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신경과 허경 교수에게 듣는 '뇌전증'
뇌전증=뇌질환…뇌에 뇌전증 발작 회로 생성된 것
전신 뇌전증 20% 불과…이상 감각도 뇌전증 증상
뇌전증 환자 60~70%, 약물치료로 발작 조절 가능
복합 약물치료·발작 유발 요인 회피로 조절 효과↑
"뇌전증 발작 조절 위해선 의사와 환자 상담 중요"

뇌전증은 반복적인 뇌전증 발작을 초래하는 뇌신경계질환으로, 병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 전문 의료진조차 감별하기 쉽지 않다. 뇌전증 발작만 해도 굉장히 다양하다. 많은 사람이 뇌전증이라고 알고 있는 뇌전증 발작은 전신 발작이지만, 사실 뇌전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뇌전증 발작은 전신 발작보다 국소 발작이 더 흔하다. 

뇌전증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뒤 몸이 굳었다가 팔다리가 떨리는 '전신강직간대발작'을 떠올리는데, 모든 뇌전증이 이같은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이상 동작이나 모공이 곤두서는 이상 감각, 비현실적인 생각이 뇌전증 발작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이런 사실은 흔히 간과된다. 

현재 뇌전증은 약물치료만으로 전체 환자의 60~70%가 뇌전증 발작을 조절할 수 있는 상황까지 진보했다. 여기에 더해 의사와 환자의 노력이 더해지면 뇌전증 환자의 70~80%까지 뇌전증 발작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하는 뇌전증 명의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허경 교수(대한뇌전증학회 이사장)를 만나 뇌전증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허경 교수. 사진 제공=세브란스병원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허경 교수. 사진 제공=세브란스병원

- 뇌전증과 뇌전증 발작은 같은 개념으로 많이 쓰이는데, 다른 개념으로 안다.  

뇌전증 발작은 증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뇌전증은 영속하는 개념의 병이다. 뇌전증 발작 이벤트가 있었을 때, 뇌전증약을 투약하지 않으면 10년 이후에도 재발할 가능성이 높은지를 확인하는데, 그때 재발할 가능성이 60% 이상이면 뇌전증이라고 보고 뇌전증약을 처방한다. 

뇌전증 발작 재발 가능성은 뇌에 손상을 줄만한 병력이 있느냐 등 여러 복잡한 것들을 살펴보고 타진하는데, 뇌MRI검사를 했을 때 양성종양, 혈관기형 같은 병소가 확인되면 당연히 재발 가능성이 60% 이상이기 때문에 뇌전증약을 처방한다. 하지만 영상의학이 굉장히 많이 발달했어도 아직도 모든 뇌의 병소가 검사결과로 나오진 않는다. 

실제 IQ가 50으로 지적장애가 있으면 뇌 어딘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인데, 뇌MRI검사 결과는 정상인 사람이 많다. 뇌파검사를 했을 때도 정상으로 나오는 뇌전증 환자가 적지 않다. 실제 10년 전에 한 번 분석한 적이 있는데, 국소 뇌전증 환자 중 MRI검사와 뇌파검사 모두 정상으로 나온 환자가 30%나 됐다. 때문에 뇌전증 진단이 어려운 것이다.

객관적인 검사결과로 뇌전증 진단이 어렵다는 특성을 악용해 뇌전증을 병역비리에 이용하는 일도 이런 까닭에 생긴다. 콩팥질환은 혈액검사에서 콩팥 수치로 100% 확인 가능하고 심부전이 있으면 심장초음파를 통해 병을 다 확인할 수 있지만 뇌전증은 뇌의 어떤 구조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검사로도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 뇌영상검사와 뇌파검사로도 뇌의 이상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엔 어떤 문제로 뇌전증이 생긴 것이라고 보나?

뇌외상으로 급성 증후성 발작은 한두 번 있었다가 안 할 수도 있는 일인데, 어떤 사람은 3년 후에 또 뇌전증 발작을 하기도 한다. 이때는 영속적인 개념으로 보고 뇌전증 진단을 내리는데, 이때의 뇌전증 원인은 뇌외상 문제가 진행돼 생긴 것이 아니라 뇌에 뇌전증을 일으킬 수 있는 어떤 회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고 본다. 

