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유진수 교수
일본이 주도하는 3D 모델링 기반 수술 계획 소프트웨어 시장에 우리나라 의료진이 도전장을 던졌다.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유진수·오남기 교수, 영상의학과 정우경·김재훈 교수 연구팀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간 공여자의 간 크기와 용량을 CT 영상에 기반해 자동측정하는 '간 이식 AI 모델'을 개발했다.
기존에는 이식외과 의사가 CT 영상을 기반으로 공여자의 간을 해부학적 구조에 따라 분할한 다음 일일이 부피를 계산해야 해, 의사들의 업무 부담이 컸다. 3D 모델링 기반 수술 계획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비싼 가격과 낮은 사용 편의성 때문에 보편적으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본지는 3D 모델링 플랫폼 개발에 나선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유진수 교수를 만나 그 과정에 대해 들었다.
- 교수께선 만화 출판, 간이식 VR 교육에 이어 이번 간이식 AI 모델 개발까지 새로운 시도에 거리낌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냥 계속 뭔가 새로운 것, 특히 남들이 안 해본 것을 만들어보고 싶은 성격이다.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구상하고 진행하는 편이기도 하다.(웃음)
만화를 그린 것은 원래 그림에 흥미가 있는 편이기도 했고, 전공의가 되며 실제 의료 행위를 하다 보니 이런 것들을 콘텐츠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다. VR이나 AI를 진료, 수술에 접목하게 된 것은, 수술을 준비하면서 머릿속에서 그 구조를 그리다가 3D 모델을 사용했고, 이것을 VR, AI를 이용하면 사람이 하는 업무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씩 접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다.
- 인상 깊었던 간이식 케이스가 있다면.
간 이식을 받고 회복되는 환자들을 보는 것은 항상 의미가 있다. 아무래도 정말 절박한 상태의 환자들, 특히 젊은 환자들의 회복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환자 중 탈북정착민이 있었다. 이 분은 간 이식 후 만성거부반응으로 간이 망가져, 뇌사자 간을 재이식했다. 재이식이었기 때문에 수술이 정말 힘들었는데 잘 회복해서 지금도 매우 건강하게 다니고 있다. 또 선천성 담도폐쇄증으로 어렸을 때 수술을 받았다가 간이 점차 망가져서, 성인이 된 뒤에 재이식을 받은 환자가 기억에 남는다. 이 분은 예전 수술로 장 유착이 심했고 장천공 등으로 여러 차례 재수술을 받았는데, 다시 간이 망가져서 재이식을 하게 됐다. 다행히 잘 회복해서 건강하게 살고 있다.
사실은 잘 회복한 경우보다 안타깝게 환자가 안 좋아졌던 경우가 많이 기억난다. 그런 경우를 떠올리면 후회도 있지만, 어떻게 하면 결과를 바꿀 수 있었을까 복기하면서 이후 진료에 참고하려고 한다.
- 간이식 AI 모델 개발 계기가 궁금하다.
이 AI 모델은 자동으로 간을 3D로 만들어주는 모델이다. 간 수술을 할 때, 정밀한 수술을 계획하고 안전하게 수술하기 위해 3D 모델링이 매우 도움이 되는데, 우리는 5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3D모델을 제작하는 작업을 해왔다. 단순히 3D모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술 계획에 따라 이미지 프로세싱을 맞춤형으로 해야 하는, 의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복잡한 작업이다. 여기에 AI 모델을 접목하게 된 이유는, 사람이 하는 작업량을 줄여줌으로써 더 빠르게 많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또 AI 모델이 성공적으로 개발되면 대형병원에서만 아니라, 중소형 병원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이번 간이식 AI 모델 개발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AI 모델 개발을 2020년부터 추진했는데, 당시에는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방법론이 보편화되거나 최적화되지 않은 상태라 같이 개발할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AI 연구자들에게 접촉해도 데이터가 적으니까 힘들다고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후 학습 방법론이 개선되고, 우리 병원 영상의학과 정우경 교수, 김재훈 교수와 팀이 꾸려져 같이 췌담도 영상 관련 AI 모델을 만들게 되면서 AI 모델 개발을 할 수 있게 됐다. 그 이후에는 케이스들을 많이 모아서 데이터들을 늘려가는 게 어려웠다. 좋은 AI 모델 개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데이터다. 우리는 AI 모델을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3D 모델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 실제 수술에 활용했던 3D 모델들을 AI 개발에 사용했다. 아무래도 고품질의 데이터 숫자가 제한돼 있다 보니, 데이터를 모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또 CT뿐만 아니라 MRI 등 다른 종류의 영상의 AI 모델을 별도로 다양한 종류로 개발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었다.
