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우리 병원으로 옮겨진 아저씨였다. 정상압수두증(Normal Pressure Hydrocephalus) 진단 하에 뇌실복강단락술(VP shunt)을 시행하였으나 증상이 크게 호전되지 않아 요양병원으로 오시게 된 것이다. 중심을 잡지 못해 보행도 힘들었고 의사소통도 힘들었다. 그저 간단하게 네 아니요 정도만 표현할 수 있었고 식사도 입으로 하기는 했으나 사레가 좀 들렸다. 

아저씨보다는 보호자인 아주머니가 더 문제였다. 어딘가 불안증세가 있어보였다. 항상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환자상태를 물었는데, 아무리 설명을 해 줘도 같은 걸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면서 의료진을 질리게 했다.

“우리 아저씨, 좋아질 수 있을까요?”

“병명이 명확하다면 예후를 말씀드릴 수 있을 텐데, 정상압수두증 치료를 하고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으셨기 때문에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좀 더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더 검사하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제가 확실한 답변을 드리기는 힘들고요.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정도에서 증상에 대한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이고, 그럼 더 좋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건 확실히 말씀드리기는 힘들겠네요.”

“애들 아빠가 이렇게 누워있어서 어떻게 한대요. 이제 집에 돈도 없는데. 그런데 원인이 뭐래요? 왜 이런 거예요?”

“말씀드렸지만,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검사가 필요한데 검사를 할 수 없어서.......”

“검사를 왜 못해요?”

“아주머니께서 대학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더 이상 정밀검사를 안 하시겠다고 하셨잖아요.”

“그거야 돈이 없으니까 그렇죠. 그럼 우리 애 아빠는 이 상태로 계속 가는 거예요? 더 좋아지지 않고요?”

“그거야 원인이 확실치 않으니까.......”

“아이고, 이를 어째. 원인을 알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어요?”

“검사를 하셔야.......”

“검사를 하면 알 수 있어요?”

“저희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검사는 아니고요, 대학병원에 가셔서 하셔야죠.”

“그럼 우리 애 아빠, 대학병원에 데려가면 원인을 알 수 있어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원인을 알려면 좀 더 자세한 검사를 해봐야 하겠죠.”

“그럼 지난 번 대학병원에서는 왜 검사를 안했대요?”

“그거야 아주머니께서 검사를 더 안 하시겠다고 하시니까.......”

“돈이 없으니까 그랬죠. 검사를 안 하면 애 아빠는 더 좋아지지는 않는 거예요?”

“.......”

“우리 애 아빠 좋아져야 하는데……. 근데 왜 안 좋아지는 거예요? 원인이 뭐에요?”

“.......”

아주머니의 질문공세와 집착에 간호사도 나도 질려버렸다. 매번 똑같은 이야기. 게다가 세상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을 나에게 해서 어쩌겠다는 걸까.

“애 아빠가 저렇게 누워있으니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집에 돈도 없는데 병원비는 계속 나가고……. 내가 몸이라도 성하면 나가서 일해 돈이라도 벌 텐데 내 몸도 힘들고 손자도 봐줘야하고.......”

“병원 한 번 오기도 힘들어요. 손자를 떼놓고 올 수 없으니까. 손자 업고 버스타고 오면 허리가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 내가 뭔 죄를 졌는지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사네.”

“우리 애 아빠 일어나서 걸을 수는 있을까요? 저렇게 맨날 누워만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남편이 그렇게 누워있어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 일어나서 걸을 수는 있겠느냐. 손자를 봐줘야 해서 병원에 오기 힘들다……. 어느 것 하나도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는 없었다. 아주머니의 엔드리스 하소연을 듣다보면 나조차도 머리가 멍해지곤 했다. 말을 끊으려고 해도 아주머니는 듣지 않았고 결국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야만했다.

“아저씨가 저리 되셔서 힘드시겠네요.”

의례적인 위로. 이미 손상된 뇌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설사 회복된다 해도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위치를 되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주머니의 늘어가는 하소연은 아무래도 아저씨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봐야겠지만 아저씨는 건강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당분간 아주머니의 하소연이 끝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사레가 너무 자주 들린다는 것 뿐.