- 뇌전증 원인은 굉장히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후진국이 선진국보다 2~3배 발병률이 높다고 한다. 뇌전증 발병 원인이 무엇이기에 이같은 차이가 나는 것이고,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우리나라는 뇌전증 환자 비율이 과거에 비해 줄었는지도 궁금하다. 

뇌전증은 국소 뇌전증이 약 80%, 전신 뇌전증이 약 20%인데, 우선 전신 뇌전증의 상당수는 특발성, 즉 뚜렷한 원인 없이 발생한다. 또 5~10세 전후로 생기는 국소 뇌전증은 가족력이 일부 있지만, 가족력이 없는 사람보다 뇌전증 환자가 아주 조금 더 있다는 뜻이지 위험할 정도의 개념은 아니다. 뇌전증을 유전병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뇌전증은 유전병이 아니다. 

물론 국소피질이형성증 같이 체세포돌연변이로 생기는 국소 뇌전증도 있고, 뇌전증을 초래하는 유전성희귀질환인 '결절성경화증'에서 TSC1, TSC2 유전자 돌연변이가 밝혀져 있기도 한데, 이같은 뇌전증은 전체 뇌전증의 극히 일부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뇌전증에서도 아주 이슈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뇌전증에서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는 연구 목적으로 주로 한다. 

후진국이 선진국보다 뇌전증 환자가 많은 까닭은 의료 수준이 달라 출산 사고도 더 많고 뇌전증을 일으킬 수 있는 뇌졸중 같은 것도 후진국에서 더 이른 나이에 생기는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서이다. 뇌외상을 초래할 수 있는 사고 위험도 후진국이 더 높다. 그런데 국내 뇌전증 환자 수는 과거보다 큰 변동이 보이진 않는다. 

보통 뇌전증 발생률은 어릴 때 일시적으로 높았다가 쭉 떨어져서 나이가 들면 다시 높아지는 U자형 형태를 보이는데, 최근 우리나라는 인구 고령화로 뇌종양, 뇌졸중 같은 고령에 많은 질환으로 인한 뇌전증 환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J자형으로 바뀌었다. 뇌전증은 나이가 들수록 확실히 발생률이 올라가는데,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다. 

- 뇌전증은 의식을 잃고 경련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흔히 아는데, 그렇지 않은 방식의 뇌전증 발작이 더 많은 것으로 안다. 경한 형태의 뇌전증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면서 환자들이 병원에 늦게 오기도 할 것 같은데, 진단이 늦어지는 뇌전증 환자의 특색은 무엇인가?

뇌전증은 단수 개념의 병이 아니다. '뇌전증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만큼 뇌전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20년 전엔 뇌전증 발작이 심한 환자를 집안 내력이라 여기고 숨겨 놓기도 했는데, 그런 시대는 이미 끝났다. 뇌전증이 확실히 의심되는 환자는 현재 병원에 잘 오는데, 뇌전증을 의심할만한 상황인지 인지하기 힘든 경우엔 진단에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사실 뇌전증 증상은 명확하지 않은 게 더 많다. 뇌가 복잡한 것처럼 뇌전증 증상은 굉장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뇌전증 발작을 할 때 환자의 의식이 없다고 많이 알고 있지만, 의식이 있는 경우도 있다. 또 '멍 때린다'는 표현처럼 불러도 대답을 안 하는 정도의 소발작 타입도 있고, 굉장히 미세하게 손가락만 까딱까딱 하기도 하는 등 뇌전증 증상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뇌전증을 '살짝' 하는 사람은 스스로 병이라고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병원에 안 온다. 일시적 블랙아웃 형태의 뇌전증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자신은 기억에 없으니 모르고 있다가 주위 사람이 병원에 데려와 진단되기도 한다. 뇌전증 환자를 보는 의사는 환자의 병력을 꼼꼼히 묻는데, 환자들이 사소한 발작 증상은 잘 얘기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끄집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 뇌전증 진단이 늦어질수록 뇌전증 치료가 어려워지나?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뇌전증 진단이 늦어진다고 해서 뇌전증 치료를 했을 때 환자의 뇌전증 발작 조절이 더 안 되지는 않는다. 뇌전증 발작을 3번 했을 때 진단되느냐, 10번 했을 때 진단되느냐에 따라 뇌전증이 악화되는 것도 아니고, 치료 결과도 달라지지도 않는다.

