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Niger에서는 수막염이 대량 발생했다. 수막염은 대단히 위험한 질병이긴 하지만 백신으로 충분히 예방 이 가능한 질병이다. 하지만 그 해에만 2500명이 수막염 으로 사망했다. 백신이 충분히 공급되었음에도 일어 난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이티, 나이지 리아, 방글라데시, 인도,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는 500 여명의 어린이들이 급작스레 사망했다. 단순 감기였음 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Niger에 공급되었던 백신은 겉보기에는 진짜 같아 보이 지만 수돗물만 들어있었고, 어린이들이 감기 때문에 먹었던 감기약 시럽은 감기약 대신 자동차 부동액이 들어있었다. 오래전 일 같아 보이지만 지금도 이런 어 처구니 없는 일들은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2006 년 WHO의 자체적인 조사에서는 이런 가짜약들이 연간 400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고, 올해는 7500억 달러 수준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누구도 이런 가짜약들이 얼마나 판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겉보기에는 진짜 같아 보이는 약들 이 약품 관리와 법규가 취약한 저소득 국가들로 끊임 없이 흘러들고 있고, 심지어는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 지고 있는 선진국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 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전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약품의 50%가 가짜라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1% 뿐 이라고 하기도 하지만일반적으로 최소 15%-30%에 달하 는 유통량의 가짜가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이런 가짜약들은 대체로 갱단, 마약상 등 이미 암시장 에서 충분한 유통망과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생산되고 유포된다. 특히 브랜드 약들을 모조해 파는것은 큰 마진을 남기는데다, 이런 약들에 대한 수요가 큰 제3세계의 경우 처벌규정도 벌금형 정도에서 끝나는 정도가 많아 마약 같은 물품에 비해 위험성도 훨씬 낮다. 이런 모조품들의 보기에도 가짜 같아 보이는 질 낮은 물품들에서 생산자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것까지 굉장히 다양하다. 게다가 암시장의 유통망은 실로 광범위하게 파고 들어 있어 제3세계 구호단체들 조차 깜빡 속아 이런 물품들을 구입해 배포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

고소득국가들과 저소득국가들 사이에 유포되는 가짜 약들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고소득국가들에서는 삶의 질을 높여주는 약들 - 호르몬제, 발기부전치료제, 스테로이드 등 - 이 주로 유포되는데 반해, 저소득국가 들에서는 감염성 질환 치료제 -항말라리아제, 항생제 등 - 이 주로 유포되고 있다. 고소득국가들은 대체로 유통되는 약물에 대한 까다로운 검사와 관리를 유지하고 있고, 사람들도 비교적 비싼 브랜드 약물을 충분히 구입할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약국이나 병원 등에 있는 약들은 가짜약인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약품의 50% 가량은 가짜로 추정된다. 그리고 실제로 가짜약이 일반 유통망에 흘러드는 경우도 있어 2003년 5월, 미국에서는 Lipitor(콜레스테롤 약) 20만정을 회수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저소득국가들에서는 이보다 훨씬 심각한 일들이 벌어 지고 있다. WHO의 조사에 따르면 남미, 아프리카,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유통되는 전체 약품의 30%가 가짜라고 한다. 이때 발견된 상당수의 약품들은 그냥 수돗물을 담아 놓았거나 분필가루로 만든 것들이었다. 저소 득국가들에서는 비교적 고가인 브랜드 약품을 구입하기에는 소득이 충분치 않은 사람들이 많고, 게다가 병원에서도 약품이 떨어져 아예 약을 줄 수 없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지니 사람들은 암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약품이라도 어쩔 수 없이 구해 먹을 수 밖에 없게 된 다. 생명과 직결된 약들, 특히 말라리아약 같은 경우 에 이런 경향이 특히 두드러질 수 밖에 없는데, 때문에 말라리아 약은 특히 가짜약들이 많은 축에 속한다.

이런 가짜약들은 주로 관계 법령이 느슨한 제3세계에서 생산된다. 특히 인도는 이런 가짜약 생산의 온상이 었는데, 최근에는 중국이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 다. 인도산 가짜약의 피해가 얼마나 심했던지 2003 년 나이지리아는 인도에서 생산되는 약품을 전면 수입 중단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리기도 했다. 인도에는 현재 총 15000개 가량의 제네릭 약품 생산 공장들이 있는데,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밤에는 가짜약 생산 공장으로 변신한다는 보고도 있다. 중국도 적발된 가짜약 공장들만 500여개에 이르고, 얼마나 더 많은 공장 들이 암약하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런 가짜약 공장들은 아주 정교하게 운영된다. 약품 원료에 대한 관리가 비교적 취약한 인도나 태국에서 원료를 구입해 약품을 제형하고 찍어낼 수 있는 아르헨티나, 그리 스, 멕시코 등으로 밀수한다. 그러면 이 나라들에서 약 품을 브랜드 약품의 그것과 동일한 모양으로 찍어내고 포장해서 주소는 미국 어디쯤의 가짜 주소를 붙여 실제 약품 유통망과 연이 닿아있는 브로커를 통해 배송되는 것이다.

