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션트 스토리] 한국건선협회 김성기 회장
자가면역 문제로 초래된 난치성피부병, 건선
손발바닥농포증·전신농포성건선은 희귀질환
붉은 반점에 '농포' 더해져 치료 힘든데 차별
난치성피부질환으로 알려진 건선은 엄밀히 말해 '자가면역질환'이다. 류마티스관절염, 강직성척추염, 염증성장질환, 전신홍반성루푸스 등과 같이 건선도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과민 반응해 스스로를 공격하는 병인 것이다. 다만 건선은 면역세포가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피부'를 집중 공략하면서 각질이 과도하게 쌓여 피부가 비늘처럼 벗겨지는 인설이나 붉은색의 볼록한 반점이나 판, 농포 등으로 구성된 발진 등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부 어디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도 건선은 다른 자가면역질환과 달리 병변이 눈에 잘 보이는 피부에 나타남으로써 여전히 전염성 피부질환으로 오인되는 병이다. 전혀 전염되는 병이 아닌데도 말이다. 때문에 다른 자가면역질환 환자들이 겪는 수많은 고통에 더해 건선 환우들은 심각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시달린다. 더구나 건선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생기기도 해서 건선 환자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꽤 깊고 넓다. 한국건선협회 김성기 회장은 7살쯤 이 병을 진단받아 47년을 건선 환자로 살아왔다. 그의 삶은 어땠을까.
어린시절 김 회장은 건선 병변 탓에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싸우는 게 일상이었고, 외모에 유독 민감한 청소년기엔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고 한다. 김성기 회장은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전부 다 표정이 어둡다"고 회상했다. 취업 전선에서 겪은 차별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대학동기들과 같이 대기업 원서를 5~6장씩 받아 지원했는데 학점이 나쁜 것도 아니었는데 동기들과 달리 이상하게 '면접'에서 계속 떨어졌다"며 건선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면접을 본 것이 이유였으리라 짐작했다.
다행히 김성기 회장은 사회적 장벽이 낮은 외국계 기업에 취직해 사회생활에 첫발을 디딜 수 있었고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으며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 현재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전문위원실 정책지원관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건선으로 인한 사회적 편견에서 그동안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작년 6월 건선성 관절염 증상으로 생물학적제제 주사를 맞기 전까지 살면서 반팔을 입은 적이 없었다"는 그의 말이 그간의 삶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건선 환자들은 타인의 따가운 시선에 찜통 더위 속에서도 병변이 있는 피부를 드러내지 않으려 긴 팔을 고수한다. 검은색 옷도 건선 환자들에게는 금기로 여겨진다. 피부에서 떨어져 내린 인설이 흑과 백으로 대비돼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어린시절부터 삶에서 깊숙히 찌르고 들어오는 아픔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여갔기에 그는 1999년 인터넷 동호회로 건선 환우 모임을 조직했다고 한다. 모임의 취지는 남에게 하지 못하는 아프고 슬픈 얘기들을 우리끼리 밤새도록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 모임이 발전해 2005년 대한건선협회가 창립됐고 2020년 한국건섭협회로 명칭을 바꿔 현재는 1만6,200여명에 달하는 건선 환우가 가입한 건선 대표 환우회가 됐다. 처음 동병상련의 정으로 뭉쳐 아픔을 나누고 새롭게 진단된 환우들을 끌어주는 역할을 하던 건섭협회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차츰 건선 환우들을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목소리를 내며 환자 운동에 나섰고, 그 목소리를 통해 약 10년만인 2017년 6월 중증 건선이 산정특례 대상 질환이 되면서 건선 치료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도 건선 치료환경에는 사각지대가 많다. 건선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현재 더 중증인 희귀 건선이 더 열악한 치료환경 속에 놓여있다. 건선은 판상 건선이 85~90%를 차지할만큼 흔하며, 중증 판상 건선은 산정특례가 인정돼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치료 효과가 높은 생물학적제제 등의 치료제를 10%의 금액만 내고 쓸 수 있다. 하지만 2만명 이하 환자가 있는 희귀질환이면서 건선 중 더 중증으로 분류되는 농포성 건선 '손발바닥농포증'과 '전신농포성건선'은 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손발바닥농포증과 전신농포성건선은 희귀질환이니 당연히 산정특례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할 테지만, 현재는 손발바닥농포증과 전신농포성건선은 산정특례 대상 질환이 아니다. 손발바닥농포증과 전신농포성건선 환자는 국내 각각 1만1,000여명, 3,000여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자타공인 난치성질환으로 분류되는 까닭에 산정특례가 돼야 하지만, 손발바닥농포증과 전신농포성건선이 정부가 정하는 희귀질환으로 지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손발바닥농포증은 손바닥이나 발바닥에 2~4㎜ 크기의 물방울 모양 농포와 붉은색 반점이 생기면서 피부가 갈라지고 가려움증과 함께 쑤시거나 찌르거나 하는 통증이 동반되는 질환이다. 심각하게는 피부가 벗겨지면서 피가 나기도 한다. 전신농포성건선은 얼굴을 포함한 전신에 농포를 동반한 건선 병변이 광범위하게 생기는 질환으로, 병변 부위의 2차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부터 심부전·신부전·호중구증가증 같은 심각한 질환까지 흔히 동반되는 중증질환이다.