항뇌전증약물은 뇌전증 발작을 초래하는 뇌의 네트워크를 강화시키는 약물이 아니기에 뇌전증 예방 효과는 있지만 치료를 해주지 않는다. 뇌외상이 굉장히 심각하게 온 환자에게 현재 나온 항뇌전증약으로 연구를 해봤을 때 일정 기간 약을 쓰든, 쓰지 않든 뇌전증이 아예 안 생기게 해주는 약은 없었다. 

그러나 뇌전증의 원인이 치료가 필요한 병이라면 진단이 늦어지면 좋지 않다. 뇌전증도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의 이점이 있다. 바로 항뇌전증약을 빨리 쓰면 중간에 생기는 뇌전증 발작을 막을 수 있어 삶의 질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진단이 늦어지면 뇌전증 발작으로 인한 외상 위험 등으로 인해 뇌전증 환자의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허경 교수. 사진 제공=세브란스병원
허경 교수. 사진 제공=세브란스병원

- 뇌전증은 현재 치료를 통해 꽤 뇌전증 발작을 조절할 수 있는 상태인 것으로 안다. 약물치료만으로 뇌전증 발작을 조절하고 있는 환자 비율이 어느 정도 되나?

기본적으로 60~70% 뇌전증 환자는 약으로 조절되고 있고, 30~40% 환자는 약으로 잘 조절이 안 된다. 그런데, 환자의 노력과 의사의 노력으로 여러가지를 해보면 이보다 조절되는 환자 비율을 10%는 더 올릴 수 있다.

현재 투여하는 약물로 조절이 잘 안 될 때는 다른 약물을 투여해 볼 수 있고, 그것으로 조절이 안 되면 여러 약물의 조합으로 치료를 시도해볼 수 있다. 현재 투여해 볼 수 있는 약이 20가지 가까이 된다.

약물로 뇌전증 발작 조절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약 하나를 쓰는 단독요법으로는 조절이 사실 어렵지만, 여러 약물을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 등으로 조합해 환자에게 맞는 최적의 치료를 찾을 수 있다.

또 약물치료 중 중요한 것은 뇌전증 발작을 유발하는 요인을 환자가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현상은 아니고 바둑, 고스톱, 장기 같이 머리를 많이 쓰는 게임을 할 때 뇌전증 발작을 하는 환자가 있는데, 그것은 하지 않으면 괜찮다.

뇌전증 환자는 뇌전증을 유발할 수 있는 스트레스도 피해야 하는데, 사실 그것은 쉽지 않다. 때문에 뇌전증 환자는 충분히 의사와 상담을 통해 스트레스 상황에 맞는 대처를 하는 게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업이나 업무 때문에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는 상황일 때는 미리 주치의와 논의해 원래 처방하던 약에 조금 더 약을 복용하는 방식으로 뇌전증 발작을 조절할 수 있다. 뇌전증 환자는 의사와 얘기를 잘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 약물치료를 했을 때, 3~5년 정도 뇌전증 발작을 안 하면 약을 끊는 환자도 있다고 하던데, 실제 성공률은 어떤가?

보고마다 다르기는 한데 일반적으로 50% 정도는 약을 끊는데 성공하고, 50%는 재발하는 것 같다. 현재 뇌전증 환자의 약물중단은 의사가  잘 조절되는 환자에게 '한 번 시도해 볼래요?'라고 선택권을 줄 수 있는 사항이지, 의사가 결정할 사항은 아직 아니다.  