어느덧 입원한지 1년이 지났다. 병원비 마련이 힘든 모양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아주머니의 신세타령과 세상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은 여전했지만 사레들리는 횟수는 조금씩 잦아졌다. 드시기 쉽게 식사를 갈아서 드려봤지만 좀 불안했다. 안전을 위해 코줄을 끼우는 것이 낫겠다고 아주머니께 설명했지만 아주머니는 우왕좌왕할 뿐 결정을 하지 못했다.

“코줄을 끼면 불쌍해서 어떻게 본데요. 그거 아프지는 않나요?”

“조금 불편하시긴 하겠죠.”

“아이구, 이걸 어째. 난 결정 못하겠어요.”

“코줄을 안 끼우면, 사레가 들려서 숨이 막힐 수도 있어요.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요.”

“근데 코줄 끼면 입으로는 못 먹는 거 아니요? 입으로 밥도 못 먹으면 그게 사는 거래요?”

“그래도 식사하시다 폐렴 걸리거나 숨 막히는 것보다는 낫죠.”

가족끼리 상의해본 다음에 결정하시겠단다. 사실 나도 코줄을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사레들리는 것이 아주 심하지 않은데다 입으로 식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삶에 있어 즐거움 하나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의학적 안전을 위해서는 코줄을 권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답변이 없다. 아주머니는 결정을 못하고 안달복달만 할 뿐이었다.

“얼른 결정하셔야 해요. 저러다 콱 숨 막히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아주머니에게 살짝 겁을 줬다. 아주머니는 또 고개를 저었다. 보호자의 동의 없이 내 마음대로 코줄을 끼울 수도 없었다. 어느 날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줄, 끼울게요!”

아주머니는 호들갑을 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입으로 먹지 않으면 사는 게 의미가 있나요? 우리 애 아빠 오늘 밥 먹을 때 사레 한 번밖에 안 들렸어요. 밥이라도 먹고 살게 해주세요.”

아주머니 말도 맞았다. 사레들리는 것도 식사할 때 한두 번 정도 살짝 기침을 할 뿐이었다. 내가 너무 과민 반응하는 건 아닐까. 다른 환자 같았으면 그냥 조심히 식사 드리라고 했겠지만, 나의 동물적인 감각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안전한 게 좋겠지. 코줄을 꽂자고 아주머니를 들볶았지만 답답하게도 아주머니는 매번 고개를 저었다. 내 마음대로 코줄을 끼울 수도 없는 터라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결국 사달이 났다.

“과장님! XXX 환자가 숨을 안 쉬어요!”

식사를 하다가 잘못 넘긴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버렸다. 바로 뛰어 올라가보니 숨이 거의 멎은 상태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인튜베이션(intubation 삽관)!”

아저씨의 고개를 젖히고 후두경을 입에 밀어 넣어 혀와 턱을 들어올렸다. 기관에 튜브를 박아 넣고 석션 튜브를 넣어보니 음식물이 콸콸콸 뽑아져 나왔다. 앰부를 짰지만 산소포화도는 올라가지 않았다. 게다가 심장 박동마저 느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또다시 소리를 빽 질렀다.

“에피(epinephrine) 하나! 중환자실 자리 있나 확인 해봐요!”

앰부를 짜며 아저씨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심장은 뛰고 있었으나 너무 느렸고 심전도의 형태도 변해 있었다. 심장이 점점 느려졌다. 나는 아저씨의 심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아트로핀(atropine)!”

심장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인공호흡기가 아저씨의 호흡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잠시 심장기능이 회복된 사이 나는 아저씨의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젠장. 동공이 열렸다.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새 뇌손상이 온 건가. 아니, 지금은 뇌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심장이 다시 느려졌다.

몇 시간이나 사투를 벌였지만 아저씨의 의식은 회복되지 않았다. 심장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지경이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책임 여하를 떠나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은 가혹한 일이었다.

나는 한두 걸음 병상에서 물러섰다. 심폐소생술을 하느라 얼굴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고 와이셔츠도 푹 젖어있었다. 거친 숨을 쉬며 나는 아저씨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심전도의 모양도 좋지 않은데다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이제는 약도 듣지 않는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나는 고개를 떨군 채 간호사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좀 불러주세요.”