가짜약들은 그저 아무런 약효가 없다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부동액 같은 어처구니 없는 물질을 넣어 판매하는 경우도 있어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비슷한 효과 가 있지만 효능이 떨어지는 더 값싼 물질, 혹은 원료 를 덜 넣고 표준 이하의 약품(substandard drug)을 생산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비표준 약품들은 단기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약효는 보이기 때문에 별 해가 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완전히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가짜약들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감염성 질환의 경우 약물의 농도가 낮은 약을 꾸준히 먹다보면 기생충이나 박테리아 들이 치명적이지 않은 농도의 약에 꾸준히 노출되어 손쉽게 약물 저항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런 일이 지속 되면 해당 환자의 치료가 힘들어지는 것은 물론, 인구 전체로 저항성이 퍼져나가 결국 더 비싼 다음 세대의 약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현재 캄보디아는 가짜 항말라리아약이 가장 많이 유통되는 지역 중 하나인데, 동시에 가장 많은 약물 저항성 말라 리아가 발견되는 지역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가짜 약을 적발하고 회수하는 비용과 지금까지 가짜약을 처방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약을 나눠주어야 하는 수많은 부가비용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비용들은 그대로 지역사회에 부담되게 되고 그만큼 그 사람들은 제대로 된 약을 구입할만한 경제적 여유를 또다시 상실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만다.

가짜약 만큼이나 비표준 약품들도 심각한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많은 NGO들이 이에 대한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생산되어 올바른 관 리를 거친 제네릭 약품들은 브랜드 약품과 거의 동일 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비교적 저가에 배포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지나치게 권장하다보니 수많은 제네릭 생산 자들이 난립하게 되고, 이에 대한 권고사항이나 관리를 소홀히 하다보니 비표준 약품들 또한 점차 시장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가격에 대한 부담으로 제네릭을 권하는 부분도 있지만 NGO들이 거대제 약회사들에 가진 뿌리깊은 반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가짜약에 대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근절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오히려 비표준 약의 생산은 권장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랄까. 이는 브랜드 약품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가격에 배포할 수 있는 제네릭 약품의 생산을 권장하면서 생긴 역효과라 할 수 있다. 실제로 Global Fund to Fight AIDS, TB, Malaria 에서 권장하는 제네릭 약품들의 93%는 제대로 된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을 거치지 않은 약품들이다. 대부분의 제조사들은 양심적으로 제대로된 제네릭 약 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일부 제조업자들은 이러한 규제에 충분히 따르고 있지 않다. 정해진 예산규모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돕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해보면 약물 저항성 같은 문제들 때문에라도 철저한 관리를 거치는 것이 실제 사람들을 돕는 일 일 것이다.

지금도 한해 100-300만명의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의해 사망하고 있다. 그리고 한 연구에 따르면 가짜약이 근절된다면 적어도 연간 200,000명의 말라리아 사망자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통계를 내놓기도 했다. 일부과 장된 수치일 수도 있지만,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이런 가짜약, 비표준 약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란건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구매하는 약품들은 사실 이런 가짜약을 생산하고 공급하는데 일조하고 있으며, 인터넷에서 산 약 한 알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Reference:
1.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Combating Counterfeit Drugs: A Concept Paper for Effective International Cooperation” (concept paper, WHO, Rome, January 27, 2006), available at www.who.int/medicines/counterfeit_conference/en/ index.html)
2.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 Combating Counterfeit Drugs: A Report of the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report, February 18, 2004, section B, available at www.fda.gov/ oc/initiatives/ counterfeit/report02_04.html#scope (accessed June 13, 2007).
3. Robert Cockburn, Paul N. Newton, E. Kyeremateng Agyarko, Dora Akunyili, and Nicholas J. White, “The Global Threat of Counterfeit Drugs: Why Industry and Governments Must Communicate the Dangers,” PLoS Medicine 2, no. 4 (March 2005)
4. WHO, “Counterfeit Medicines,” fact sheet, November 14, 2006, available at www.who.int/medicines/services/counterfeit/ impact/ ImpactF_S/en/index.html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