과제 등에 대해 들었다.
- 카페를 개설한 이유가 궁금하다.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이신 GC지놈 기창석 대표님을 분당차병원 유한욱 교수님의 소개로 뵐 일이 있었는데 희귀질환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에 평소 갖고 있던 생각과 같아 카페를 열게 됐다.
희귀질환자와 그 가족들은 정보에 너무나 목말라 있다. 정보를 얻고 싶은데 얻을 수 있는 채널이 없다. 외국에는 그래도 자료가 많을 텐데 한국어로 된 자료들이 많지 않아 더 그렇다. 검색하면 블로그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블로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다. 글쓴이가 얼마나 의학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그래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자료들을 번역해서 올리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을 하게 됐다.
- 현재 가입한 회원수는 몇 명 정도인가. 회원들이 주로 요청하는 것은 무엇인가.
29일 현재 290명이 가입했다. 유전자검사를 해서 결과지를 받았는데 이 결과지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부터, 희귀질환을 진단 받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당황에 교수님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교수님의 설명 내용 가운데 이런 부분은 무슨 의미인지, 다음 진료 때는 어떻게 질문을 하는 게 좋은지 등을 묻는 환자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상담을 부탁하는 환자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 카페의 경우 의료적인 조언, 진단은 하지 않는다. 간혹 담당 의사가 이렇게 설명을 해줬는데 이게 맞느냐는 식의 질문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환자의 전체적인 병력, 가족력, 진찰 소견이나 영상 데이터 및 검사결과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없을뿐더러 의료적인 조언과 진단은 담당 의사의 몫이기 때문에 상담은 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다음번 진료 때 저에게 여쭤보신 질문을 하나하나 적어가서 꼭 여쭤보시라”고 말씀드린다.
- 환자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은 진료 때 주치의에게 충분히 설명을 들었어야 했던 게 아닌지.
병원에서 의료진이 설명을 못 해줬다기보다는 이야기 했어도 기억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처음 희귀질환 진단을 받으면 아무 소리도 안들린다.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너무나도 큰 충격이기 때문이다.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앞에서 설명을 한들 귀에 들어올 리 없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다고 해도 마치 외계인의 언어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설명을 5분, 10분 안에 다해야 한다면 의료진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억울할 것 같다. 열심히 설명해줬는데 환자들은 카페에 와서 하나도 못들었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미국은 검사결과가 나오면 전화로 먼저 설명을 해준다. 전화로 1차 충격을 주고 유전자 검사 결과와 함께 잘 정리된 문서를 제공한다. 그런 이후 외래를 잡는다. 질문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드리는 것이다. 환자들이 처음에 안 들렸어도 다시 한 번 정리된 문서를 보고 질문하고 싶은 것을 정리해 온다면 완벽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질환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꿀 수 없다. 왜냐하면 인력도 없고, 시간도 없고 시스템도 없으니까. 누구의 탓도 아니다. 시스템이 아직 안 갖춰진 탓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유전상담사다.
유전상담사들은 의학적인 정보도 배우고 상담하는 방법도 배운다. 따라서 어떻게 해야 환자들이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지 알고 있다.
- 카페가 문을 연 지 6개월 정도 됐다. 카페는 어떻게 운영되나.
초기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아무개 질환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청했었다. 한 15개 정도 됐었고, 그 질환에 대해 설명한 글이 네이버 등을 통해 검색되면서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 하나둘씩 모이게 됐다. 그래서 같은 질환을 갖고 있는 분들이 요청을 하면 환자들끼리 그 질환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 드렸다.
환우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이 카페를 연 목적이기도 한 만큼 질환에 대한 정보를 한국말로 번역해서 올리는 작업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환우회가 만들어져 독립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 환우회가 없는 질환도 적지 않다. 워낙 환자수가 적다보니 환우회를 만드는 게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이 카페에 모여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 환자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 같다.
그렇다. 그래서 환자가 많이 모이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에 환자수가 10명인 질환이라면 이러한 질환들은 환자를 찾아내는 게 사실 되게 어렵다. 더욱이 한명은 서울대병원에, 다른 한명은 양산부산대병원, 또다른 한명은 전북대병원을 다닌다고 한다면 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이런 공간이 있으면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다가 우연히 만날 수도 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환자들이 동의한다면) 그들을 연결 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미국도 유전상담이 제도화되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유전상담사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미국도 시행착오를 분명히 겪었고 상담 코드가 생긴 지도 사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유전상담사는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간호사이면서 유전상담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과 생명공학 등을 전공하고 유전상담 대학원을 나와 자격을 취득한 사람. 간호사이면서 유전상담사 자격을 취득한 분은 의료인이기 때문에 주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만 현재는 유전상담이 수가가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아무리 환자를 상담을 해준다고 해도 병원으로서는 수익이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수가문제만 해결될 수 있다면 희귀질한 환자들에게 충분한 상담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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