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상담사 계속 배출되지만 제도화 안 돼 재인증 포기하기도"
정부, 유전상담 필요성 공감하지만 보험급여 코드 신설에 '신중'
희귀질환지원센터 사업으로 유전상담 지원을 추가하는 희귀질환관리법(국민의힘 이명수 의원 발의)이 이달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국내 유전상담서비스가 활성화되려면 보험급여 코드 부여가 빠르게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전상담이란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에게 해당 유전 질환이 무엇인지, 질환의 증상과 경과, 어떻게 유전되는지 등에 대한 의학적, 유전학적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을 뜻한다. 국내에는 지난 2015년 이후 대한의학유전학회가 인증한 유전상담사 61명이 배출됐지만 현재 유전상담사로 활동하는 인력은 손에 꼽는 상황이다.
31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한국희귀질환재단이 공동 주최하고 질병관리청과 코리아헬스로그가 후원한 '국내 유전상담서비스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국내 유전상담서비스가 활성화되려면 의료서비스 중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희귀질환재단 김현주 이사장은 “유전상담은 최소한 30분 이상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수가 없이는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될 수 없다”며 “우리나라에도 유전상담사를 배출하고 있지만 수가가 없어 활성화가 어렵다보니 어렵게 배출한 상담사들이 재인증을 받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희귀질환 환자들에게는 유전상담이 꼭 필요하다”며 “국내 의료 현장에서 유전상담이 의료서비스로 정착될 수 있도록 보험급여 코드가 필요하고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유전상담서비스 활성화를 위해서는 유전상담서비스의 운영체계 구축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이날 나왔다.
질병관리청과 협력해 현재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인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이범희 교수는 “희귀질환자들에게는 ‘나와 같은 환자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임신은 해도 되는가’, ‘내가 받을 수 있는 국가 지원은 무엇인가’ 등의 정보가 필요하며 이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유전상담서비스”라고 했다.
이 교수는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이 요구하는 것은 30분 이상의 설명인데 (현실적으로 의사가 직접 하기는) 불가능하다”며 “때문에 팀으로 시간을 가지고 정서적인 안정까지 제공하는 유전상담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유전상담을 위해서는) 내원 전 준비, 상담, 진단검사 후 상담 등 세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이를 표준화 해 프로토콜을 마련하기 위한 지원사업을 현재 진행 중”이라며 “이를 확장해 다음 사업까지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전국 희귀질환 거점병원을 통해 유전상담서비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하고 서비스 향상 방안을 모색하겠다. 이를 통해 질 관리와 표준화 등 서비스를 좀 더 향상시킬 것”이라며 “지역 거점병원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병원에서 유전상담서비스가 이뤄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가족은 절실하게 유전상담서비스가 빠르게 국내 활성화되길 바랐다. 두센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엄춘화 씨는 “유전상담을 통해 한 가정에 대물림되는 질환을 끊을 수도 있고 다양한 안타까운 현상을 막을 수 있다”며 “아이들 데리고 병원을 다니지만 진료시간 몇분에 유전상담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엄 씨는 “의학적 전문지식도 필요하지만 유전상담사를 통해 (질환에 대해) 자세하고 쉽게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유전상담을 희귀질환자 권리로 제공받았으면 한다. 정부 재정 여건이나 의료기관 수익구조로만 보지 말고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엔젤만증후군 환아를 자녀로 둔 조애리 씨는 “희귀질환을 진단받은 아이가 스무살이 됐는데 아직도 질환에 대해 잘 모른다”며 “희귀질환 진단을 받게 되면 충격과 혼란으로 가정이 붕괴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 씨는 “미국과 일본의 유전상담사 제도가 너무 부럽다. 우리나라는 왜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제도화가 시급하다”며 “건강보험 급여를 해주면 좋겠지만 일본처럼 10만원 정도 비용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길이라도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서울대병원 내분비외과 간호사면서 유전상담사인 강혜인 상담사는 “희귀질환 및 유전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 적절한 유전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유전상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접근성 및 가용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며 “전문적인 유전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인증된 유전상담사를 교육하고 채용해 전문적인 유전상담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순전남대병원 전남권역희귀질환센터 이화윤 유전상담사도 “유전상담 과정은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검사 전 상담과 검사 후 결과 상담, 가족을 대상으로 한 추가 검사와 교육, 분과 간 협력 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유전상담을 전담하는 유전상담사가 희귀질환센터에 근무하게 된다면 환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함께 근무하는 동료 의료인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정부도 희귀질환자들을 위해 유전상담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하지만 보험급여 코드 부여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질병관리청 이지원 희귀질환관리과장은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유전상담 필요성에 공감하고 희귀질환자와 가족에게 유전상담이 여전히 미충족 수요여서 관련 지원 요구가 크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장은 “질병청은 적극적인 국가 지원을 위해 올해부터 유전상담체계 운영지원사업을 시작했다”며 “희귀질환자 거주지 중심으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사업을 확대 고도화해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 정성훈 보험급여과장은 “유전상담 서비스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제도화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제도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국회를 통과한 희귀질환관리법을 통해 유전상담 지원 관련 법적 근거가 마련돼 서비스 제공에 도움이 될 것이지만 제도권 진입을 위해 고민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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