얼마 전에도 한 6년 뇌전증 발작을 안 한 환자에게 '약 중단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 환자가 "불안하지 않게 계속 먹는 게 낫겠죠"라고 하더라. 약물 중단 성공률은 뇌전증의 원인에 따라서도 조금 다르다.

해마경화가 원인인 뇌전증은 약을 끊을 수도 있고 못 끊을 수도 있는데, 사실 끊을 수 있는 확률이 더 적다. 양성종양이 뇌전증의 원인일 때는 수술로 잘만 떼어내면 약을 끊을 확률이 더 높다.

소아 소발작뇌전증(4~10세에 발병하는 뇌전증)과 청소년 근육간대경련뇌전증은 약물에 대한 반응이 좋은 뇌전증에 속하는데, 소아 소발작뇌전증 환자의 80%는 몇 년 약물치료를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뇌전증이 사라지지만, 20%의 환자는 남을 수 있다. 

청소년 근육간대경련뇌전증의 경우 일부 환자는 약을 끊을 수 있는데, 그 확률이 적다. 장기간 약물로 아주 잘 조절되는 환자에게 약물중단 시도를 했을 때도 73% 재발한다는 보고가 있다. 이같이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약물중단을 해선 안된다.

- 뇌전증이 잘 조절되지 않는 환자에게는 수술도 시도하는 것으로 안다. 어떤 치료가 이뤄지나?

미주신경자극술, 심부뇌자극술 같이 뇌전증 발작이 퍼지는 것을 블록시키는 개념의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 이 치료들은 뇌전증을 일으킬 수 있는 회로를 모듈레이션(한 가지 신호가 다른 신호에 영향을 줘 특정한 효과를 만드는 것)하는 것이다. 

- 치료 중인 뇌전증 환자가 병원에 꼭 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최근 2~3분 발작을 자주 하게 된 환자는 병원에 당일 외래를 잡거나 며칠 내라도 병원에 오는 게 좋다. 또 5분 이상 뇌전증 발작이 지속되는 경우는 일종의 뇌전증중첩증(뇌전증지속상태)으로 위중하다는 얘기이며, 2~3분의 뇌전증 발작도 한 번 한 뒤 연이어서 뇌전증 발작을 하고, 또 하는 경우라면 병원에 와야 한다.

- 뇌전증 환자가 발작할 때마다 뭔가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실제 그런가?

사실 뇌전증 환아 부모 중 뇌전증 발작을 할 때마다 아이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뇌전증이 뇌질환이기 때문에 당연히 일부 환자는 지적장애가 있는 것이지, 뇌전증 발작이 인지장애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뇌전증 발작으로 인해 인지기능이 악화된다고 생각하는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뇌전증 발작을 할 때 뇌외상이 생겨서 문제가 생길 수는 있다. 때문에 뇌전증 환자에게 대발작으로 진행될 전조가 있을 때는 누워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고, 주위에 위험한 것도 치워줘야 한다. 

- 뇌전증 환자에게 권하는 일상 건강관리법이 있나?

뇌전증 약물 중 일부는 골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이가 좀 들면 골밀도검사를 미리 해보길 권한다. 또 나이가 많거나 장애가 있어서 햇볕을 잘 못 받는 사람이라면 칼슘이나 비타민D를 복용하는 게 좋다.

- 뇌전증 환자에게 평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면?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어디에서든 병 때문에 주눅들지 말고, 예민해지지 말고 씩씩했으면 한다.    

- 마지막으로 뇌전증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 평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면?

대부분의 뇌전증은 조절되는 병이다. 일부 난치성이 있어서 한 달에 몇 번씩 뇌전증 발작을 하기도 하지만, 이때도 위험한 상황에서 작업하는 게 아니면 사회생활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뇌전증 발작은 일시적으로 잠시 '증상'이 생기는 것이지, 그때를 넘어가면 다시 멀쩡하게 생활이 가능하다. 뇌전증 환자의 뇌전증 발작 때문에 놀랐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이상한 병이라고 생각해서 차별하기보다 자연스레 넘어갔으면 좋겠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