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응급실이나 스테이션에 앉아서 근무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누군가로부터 적어도 한통 이상은 건강상담 전화를 받게된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건너편에선 다짜고짜 '거기 병원 의사죠? 맹장 수술하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그리고 비용은요?' 라고 따지듯 묻는다. 그리고는 이내 '전 잘 모르겠습니다. 외래에 나오셔서 상의...'라는 말을 내가 건넴과 동시에 건너편에서 '띠-'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를 끊어버린다. 이런 전화는 늘 발신자 쪽보다는 오히려 내 쪽을 더 당황스럽게 만든다.

우리가 일반외과 계열에서 가장 쉽다고 일컫는 수술, 소위 맹장 수술도  위치와 모양, 시기, 상태에 따라 그 수술방법이 천지차이고 경우에 따라선 천공 등의 상황이 발생하여 복막염으로 진행되었다면 만만치 않은 수술이 되어버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충수돌기를 따면 된다.'는 생각으로 획일화 시켜서 소요되는 시간이나 가격만 묻고 끊어버리는 무식한 전화를 받을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사실 일반외과 전문의도 아닌데다 잡일하며 하루벌어 먹고사는 내 처지에 재원일수나 진료수가에 관하여 명확한 답변을 준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단순한 충수돌기염일지라도 상황에 따라선 응급수술이 필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방문하여 전문의의 진단을 받기는 커녕 전화로 이 병원, 저 병원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들을 가끔 상대하고나면 무척이나 피곤해진다. 

특히 신종플루가 유행이던 지난 10-12월엔 이런 전화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그래도 요즘같은 세태에 불친절한 의사로 낙인이 찍혀서 민원이나 항의 전화 들어올까 무서워 수화기에 대고 진단 비용이나 개략적인 경과 등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개인 병원은 얼마라던데 큰 병원이면 마트처럼 더 싸야되는거 아닌가?' 혹은 '왜 이렇게 비싼거야? 다른데는 싸던데' 라며 전화를 끊어버린다. 통화가 이렇게 끝나버리면 전화를 받는 내가 한심해질 때가 가끔있다. 발신인(환자)를 생각해서 병원으로 하루 빨리 오셔서 진료받으라고 말하는 내가 마치 이 가게, 저 가게 들러서 제일 싼 물건을 사려는 손님의 눈치에 맞추어 기를 쓰고 하나라도 더 팔아보겠다도 용쓰는 장사치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또 종종 새벽에 전화하여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며 치료를 해달라는 환자들도 있다. 투동의 기질적 원인 등 다양한 가능성 및 병원에서 CT 등의 검사가 필요할 수 있음을 수십번을 설명하고, 일단 급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타이레놀 등의 약을 먹어보고 지켜보라 조언해준다. 하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무슨 병일까요?'라며 확실한 진단을 내려주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이쯤되면 TV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왕비의 팔에 실을 매달고 문 밖에서 어의가 진맥하는 '전화진맥'을 발신자가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라고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겠는가, 오직 '병원에 나오셔서 검사받고 치료 받으셔야 알 수 있습니다.'라는 말만 되뇌일 뿐. 의사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당위적인 대답만 앵무새처럼 반복한채 자격지심에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나는 의사일 뿐이지 진맥을 통해 진단하는 한의사도, 눈빛만 보고도 간암을 치료한다는 허O영과 같은 유사종교 치료 행위자도 아니다. 환자를 직접 만나서 면담을 하고 정해진 진단기준에 맞추어 여러가지 검사나 진단 장비를 이용하여 추정 진단을 내린 연후, 담당 진료과 선생님들과 상의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최종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그런 나약한 존재다. 그래도 나는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이 환자에게 좀 더 안전하고 신뢰할만 결과를 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히려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통화 내용만으로 환자를 판단하고 섣불리 의학적 판단을 내린다면 오진이나 의료사고가 지금보다 100배 이상은 증가 할 수 있으며, 더불어 이는 병원이나 환자 모두에게 엄청난 의료비의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오늘도 전화 통화로 자신의 의학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환자들이여, 괜히 문제를 썩혀두다가 더 키워 큰 돈 들이지 말고 지금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를 직접 면담하고 진료 받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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