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가을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르다.

방바닥에 누워 3살짜리 아이를 배에 올려놓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간간히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둘이 즐겼다.

해맑은 아이의 웃음, 저녁이 되면 조금 지친 듯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아빠,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나와 내 아이.. 여느 집과 같이 평범한 모습이지만 이런게 행복이구나!

내 나이 30세 평범한게 가장 행복한거고 평생을 평범하게 산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제는 안다.

우리 이렇게 오래 행복하게 살자

아이와 난 새끼손가락을 접어걸고 첫 약속이란걸 했다.

나는 항상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늘 세상에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불행이라는건 늘 주변에 있었지만 내가 겪을 몫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에... 그 약속을 지키는 건 너무나 쉬었다.

 

며칠 전부터 가슴 쪽에 만져지던 혹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아이와 가을을 즐기러 나가기로했다.

병원공기가 아이에게 안좋다고 해서, 친정에 들려 친구를 만난다고 엄마에게 말씀드리고 아이를 맡겼다.

정말 친구를 만나는 가벼운 맘으로 혼자 병원에 갔다.

내 가벼운 맘과 달리 의사의 표정은 무거웠다. 조직검사가 필요할거 같다고.. 혹시 암일 수도 있다고...

조직검사를 하고 병원문을 나서는데 무서웠다. 1주일 뒤에 결과가 나온다고 했는데 마치 당신의 수명은 1주일입니다.

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았던 탓이다. 날씨가 이렇게 좋지만 않았어도 병원에 안오는건데...

평범한 일상을 좀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이상한 소리 아주 나중에 들었더라면 오늘은 적어도 행복하게 보냈을 텐데...

친정에 갔을 때 눈물은 다 말라있었고, 1주일동안 아무 통증도 없었기에 잊고 살았다. 적어도 남이 보기엔...

밤이면 의사가 암입니다라고 말하며 쫓아오고 난 도망가는 꿈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1주일뒤, 혹시 암이라고 할 경우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이미 계획표로 꼼꼼히 적혀 내 가방에 들어 있었다.

울 필요도 없다. 이미 난 암일 경우와 아닐 경우를 완벽하게 대비해 놓았으니까...

병원 가는 길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병원 가는데 그냥 양성혹이겠지... 그래 그럴거야. 우리 병원 갔다가 오랜만에 맛있는거 먹자

이렇게 해서 의사선생님을 친구랑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의사선생님의 한마디는 너무 놀라웠다.

-암입니다.

순간 드라마에선 이럴 땐 울던데 그리고 믿을 수 없다고 뛰쳐나가던데 난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차분하게 물었다. 몇 기예요? 죽어요? 의사선생님께선 수술을 해봐야 몇 기인지 알고 죽는건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아주 어렵게 말씀을 하셨다. 나이가 어려서 유방을 지키고 싶었지만, 절제를 해야 한다고... 갑자기 나 자신이 놀랄 만큼 큰소리로 내가 울고 있었다. 울면서 남이 있는 앞에서 적당히 울어야지 생각도 들었는데 생각과 달리 정신이 아득해지고 그냥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자꾸 소리만 점점 크게 울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울어대자 의사선생님께선 나가서 생각을 해보고 오라고 하셨다. 진료실을 나가면서 생각했다. 이제 목욕탕도 못가겠다. 유난히 찜질방을 좋아하는 내겐 남보다 몇 배 더한 형벌이다라고...

울면서 어디로 그렇게 전화를 했는지도 모른다. 울다 지쳐서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온가족이 다 병원에 다 와 있었다.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할지 세운 계획표도, 아이 때문에 남편 때문에 살아야한다는 다른 사람의 말들도 내겐 들리지 않았다. 그냥 오늘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만 내속에 가득 찼다.

그렇게 수술을 했고 수술한 환자 중에서는 축하를 받을만한 1기였다. 2004. 10월에 수술대에 누웠고, 6개월간의 항암을 마치고 나니 2005년 내 아기가 4살이 되어있었다.

 

집에서 목욕을 하던 내게 아기가 물었다.

-엄마 엄마 가슴이 하나 없어졌어? 옛날엔 있었는데 어디 갔어?

 

-옛날에 옛날에 엄마 몸속에 아주 나쁜 괴물이 살고 있었어. 그 괴물은 몸 한 부분을 다 먹고 나면 또 다른 부분을 먹는거야. 그래서 결국 엄마의 몸을 다 먹어버려서 엄마는 살아있지만 몸이 없어져서 네가 엄마를 알아볼 수 없게 되는 거야.

다행히 엄마 몸속 괴물은 엄마 가슴을 먼저 먹게 된거야. 그래서 괴물이 엄마 가슴을 먹는 동안 의사선생님이 얼른 괴물집과 엄마가슴을 통째로 없애버렸어. 그래서 이제 엄마 몸에 괴물이 없어졌고 엄마는 건강해진거야. 팔이나 다리를 먼저 먹었다면 엄마는 걸을 수도 없고 널 안을 수도 없었겠지만 다행히 한쪽 가슴이라서 엄마는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이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괴물이 엄마를 다 먹어버리기 전에 빨리 없애버려서 너무 다행이라고....


 

2006.3월이 오기 전까진 우린 이 상황에 적응해 가며 우리 가족은 예전처럼 행복했었다.

