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그야말로 많고 많은 기생충들이 있고 기생충들 하나하나가 독특하기 그지 없지만, 그 중 가장 독특한 기생충은 바로 환상
속 기생충: Delusional parasitosis(기생충 망상증)다. 내가 쓴 글들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내 몸 속에도
기생충이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품어보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기생충 망상증에 걸린 사람들은 몸 속에 기생충이
있다고 확신하는 필요 이상의 집착을 보인다.

피부에 벌레가 파고들어가 몸 안을 기어다닌다는 증상이 가장 흔하고, 이 벌레를
끄집어내기 위해 자해를 한다거나 해당 부위를 격렬하게 긁어 상처를 내거나 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 망상증에 대한 첫번째
기록은 18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 되었으며, 점차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망상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보고되고 있다.
초기에는 parasitophobia, 즉 기생충 공포증으로 보았으나, 자신에 몸에 침입하는 기생충 자체에 대한 공포보다는 기생충
감염에 대한 확신과 집착이 더 강하게 드러나 일반적인 공포증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증상의 경중은 있겠지만,
의외로 기생충 망상증은 적지 않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일례로 영국의 자연사박물관을 곤충분류학부를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곤충분류학부에서는 약 75파운드(한화 15만원)가량의 수수료를 받고 일반인들에게 채취한 곤충 샘플을 분류, 확인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가격에도 연간 수천통의 편지가 날아든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이 곤충이 독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이 곤충이 자신의 피부를 파고 들었는데 위험한 것이 아닌지 확인해달라는 요청들이라는데, 벌레가 자신의 몸을
파고들어 피부를 기어다닌다고 하는 증상은 기생충 망상증의 가장 첫번째 증상이다.

기생충 망상증을 보이는 사람들의 종류는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한쪽 극단으로는 그야말로 사회의 명망있는 시민인데다 지능도 평균 이상인 사람들이 겉으로는 멀쩡하게
살아가면서 망상증을 보이는가하면, 반대쪽 극단으로는 암페타민이나 코카인 등 흥분제 중독자들도 있다(중추신경 흥분제 남용자들에게서
기생충 망상증이 자주 나타난다). 그 사이에는 가벼운 정신분열증이나 우울증, 강박장애등 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으니 어떤 그룹이 기생충 망상증에 잘 걸린다고 추려내기는 굉장히 힘들다.

어쨋든 기생충 망상증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을 보면 몇가지 재미난 공통점, 그리고 차이점들을 찾을 수 있다. 기생충 망상증을 가지고 내원한 환자들은 보통 '자신들이
얼마나 무심하고 재수 없으며 능력없고 짜증나는 의사들을 만나왔는지'에 대한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때문이 이 환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얻을 때까지 다른 의사들을 찾아다니게 된다. 심지어 두 딸의 엄마인 어떤 여성은 6개월간 103명의
의사와 1명명의 수의사를 방문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matchbox sign"이라는 것이 있는데, 말
그대로 성냥갑을 보여주는 증상을 말한다. 병원에 와서 성냥갑을 보여주다니 기생충 망상증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정신이 나간거
아니냐 생각할지 몰라도, 보통 망상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특정 벌레에 감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물건들을 성냥갑, 잼통이나 물병 같은것에 담아오곤 한다. 하지만 그 물건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냥 피부 조각이나 옷조가리,
머리카락이나 작고 무해한 딱정벌레 같은 것들일 뿐이다.

환자들이 이야기 하는 또 다른 특징들을 보면 사회적으로 격리되어 있다고
느끼고, 목욕을 굉장히 자주하고, 직업을 잃었으며, 중간숙주라 생각되는 애완동물들을 내다 버리거나 죽였다는 공통점들이 있다.
그리고 병원에 내원하면 '돈에 상관 없이' 각종 진단기법을 활용해 꼭 원인을 찾아주길 바라며, '실험적인 약물'을 투여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환자들을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누면 네가지 타입으로 분류되는데, 1)보상을 원하는 사람,
2)치료만을 바라는 사람, 3)통상적인 기생충 망상증을 보이는 사람, 4)과장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1) 보상을 원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기생충 망상증을 이용해 한탕 해보려는 사람들이다. 병원에 내원하기 보다는 대체로 편지나 이메일, 전화를 이용해
상담을 요청하며 이미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만약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내놓지 못할 경우 의무 불이행이나 이런걸
걸고 넘어져 어떻게 한몫 챙겨볼까 하는 인간들이다. 물론 실제 기생충 망상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일이 잘못될 경우
돈이라도 챙기자는 실속있는(?) 사람들이라 하겠다. 그리고 다른 타입으로는 해외에 파병되었다 돌아온 군인들이 있는데, 기생충
감염증으로 어떻게 연금을 더 받아보려는 무리들이다. 이 경우 실제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도 있고, 주워들은 기생충 지식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진짜 기생충 망상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뒤섞여 있어 가장 까다로운 타입이라 하겠다.

