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유일한 완화의료 전문 간호사가 원내 완화의료 현황에 대해 발표를 한다고 해서 들으러 갔다. 가보니 막상 원내 10명이 넘는 혈액종양내과의사 중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대부분 가정의학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정신과 선생님들.

진행암환자들은 대개 처음에는 무증상이고 오히려 화학요법에 의한 불편이 더 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학요법의 역할은 줄어들고 대신 암의 진행에 따른 불편한 증상들이나 심리사회적 문제들이 커져간다. 이때 필요한 것이 완화의료인데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을 한다. 그러나 완화의료를 누가 언제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서는 의사마다 생각하는 바가 모두 다른 것 같다.

화학요법을 언제까지 하느냐가 사실 종양내과의사의 완화의료에 대한 자세를 결정짓는 큰 요인인 듯하다. 폐암이나 유방암 같은 경우엔 표적치료제가 상대적으로 개발이 많이 되어 있는 편이고 보험적용도 되고 임상시험도 많아서, 환자가 임종에 가까울 때까지 써볼만한 약제들이 남아있는 경우도 꽤 있다. 문제는 그런 상태라고 완화의료가 필요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건데 화학요법을 계속 진행하게 되면서 advanced care planning이 상대적으로 늦어지고 아예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한 것 같다.

사실 우리병원 같으면 가장 환자도 많고 임상시험과 연구가 활발한 환자군인 폐암환자들이 상대적으로 완화의료과로 의뢰가 덜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CPR 방송 나는 것을 들으면 대개 다 폐암병동에서 나는 것이다. care plan이 명확치 않으면 벌어지는 일들이다. 적어도 진행암환자는 급성감염증 또는 화학요법의 이상반응으로 인한 것이 아닌 한은 CPR이 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어차피 완치가 불가능한 진행암이라면 언제쯤 상태가 나빠질 것임을 대략이라도 알려주고 그것에 대한 대처는 적어도 환자와 가족으로 하여금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기본적인 의무 아닌가? 그런데 그 기본적인 의무가 외래환자가 많고 진료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너무도 쉽게 방치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좀 과격하게 말하면, 임종에 대한 준비를 시켜주지 못한다면 임상시험과 연구가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는 생각이다. 그건 정말 환자를 이용하고 버리는 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아무튼 완화의료도 쉬운 게 아니고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경험과 지식이 필요한 일이니만큼 종양내과의사가 다 하려고 덤벼들 건 아닌 것 같다. 전문적인 완화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팀이 있다면 화학요법을 진행하는 중인 환자여도 단계적으로 같이 진료를 보면서 communication을 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종양내과의사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 그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굳이 완치목적의 암 치료가 아니더라도, 말기환자의 돌봄에도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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