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삶을 보니 사실 빈곤에는 한가지 이유만이 있는게 아니라 자못 사소해 보이는 수 많은 이유들이 모여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집에 제대로된 환기 시설이 없다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생각해보면 상당히 사소한 문제 같아 보인다.

공기가 좀 텁텁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겠지만, 기름이나 가스를 이용하는 우리네 조리/난방기기와는 달리 집 안에서 직접 불을 피워 조리와 난방을 하는 지역의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특히 대체로 나무 같은 연료를 이용하여 불을 피우는 경우 대량 의 숯검댕과 불순물이 공기중에 떠돌아다니게 된다. 제대로 된 환기 시설이 없으니 이런 불순물이 제대로 집 밖으로 빠져 나갈리가 없다. 이런 불순물들이 폐에 들어가면 기관지를 자극하고, 여러 기관지 질환을 유발한다. COPD (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도 매우 흔하고,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도 지속적으로 기관지가 자극되어 천식 발병률도 높다. 이렇게 기관지가 약화되어 있으니 폐렴이나 결핵같은 질환에 감염될 확률도 높아진다.

여기서 끝이냐. 그게 아니다. 제대로 된 교통편이 없고 사람들이 드문드문 흩어져 가는 지역에서 아이들이 두 세시간씩 산길을 걸어 등교하는 일은 흔하다. COPD나 천식 발작이 있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이렇게 걸어 등교하는 일도 쉽지 않다. 질병에 걸린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도 박탈 당하고, 건강이 악화되니 노동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기도 어렵다. 이런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재정의 적자 또한 누적되다 보니 전반적인 의료보건의 약화를 불러올 수 밖에 없으니 이 또한 문제다. 또 집 안에서 불을 피우다보니 아이들이 화상을 입는 경우도 많고, 이런 화상이 제대로 치료 되지 않으니 흉터가 남아 평생동안 낙인이 된다. 그리고 열악한 거주시설들은 남미에서는 샤가스병을 옮기는 흡혈노린재게 이상적인 서식처를 제공하고, 중동지역에서는 리슈마니아편모충 증을 옮기는 모래파리의 서식처가 된다.

이런 악순환의 연속은 마치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아 보인다.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끝없는 고리랄까.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하나만 끊을 수 있다면 나머지도 함께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될 수 있 다.

예를 들어 남미에서는 샤가스병의 매개체가 되는 흡혈노린재를 박멸하기 위해 끝없이 살충제를 뿌리는 대신 낡은 흙벽집들을 깔끔하게 개조/수리하여 흡혈노린재가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살충 제에 소비된 돈에 비하면 더 많은 예산이 소모되긴 했지만 샤가스병의 유병률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거주환경이 나아지면서 위생도 향상되기 시작했 고, 사람들의 건강도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하나의 제대로된 그리고 집중적인 노력으로 충분히 끊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고리가 끊어지면, 나머지 고리도 차츰 끊어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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