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의사 환자의 소통은 진료라는 과정 속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많은 의사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환자와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에피소드를 담은 '늑대별의 속시원한 이야기'에서는 오늘 특별히 늑대별 선생님 이야기가 아닌, 늑대별 선생님을 만난 환자의 가족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글을 쓴 사람은 늑대별 내과를 방문한 환자 가족 (아들) 입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먼저 "바다 생선회 먹고 복통··· 기생충이라고?"를 읽어주세요. 그 글에 대한 뒷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버지, 아무튼 해피앤딩이로군요!

일단, 우리 가정을 지켜주신 늑대별 선생님에 대한 감사로 이 글을 시작하고 싶다.

모월 모일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서니 화장실 앞에 '50대 여성' 이 쓰러져 있었다. 한순간 미스터리 영화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어 아찔한게 현기증이 일었다. 우리집에 여성이라곤 어머니 밖에 없었으므로 그 여성은 당연히 우리 어머니 되시겠다. 그렇다. 어머니께서 화장실 발깔개 위에 쓰러져 계신 것이었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데도 머릿속으론 이거 너무 이른거 아닌가? 란 폐륜적인 생각을 하며 어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다행이 정신을 차린 어머닌 고통스런 눈으로 날 바라보며 갑자기, 아, 다시 생각하니 또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아무튼 어머닌 갑자기, 무려,

입덧을 하셨다!

분명한 입덧이었다. 술 좀 마셔본 사람이라면, 부침개좀 부쳐 본 사람이라면 오바이트와 입덧의 차이쯤은 금세 알아 차릴 수 있다. 둘의 가장 큰 차이라면 밀어 내려는 것이 나오면 오바이트고 안나온다면 입덧인 것이다. 어머니의 그것은, 삼십분동안 변기통을 끌어 안고도 물 한번 내리지 안아도 될 정도로 의심의 여지없는 고약한 입덧이었다.

입덧이라니! 그렇다면 내게 동생이 생긴단 말인가? 삼십년 나이차이의? 어머니, 축하드려요, 하며 기뻐해야 하나? 28년전 지금의 동생이 태어 났을 때에도 장난감이나 새 옷의 소유권을 두고 서로 그렇게 싸워댔는데 이제와서 또 한번 그 전 쟁을 치러야 한단 말인가?  전혀 기쁘지 않았다. 흔히들 하는 말로 내가 첫사랑에 성공했으면 애가 지금 초등학생 이었을 텐데, 그 애가 지금 상황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빠, 나 삼촌 생기는 거야?  결혼 따윈 하지 않고 있었다는게 다행스러웠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에도 어머닌 입덧을 쉬지 않았고 걱정스런 표정의 나를 보시더니 식중독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하셨다. 식중독이라니! 저도 알 건 다 아는 나이라고요!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아버지 저 동생이 생길 것 같아요, 왜 그러셨어요. 손자가 보고 싶었단다. 그런데 네가 아직도 자식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어리버리대고 있으니 아버진 어쩔 수 었었단다. 게다가 내가 그동안 쏟아부은 축의금이 얼만데. 이 모든게 따지고 보면 전부 네 놈 탓이란다. 그러니 아빌 탓하지 말렴. 그렇다면 어머니 손을 잡고 대기실에서 초조히 검사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나란 말인가? 이 무슨 오이디푸스같은 시추레이션이란 말인가! 안된다. 그럴 순 없다. 아버지에겐 당분간 비밀로 하자.

시간이 지나도록 어머니의 입덧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그럴 수록 내 죄책감은 더해만 갔다. 식중독부터 급성장염의 증상까지 폭풍검색을 마치고도 불안함은 여전했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까? 누가 우리 가정의 평화를 지켜줄 명쾌한 해답을 줄 사람이 없을까? 젠장 그동안 도대체 뭘 했했길래 그 흔하다는 치과나 성형외과 의사도 하나 모른단 말인가! 갑자기 인생이 찌질해 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뜩

늑대별 선생님이 떠올랐다.