- 간이식 AI 모델은 실제 수술에서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
AI 모델을 사용해서 자동 3D 모델링을 하고, 이후 이 데이터를 재가공해서 수술에 맞는 3D 모델링 컨텐츠로 활용하고 있다. 수술 전 어떻게 자를지 계획할 때, 수술 중 어디를 지금 자르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이 3D 모델이고, AI 모델은 3D 모델을 자동으로 변환하게 만드는 역할이다.
이전에는 생체 간 기증자의 간 부피 측정을 전문의들이 수작업으로 했었지만, 올해부터는 AI 모델을 이용해서 선별작업을 하고 있다. 시간, 노동강도를 줄였고, 전문의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올 수 있는 오차율도 줄일 수 있었다. 물론 최종적인 판단은 의사가 한다.
- 간이식 AI 모델 상용화 시 간이식 수술에서 일어날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AI 모델을 활용한 환자 맞춤형 3D 모델링을 서비스로 제공하고자 리버라이즈라는 이름의 스타트업 창업을 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AI 모델과 간 외과의사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에 맞춤형으로 제작된 3D 모델 프로세싱 노하우를 서지컬마인드라는 헬스케어 스타트업과 합심해서 AI 기반 3D모델 서지컬 플래닝 플랫폼으로 공동 개발하고 있다.
기존의 3D 모델 소프트웨어들은 일본 제품이 많은데, 결국에는 의사가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기입해야 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데이터만 업로드하면 자동으로 원하는 3D 모델을 제작해 수술을 계획하고 수술 중에 참고할 수 있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는 의사들의 업무 부담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고, 워크플로우를 개선할 수 있다.
또 기존 3D 모델 소프트웨어들은 제품들은 비용이 수천만원에 달해 부담이 상당하다. 우리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비용 부담이 확 줄어들어 중소규모 병원, 지방 병원에서도 간 이식, 간 절제 수술에 3D 모델링 기반 수술이 보편화될 수 있다. 3D 모델링 기반 수술이 일반적인 영상을 기초로 수술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점은 이미 여러 논문을 통해 근거가 확립됐다. 우리 서비스를 통해 보다 안전하고 정확한 수술이 가능해지고, 환자들이 개선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본다.
- 간이식 AI 모델 상용화에서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인가. 그 해결 방안도 궁금하다.
예전과는 다른 수술 방식인 3D 기반 수술 행위에 대한 비용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이런 3D 모델링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해 환자의 안전을 담보하고 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간 수술의 3D 모델링에 대한 수가가 편성됐다.
우리나라는 3D 기반 수술 행위가 수가에 포함돼 있지 않아서 정말 소수의 대형병원만 기존 3D모델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것보다 자체적인 AI 모델 개발을 통한 자체 3D 모델링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처음부터 목표였다.
일단 국내에서 3D 모델링 기반 수술 행위가 신의료기술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시점에서는 3D 모델링을 필요로 하는 병원이 간이식 수술에서 비용을 지불한다. 병원이 비용을 부담하는 상태에서는 간암 환자나 간이식 환자들 대다수가 3D모델 기반 수술행위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 이번 간이식 AI 모델로 달성하고 싶은 포부가 있다면.
리버라이즈와 서지컬마인드가 공동으로 개발하는 제품은 내년 초 출시가 목표다. 여기에는 삼성서울병원이 30년 동안 해왔던 노하우, 그리고 5년 동안 3D 모델링 관련된 연구에 올인했던 노하우를 녹여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바쁜 간이식 전문의들이 환자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게 최대한 서포트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3D 모델링을 활용한 수술을 하고 싶은 열망이 크다. 하지만 병원에서 3D 모델링을 활용한 수술을 지원해 줘도 일본 제품을 사용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우리 의사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3D 모델링을 수술에 활용하고 싶은 의사들이 편하게 믿고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제품을 몇몇 병원에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 어디서든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환자가 지방에 있든 어디에 있든 같은 수준의 의료의 질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또 저희가 개발하는 것은 플랫폼이니, 간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로도 파이프라인을 확장해 나가고 싶다. 3D 기반으로 수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느 장기든 다 동일한 형식이다. 담낭, 췌장, 폐 등 다른 장기의 수술에서도 우리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게 논의를 시작했다.
-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동안 공부하고 축적한 지식과 기술 등을 더 확산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병원에서 수술하고 진료 보는 의사로만 사는 게 아니라 조금 다른 유형의 의사인 의사 창업가가 되고자 한다. 스타트업 창업이 지금 일하고 있는 병원 너머로도 좋은 영향력을 확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환자들을 치료하고, 좋은 방법을 찾아내고 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쓸 수 있게 만들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장의 목표다. 창업가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가볼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싶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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