중환자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이제 마지막 말을 전해야 할 때다.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심장박동 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저희가 아저씨 심장을 살려보려고 노력해봤지만, 현재로서는 소생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아주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저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많은 양의 약물이 투여됐고 더 이상 약물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저씨의 심장이 점점 느려지더니, 거의 움직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조만간 사망선언을 해야 할 것이다. 심장이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무의식중에 해서 안 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저씨가 돌아가시게 되면 이제 아주머니도 좀 편해지시겠지. 돈도 없으신 데다 손자들 데리고 병원 왔다 갔다 하시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니까. 이제 자주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고 병원비 걱정도 안 해도 되고……. 손자들 키우는 것도 수월하겠지. 그래. 산 사람은 살아야지.’

오래 앓던 환자가 임종하면 슬퍼하기보다는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을 짓던 다른 보호자들을 떠올렸던 모양이다. 아저씨의 심장이 멈췄고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사망선언 하겠습니다.”

그래, 어차피 평생 누워서 사실 분이었어. 비록 안타까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머니가 많이 힘들어하셨잖아. 이제 한 짐 덜어놓았으니 아주머니도 행복하게 살아가시겠지. 사망선언을 하면서도 나는 안타까움과 함께 아주머니의 남은 생이 힘들지 않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아주머니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어떡해! 여보! 당신이 죽으면 난 어떻게 살라고!”

피토하듯 통곡하는 아주머니를 보고 나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이건 뭐지?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예사로운 울음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절절한 통곡이었다. 남편을 잃는 슬픔과 괴로움에 뿜어져 나오는 울음소리였다. 이런 울음을 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나는 순간 창피함에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가족이 죽은 것이다. 남편이 죽은 것이다.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겠는가. 그를 마치 아주머니 인생의 짐짝처럼 여겼던 내가 너무나 죄스럽고 미안했다.

아, 잠시나마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했던 내가 한스러웠다. 죄책감에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 서둘러 차트를 정리하고 중환자실을 나섰다.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다. 가족들은 환자를 짐으로 생각한다며 투덜거리던 나마저 그를 짐으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마치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것은 아닐까. 진료실로 돌아와서도 나는 한참동안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가 돌아가신 후 2주 정도 지난 후, 아주머니가 외래에 오셨다. 수척해진 얼굴을 하고 등에 손자를 업고 있었다.

“선생님 잘 지내셨지요?”

“네. 어떻게…… 장례는 잘 치르셨어요?”

“네. 그동안 선생님께서 신경 많이 써주셔서 고마웠지요.”

아주머니의 말이 나의 가슴을 또 한 번 아프게 했다. 외래에는 어쩐 일이냐고 물었더니 요즘 도통 밥맛도 없고 기력도 의욕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애들 아빠 생각만 나고 그러네요. 머리도 자주 아프고.”

사별 후에 나타나는 정상적인 애도반응이었지만 증상이 심한 것 같아 항우울제를 조금 처방했다. 그 후로도 아주머니는 가끔 내 외래에 들려 약을 타가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죄책감을 느껴야만 했다. 어느 날 진료를 다 본 아주머니는 일어서면서 나에게 말했다.

“예전에는 힘들어도 애들 아빠 보면서 견디곤 했는데 이젠 그럴 수도 없어서…… 참 힘드네요.”

가슴을 후벼 파는 것만 같았다. 숨이 턱 막혀 아무 말도 못하는 사이, 아주머니는 ‘수고하세요’하며 진료실을 나섰다.

비록 혼자 식사를 하기도 힘들고 침상에 누워서 살 수 밖에 없는 분이었지만 아저씨는 아주머니에게 있어서 존재만으로 빛이 되는 사람이었다. 아저씨는 아주머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폐만 끼치고 있었지만, 그런 남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머니는 힘이 났던 것이다. 그저 힘들 때 손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저씨는 아주머니에게 듬직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야.’

레지던트 때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이것을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것일까. 살아있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힘이 된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라 해도, 힘이 없어 자신의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약자라 해도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엄성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을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힘없고 사리판단 못하고 짐스러운 사람일지라도 예전에는 어딘가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사람이고, 지금도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주머니 내외를 생각하면 한 때나마 어리석은 마음을 가졌던 것에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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