여기서 잠깐 늑대별 선생님에 대해 소개를 하고자 한다. 내가 늑대별 선생님을 알게 된것은 - 오해하지 말자. '안다'는 말은 상당히 폭넓은 의미의 층위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안다'의 의미는 '그저 안면이나 트고, 지나다 인사정도 한다'의 25계단 정도 아래 위치한, 다시말해 '모른다'의 바로 위에 있는 '안다'쯤 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늑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작년 팔월에 구입한 내 핸드폰 덕이었다. 아이폰 보다는 덜떨어졌지만 어쨌든 스마트 하다는 폰을 구입한 나는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을 깔다가 이런저런 블로그의 글들을 긁어 올 수 있다는 프로그램을 발견했고, 역시 떠돌아 다니던 블로거들의 목록을 입수, 마치 저인망 쌍끌이 어선처럼 불특정 다수의 글을 긁어와 읽기 시작했다. 양이 워낙 방대한지라 어쩔수 없이 맘에 안들면 사형시켜버리는 피의 숙청을 단행 할 수 밖에 없었는데, 피끓는 홍위병의 심정으로 한 명 한 명 숙청을 단행하던 나는 늑대별의 이글루 앞에서 멈칫 했다. 피끓는 홍위병이라면 의사라는 부르주아적 뉴앙스 만으로도 숙청의 충분한 이유가 되었지만 어쩐지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이라 혼란 스러웠다. 그래서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건방지게도, 지켜본 바에 따르면, 늑대별선생님은 현 정권의 누구와는 다르게 소통을 중요시 하셨다. 블로그를 통해 환자들과 소통하고, 의사라는 직업의 막연한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것이었다. 환자와의 대화, 문진 수준의 대화를 넘어선, 환자의 심리적 불안감을 덜어주고 의사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려는 대승적, 상생적, 심지어 박애주의적이기까지 한 그런 대화 말이다. 의사라는 단어의 부르주아적 뉘앙스는 단지 내 편견일 뿐이었다는 것을 뼈져리게 깨달았고, 미안한 마음에 어딘가 아파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워낙에 지극정성으로 모유수유를 하신 탓에 평생 병원 문턱을 열번도 채 밟지 않았을 정도로 건강한 난 그저 이글루 먼발치에서 미안합니다를 읊조리는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비록 찌질한 인맥이지만 유일하게 내가 알고 있는 늑대별선생님의 조언을 구하기위해 이글루를 검색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늑대별 선생님은 명의 중 명의가 분명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동양으로 치자면 허준이나 화타, 서양으로 치자면 히포크라테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명의가 분명하셨다. '늑대별'로 검색한 결과 여러 글들이 나왔는데 그중 내가 무심코 클릭한 글이 바로 이글 되시겠다.

<생선회를 드시고 배가 아프다구요?>

평소, 출중한 실력의 낚시광이신 아버지께선 한 번 출조하시면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종류의 어류를 닦치는데로 잡아 들이셨고, 그 중 큰 것 들은 사냥꾼이 사슴뿔 박제하듯 영하 20도의 냉동실에 보관 하셨다가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상에 올리곤 하실 정도였다. 그날도 무박 이일의 출조끝에 40센티 짜리 돌돔을 생포하셨고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손수 '돈 주고도 못 사먹는' 회를 떠주셨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아버지, '돈 주고도 못 사먹는' 그 안에 사실 제 동생이 들어 있어요. 이름은 김고래회충으로 짓도록 하죠.

고래회충유충이라니!! 세상이 이런것이 있었단 말인가?? 고래회충도 아니고 고래회충의 유충따위가 감히 내게 지극정성으로 모유수유를 해주신 그분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들었단 말인가? 불같이 화가 치밀었지만 한편으로는 고래회충따위를 동생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했고, 또 한편으로는 원클릭으로 병명을 진단 해주신 늑대별선생님의 영험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어머니 손을 잡고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밤도  늦었고 더군다나 어머니의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 였으므로, 나는 늑대별 선생님의 최근 개원한 병원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닌 병원이라면 이미 다녀 오셨다며 아무튼 시간 되면 가보시겠다고 건성으로 대답하셨다. 어머니, 이건 그렇게 한가한 사한이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고래회충과 호형호제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구요! 늑대별 선생님은 다른 의사들과는 다르다며 어머님을 설득했고, 혹시라도 비싼 내시경 검사를 거부하는 '대한 어머니 근성'을 부리실까봐 약간의 과장법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최대한 자제한다고 했지만 설득이 끝날 즈음에는, 늑대별 선생님은, 마치, 죄송한 일이지만,

내시경의 신과 접신하는 용한 무속인

처럼 되어버렸다. 이러면 안되는 것이었는데 나도 모게 일이 그런식으로 되어버렸다. 이자리를 비러 늑대별 선생님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는 바이며, 어디까지나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기 위한 효심에서 비롯된 일이므로 너그러히 용서해 주셨으면 하는 바이다. 아무튼, 과장법은 보기좋게 먹혀 들었고 어머니는 다음날 늑대별 병원에 가셨다. 다음은 늑대별 선생님께서 손수 작성하신 글 되시겠다.

<저를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원에서 돌아오신 어머니께선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맛있게 식사를 하시며, 뱃속의 그것의 크기가 요만 했다고 젓가락을 자삼아 무용담을 늘어놓으셨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난 어머니의 젓가락이 날 보며 '형~' 하는 듯 하여 조용히 밥상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아무튼, 이리하여 우리 가정은 다시 평화를 찾았고, 아버지께서는 다시는 낚시를 하시지 않겠다, 까지는 아니지만 앞으로 회를 먹을 때 주의 하여야 겠다고 말씀하셨다.

ps1. 수줍음이 많아... 허락없이 링크 걸었습니다. 용서하세요.
ps2. 어머니의 믿음은 제가 사기친게 맞지만 그 밖의 것들은 선생님께서 직접 만드신 겁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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