특히 두 질환은 손, 발, 얼굴 등 신체 노출 부위에 농포를 동반한 심각한 병변이 생기는 탓에 신체적 고통에 심리적 고통까지 극심하게 겪고 경제적 활동에도 제약이 많다. 최근 약제들이 개발되면서 두 질환 모두 치료를 제대로 받으면 피부 병변을 크게 줄이고 가려움과 통증 등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별개다.
김 회장은 "농포선 건선 환자 상당수가 스테로이드로 인한 장기 부작용에 시달리고 치료도 잘 되지 않는다"며 "생물학적제제 같은 효과적 치료제가 이미 나와있거나 최근 국내 새로운 약제가 허가됐지만 희귀질환 지정과 산정특례 문제로 현재는 농포성 건선 환우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때문에 김성기 회장은 손발바닥농포증과 전신농포성건선의 희귀질환 지정이 건선 환우를 대표하는 협회의 '반드시 넘어야 될 산'이라며 현재 두 질환에 대한 희귀질환 지정 신청을 해놓은 상태이고 희귀질환 지정을 맡고 있는 질병관리청에 매주 전화로 협회 의견을 전하는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기 회장은 "중증 판상 건선 환우들도 산정특례가 안 됐을 때는 다들 얼굴이 어둡고 꿈과 희망을 다 포기한 사람 같았는데, 지금 생물학적제제를 투약받는 중증 판상 건선 환우 중에는 증상이 크게 개선돼 자신의 취향에 맞춰 예전에 금기시됐던 검은색 옷을 입기도 한다"며 건선 중 사각지대에서 가장 크게 고통을 겪고 있는 손발바닥농포증 환우와 전신농포성건선 환우의 치료환경도 이같은 변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건선 환우의 치료환경 개선에 힘을 싣기 위해 건선협회는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10월 총회를 열어 지정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 공익법인으로 건선협회 자격을 변경하고, 펀딩을 통해 투명하게 재정을 확충해 환자 중심의 의료정책이 이뤄지게 하는데 본격 나서겠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환우회가 똘똘해져서 제대로 일해야 한다"며 "현재의 의료법 중심의 보건의료를 환자 중심 정책으로 바꿔야 하고, 이렇게 바꿀 수 있는 주체는 환자단체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그 이유를 전했다.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지만 현재의 의료정책은 환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의료소비자와 의료공급자, 급여 정책을 결정하는 보건당국의 눈 높이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모두가 환자가 될 수 있고, 의료공급자와 보건당국의 존재 이유가 의료소비자를 위한 것이라는 차원에서 의료소비자인 환자의 입장과 의료진의 전문적 소견에 따라서 급여 정책이 지금보다 더 디테일해질 필요가 있다고 김성기 회장은 주장한다.
김 회장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주 심각한 상태의 건선이면 바로 생물학적제제를 쓸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그 약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6개월간 증명하는 구조로 보험 급여가 돼있다"며 "또 덜 심한 환자의 경우 생물학적제제에 대한 급여 퍼센테이지를 조절해 조금 더 환자가 부담하게 하는 등 조금 세밀하게 제도를 만들어 보려 하는데, 현재 의료진이나 보건당국에도 이런 내용이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건강보험 재정 현실에서 환자의 눈 높이에 맞춰 합리적이고 세밀한 환자 중심 정책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것을 똑똑한 환우단체에서 구체적 안을 마련해 제도 변화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김성기 회장은 말했다. 이를 위해 환우회가 더 젋어지고 더 똑똑해져야 한다며 그는 앞으로 건선협회를 능력있는 2030세대가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서 환자 중심의 의료정책의 산실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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