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나 보호자들에게 수술에 관한 설명을 하고 동의서를 받는 일은 늘 어렵다. 수술에 참여는 하지만, 집도는 주로 교수님들이 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이 그를 보조하는 역할 뿐이다.

따라서 명쾌한 수술 목적이나 정확한 방법, 그로 인해 발생 가능한 신경학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수술필드에 서기 전까지는 전적으로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뇌라는 중요한 장기를 다루는 신경외과 영역의 특성상 손끝 하나라도 잘못 움직일 경우 의식이 저하되고, 사지에 마비가 오고, 말이 어둔해지는 무시무시한 증상들이 언제든지 발생 가능하기 때문에 수술 설명에 있어서 한 치의 부족함이나 털끝만큼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일 년차가 사직한지 두 달째, 그리고 치프 선생님이 병원을 나간 지 5일째. 넘쳐나는 일 덕분에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이, 삼년 차 둘이서 어떻게든 꾸려나가고 있지만 부족한 전공의 숫자에 비해 밀려드는 환자와 넘쳐나는 수술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특히나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게끔 만드는 수술 설명이나 보호자 면담은 바쁜 하루를 보내는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1분도 안 걸리는 심플한 로컬 블락 동의서를 받는데 한 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소요하게끔 만든 한 보호자 때문에 그 시간에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호자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의사에게 환자의 상태 및 치료 방법 등에 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시달리더라도 어쩔 수 없이 붙잡혀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이런 저런 수술 방법들, 각종 합병증들 여기에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보호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바쁜 탓에 가능한 간단히 설명하고 넘기는 경우도 있지만 자칫 누락된 내용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가끔 이상한 보호자들에게 잘못 걸리면 하루 종일 시달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동의서고 뭐고 다 집어던져 버리고 병원을 관두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밀려온다. 차라리 낙향하여 수타 짜장 때리면서 사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본다. 휴- 매일 매일이 참으로 힘든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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