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에 물리는 일을 평생 겪을 일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뱀은 동물원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동물이다.
하지만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들과 산에 뱀을 쉽게 볼 수 있다. 당연히 뱀에 물려 응급실로 찾는 사람들도 많다.

시야를 확대해보면 세계적으로 뱀에 물려 피해를 입는 경우가 심각한 수준이다. 오죽하면 세계보건기구(WHO)가 소외된 질환 목록에 뱀에 물린 것(snake bite)을 등록해 놓았을까.

가장 유명한 독사 중 하나인 인도코브라. (출처-위키피디아)


우리에게 뱀에 의한 피해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국내 독사들이 맹독이라고 할 만큼 치명적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뱀에 물리는 경우가 많은 제3세계 국가의 경우에는 의료 시스템의 낙후로 제대로 된 통계를 얻지 못해서다. 뱀 교상(咬傷, 동물에 물려서 생긴 상처)이 많은 아프리카와 열대 지방의 경우 의료 시설이 갖춰지지 않는 곳에서 사고 발생이 주로 일어나고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2008년에 발표된 어느 의학 논문을 보면, 전 세계에서 뱀에 물리는 사람 수를 추정하여 계산했는데, 연간 42만1000명의 피해자와 2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보고되지 않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184만1000명의 피해자와 9만4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고 추측된다. 이 정도 피해 규모면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웬만한 전염성 질환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뱀에 물려서 사망하는 것은 독이 죽음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독사라고 부르는 뱀들의 독은 조직을 파괴하는 독성도 가지고 있으면서 출혈을 유도하기도 하고, 혈액 응고를 방해할 뿐 아니라 때로는 마비 등을 유도하기도 한다. 독소만 문제가 아니라 세균들도 몸속에 들어와 피해를 가중시킨다.

이렇게 독사에 물리는 것이 끔찍하다 보니 영화를 보면 뱀에 물린 동료를 구하기 위해 칼로 상처를 내고 입으로 피를 빨아낸다. 일반적으로 독사에 물렸을 때 반드시 해야 할 처치로 맥가이버 칼이 있다면 칼집을 내고 입으로 피를 빤 후(tattooing) 독이 퍼지지 않도록 꽉 묶어서 이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아주 옛날 방식으로 현재로서는 잘못된 의학 정보다.
뱀 교상 환자를 많이 보는 응급실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뱀에 물려서 생긴 위해(危害)보다 잘못된 처치로 인해 입는 피해가 더 크다. 그래서 뱀에 물렸을 때 응급처치 가이드라인이 바뀌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응급처치를 한다고 칼로 째고 입으로 독을 빨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세균에 의한 이차감염으로 오히려 더 고생할 수 있다. 또 독이 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응급처치를 한다고 팔다리를 꽉 묶어서 혈액이 순환되지 않아 상처 부위가 괴사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WHO에서도 이와 같은 전통적인 응급처치들이 안타깝게도 효과가 없으며 민간요법들도 마찬가지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뱀에 물렸을 때 도대체 뭘 해야 할까? 국내에 있는 독사들에게 물렸다고 하더라도 수분 내 사망하는 맹독류는 거의 없다. 대표적 인 국내 독사는 살모사, 까치살모사, 쇠살모사인데, 외국에 비해 독작용(毒作用)이 심하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현재는 뱀에 물렸을 때 안전신고센터 119에 연락해 빨리 응급실에 가는 것이 최선이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119를 부르는 것이 최선이냐고? 정말이다! WHO에서도 독사에 물렸을 때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처치를 긴급 병원 후송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것이 있기는 하다. 뱀에 물린 사람을 안심시키는 거다. 공포가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있는데, 독이 퍼지기도 전에 공포감에 몸이 마비된다고 호소할 수도 있다.
또 물린 자리를 부목이나 주위에 있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고정시켜 움직임이 없도록 하여 가급적 독이 혈액으로 흡수되는 양을 적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린 자리에 이차감염이 되지 않도록 깨끗한 물로 씻고 거즈로 상처를 덮는 것이 좋다.

<참고문헌>

  • Kasturiratne A, Wickremasinghe AR, de Silva N, Gunawardena NK, Pathmeswaran A, et al. (2008) Estimation of the global burden of snakebite. PLoS Med 5(11): e218.

  • Alimuddin I. Zumla; Gordon C. Cook; Manson, Patrick (2009). Manson’s tropical diseases. Philadelphia: Saunders.

  • Guidelines for the Clinical Management of Sanke bites in the South-East Asia Region, World Health Organization, 2005, Reprint of Asian Journal of Tropical Medicine & Public Health, Vol 30, Supplement 1, 1999


작성자 : 정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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