항암 끝나고 8개월 정도 지날 무렵 척추뼈로 전이가 된 것이다.

암을 이길 수 있다고 씩씩하게 잘 지내던 나는 다시 들이닥친 시련으로 인해 정말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무너졌다.

매일 아이를 안고 울었다. 엄마는 너와 한 약속을 못지킬거 같아.

그러던 중 세브란스 병원에 새로운 방사선 기계가 들어왔다는 인터넷기사를 보았다. 세브란스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그 기계는 보험이 되지 않아 몇천만원 정도의 가격이 든다고 했다.

돈에 놀라서 아무 질문도 하지 못하고 끊고나서 엉엉 울었다. 나는 왜 돈이 없을까 그 기계로 방사선 치료만 하면 나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혹시 국가에서 지원하는 암병원이 있는지 궁금했다.

 

인터넷에서 국가암이라고 치니, 국가암정보센터라는 것이 나왔다. 1577-8899로 전화를 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상담을 해야 하는지 길게 이야기를 하면 싫어할 것 같고 내가 한 검사 이름도 정확히 말해야 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에 상담을 하는 순간부터 난 부담이 많았다.

 

이런 생각도 잠시 어느 순간 미소까지 띠며 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편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상담원은 대강 이야기를 해도 내가 전문용어를 억지로 써가며 이야기를 해도 한결같이 짜증내지 않고 긴 이야기를 끝까지 천천히 다 들어주고 꼭 몇 천만 원이 드는 신기계로 치료를 하지 않아도 기존의 기계로 치료를 해도 된다며 일단 기존에 다니던 병원의 의사를 믿고 다니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너무 의사를 못 믿겠다면 옮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여러 방면으로 조언을 해주고 신기술이 자꾸 나오고 해서 말기암이라고 해서 다 죽는건 아니라고 삶의 끈을 잡게끔 다시 쓰러진 마음을 일으키게끔 날 도와주었다.

같은 암환자끼리는 굳이 일일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편안한 대화가 된다.

친구나 가족들은 암환자가 아니기 때문에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항암치료로 왜 힘들어 하는지 며칠에 한번 항암을 하는지 항암부작용을 설명해도 잘 이해를 못하고 알아듣지 못한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또 물어보고 하니 어쩔 땐 대답을 하기도 싫다.

저번에 설명했던 건데... 또 이야기를 해봤자 모를거야 하는 생각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거 조차 부담이고 내 푸념만 하는 것 같아서 내가 초라해진다.

암환자끼리도 환자마다 개개인의 차이가 있고 치료방법이 다른 것인데, 암환자의 잘못된 지식으로 한 사람의 병을 고칠 의지를 망가뜨리는 경우도 보았다. 암환자끼리는 위안은 크게 되지만 옳지 않은 지식을 남에게 말하는 건 듣는 사람이 고칠 수 있는 기회를 뺏을 수도 있다는 걸 암환자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암정보센터의 상담원은 같은 암환자는 아니었지만 정확한 지식과 해박한 지식으로 암환자끼리의 통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전문적인 입증된 지식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아주 유용한 곳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은 척추뼈, 폐, 간으로 전이되어서 치료중이다.

작년에 항암은 머리가 안빠져서 머리가 빠진 고민은 안했는데 이번엔 머리가 빠지는 항암제다.

항암제를 맞고 머리가 한 무더기씩 빠져서 머리를 민 날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작년에 엄마 가슴에 살던 괴물이 이젠 머리에 살게 되었어?

 

5살이 된 아이에게 이젠 이렇게 말했다.

 

-몸손엔 세포가 살아. 세포가 너무 많아서 엄마가 다 못돌봐주거든. 그러면 사랑받지 못한 세포가 화가 나서 나쁜 세포로 변해서 엄마를 아프게해. 다행히도 그 괴물처럼 엄마 몸을 먹진 않아.

 

-아 그러니까 엄마 머리카락 속에 세포가 나쁜 세포로 변해서 엄마 머리를 뽑아 버리는 거구나...

그러니까 머리를 잘 감아...머리를 잘 안감아서 세포가 화가 났지..

 

2006. 6월부터 항암을 시작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주사를 맞고 있다.

저번 주엔 폐와 간이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다.

며칠 전에 응급실에 실려왔다가 병원에서 이글을 쓰고 있다.

 

어제는 아이가 병원에 와서 3살 때 내가 아이 손을 끌어서 걸었던 손가락을 이젠 5살아이가 내 주사 맞고 있는 손을 끌어서 귓속에 대고 속삭인다.

-엄마 나랑 한 약속 지켜야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슨 약속이었는지. 장난감을 사주기로 했던 걸까?

 

-나랑 오래오래 같이 살기로 한 약속....

 

그래... 엄마는 꼭 이겨낼거야...

우리 아이의 소원은 내가 아픈 뒤로 늘 엄마가 건강해 지는 거다.

보름달이 떠서 소원을 빌어도 생일날 케익을 받아도 늘 오로지 엄마가 건강해지는 거다.

아이와 한 약속을 난 꼭 지킬거다.

혼자가 아닌 내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겨 나갈 것이다.



* 국가암정보센터 부분 우수상 수상작인 조인호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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