2)치료만을 바라는 사람


부류의 사람들은 숫자는 적지만, 독특하게 진단은 원치 않고 치료약만 받아가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대체로 망상증이
실제 기생충 감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스물아홉살 청년의 경험담을 보자. 이 청년은 5년전 해외여행 중
말라리아에 감염된 경험이 있다. 이후 끊임없이 모호한 증상들에 시달려 왔는데, 이 모두가 말라리아 탓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quinine)을 정기적으로 복용하고 있었는데 사실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있지 않다면 무의미한 것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한 짓이다. 일반적으로 말라리아 유행지역이 아닌 국가에서 퀴닌 같은 말라리아약들은 처방을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약을 구하기 위해 해외원정까지 다녀왔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즉 어느날 가벼운 두통이 있어도 기생충 탓이고, 복통이
있어도 기생충 탓이며 그냥 기분이 좀 울적해도 기생충 탓이다라는 식이다.

3)전형적인 기생충 망상증을 보이는 사람


40% 가량의 기생충 망상증 환자들이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교과서에서 막 튀어나온 것 마냥 기생충 망상증 증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환자들도 재미난 특징들을 보여준다. 기생충 망상증이 있는 사람들은 실제 의사를 만나기를 꺼리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보통 장문의 편지로 시작한다. 자신의 몸에서 떼어냈다거나 집에서 잡았다고 주장하는 '기생충' 샘플들과 함께
보내온 편지는 항상 이런식이다.
"몸에서 직접 채취한 샘플을 동봉하여 보내드립니다.(혹은 그림)...미생물의
일종...모기처럼 물고 피부 안으로 파고들어갑니다...만약 파고들어간 자리를 긁으면...마치 서로들 통신이라고 하고 있는 듯 온
몸의 기생충들이 동시에 미친듯이 화를 내며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기생충들은 몸 어느곳에나 있습니다. 눈에도, 코에도,
귀에도, 심지어는 장과 요도에도...등등"

4)과장하는 사람

사실 이 타입이 제일 골치아픈 타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는 일반 수준보다 높은 지적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특정 기생충에 대해 공부하고 특화시켜 과장하고 비틀어 망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사람들이 보내는 편지는
정말 길다. 수천자에 달하는 리뷰 논문에 가까운 길이의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경우가 많고, 글의 흐름은 엉망이며, 기생충에 대한
역사적 배경부터 증상, 감염 경로, 개인적인 문제들까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또 자신이 망상하고 있는
기생충에 대해 굉장히 명확하다. 일반적으로 다른 타입의 기생충 망상증 환자들이 "모기 비스무레한 몸으로 파고들어가는
기생충"쯤으로 설명하는데 반해 이 사람들은 촌충이나 흡충, 말라리아 등 정확한 이름을 사용해 자신의 망상을 확대한다. 이를테면
이런식이다.

"제 몸에는 12마리의 성충 촌충이 있습니다. 감염된지는 2개월이 되었으며,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안정세에 들어서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마리가 심장 근육으로 다시 파고들어가 걱정입니다." 혹은 "지난 토요일 밤 흡충이
두마리로 분열했습니다" 이처럼 기생충에 감염된 시간과 감염 장소, 그리고 마리수에 대해 굉장히 세세하고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타입에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변명, 합리화, 편집증을 보여주기도 한다. 변명은 이런식이다.
"제 증상에 맞는 기생충 감염증을 찾아 책을 읽다 로아 사상충 부분을 읽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틀간 부기가 생기고 부어오른
곳이 핑크색으로 변한 후 사라진다고 하더군요. 지난번 이틀간 두통이 지속되다 저절로 사라졌습니다" 여기서의 연관성은 이틀이라는
점 뿐인데 이것을 자신의 진단기준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편집증도 있다. "어릴적 어머니가 내 음식에 개똥을 집어넣은 적이
있어요"라던지 "중국 여행 당시 기생충학자가 오염시킨 고기를 먹은적이 있지요. 저는 그 피해자라구요" 같은 것들이 있다.

어떻게보면 슬프게 웃긴 이야기들이지만, 사실 기생충 망상증의 진단과 치료는 굉장히 까다롭다. 일단 실제 증상을 호소하며 일반
병원을 찾기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 외과/내과 의사들은 이 사람이 망상증을 앓고 있는것인지 아니면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또 기생충 망상증 환자들의 경우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 경우 다시 그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으므로 충분한 팔로우업이 힘들다는 문제도 있다. 그래도 최근에는 olanzapine이나 risperidone처럼 제법
효과적인 약물들이 개발되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게다가 망상증 환자들에 의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다. 일전에 소개한
Morgellons disease처럼 기생충 망상증이 뮌하우젠 증후군(Munchausen syndrome:의사에게 관심 받기를
원하는 정신병)과 결합하면 형체도 없고 실체도 없는 정체불명의 질병이 수천수만명을 덮치기도 한다. 그러니 기생충 걱정은 그저
적당히.


Reference:
1. Wykoff RF. Delusions of parasitosis: a review. Rev Infect Dis. 1987 May-Jun;9(3):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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