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금 나오는 거, 기준이 3.0이 아니라 원래 2.5 이상이면 받는 거다. 네가 공부 안 할까봐 내가 그냥 3.0이라고 말한 거야. 학점 2.9 받았으면 장학금 나올 테니 걱정 마. 괜찮어.”


내가 대학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조금 남다르다. 시험 성적에 맞춘 바도 있으나 집에서 통학이 가능한 거리라는 점, 아버지가 교직원이셨기에 전액 장학금이 나온다는 점 등이 꽤 큰 요소로 작용했다.

대학 입학당시 아버지께서는 교직원 자녀 장학금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전액 장학금이었다. 내가 내야 할 것은 단지 학생회비밖에 없었다. 지금은 의대 1년 등록금이 천만 원을 넘어섰다는데, 내가 대학을 다닐 적만 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찌되었건 다른 과 보다는 확실히 등록금이 비쌌다. 게다가 우리는 6년을 다니니 교직원 자녀 혜택은 우리 집 재정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학교 측도 장학금을 호락호락 주지는 않았다. 조건이 몇 가지 있었는데 다른 조건은 대수롭지 않았으나 학점이 문제였다. 아버지께서는 내게 단단히 다짐을 받아내셨다.

“학점이 3.0이 넘지 않으면 장학금이 나오지 않는다. 열심히 해라.”
“네.”

처음에는 학점 3.0을 참 우습게 봤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꽤 우수한 성적을 받아왔기 때문에 대학에서도 항상 A학점을 받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대학은 고등학교와 틀렸다. 단순암기로 시험 준비를 하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았고 서술형 답안을 써야 하기도 했다. 게다가 의대라는 곳이 나름 한 공부 한다는 녀석들만 모이는 곳인데 주로 상대평가에 의해 학점을 받다보니 3.0학점, 즉 B학점을 받으려면 적어도 상위 30% 정도에는 들어야 안전했다. 1학년 첫 번째 중간고사를 망쳤다. 낯선 시험제도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정말 장학금을 못 받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덜컥 겁이 났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기말고사 때에는 중간고사의 실패요인을 보강해 만반의 준비를 했고 다행히 B학점을 넘겼다.

그 후로도 무난하게 B학점 이상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학년 2학기. 유난히 학점을 짜게 주기로 유명한 교수님들이 포진해있었다. 30명의 동기 중 매년 2명 정도씩 일부러 유급을 시키는 분위기였다. 친구들은 눈에 불을 켜고 공부했다. 나도 나름 열심히 공부했으나 악연이 뒤따랐다. 의학라틴어 수업은 열심히 들었지만 막상 시험문제는 라틴어, 한자, 영어 중 하나를 써놓고 나머지를 써넣는 빈칸 채우기였다. 그런데 나는 한자를 정말 모른다. 중학교 이후 한자를 배운 적이 없고 내가 표의문자에 약해서 한자를 잘 외우지 못하는 이상한 뇌구조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눈앞이 캄캄해질 지경이었다. 문과가 아니라 이과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한문이 싫어서였다. 라틴어를 다 외우면 뭘 하겠는가. 영어나 라틴어로 나온 문제는 한자 답을 쓰지 못해서 틀리고, 한자로 나온 문제는 문제를 읽지 못해서 틀렸다. 나에게 이건 라틴어 시험이 아니라 한자 시험이었다. 결과는 C+.

비교해부학 실습에서는 2명이 한 조를 이루어 과제물을 내곤 했는데, 함께 하면 복잡하니까 그냥 1학기에는 내가 과제물을 내고 2학기에는 친구가 내기로 했다. 1학기 과제인 붕어 뼈 표본 만들기는 내가 뼈를 잘 발라내 번호표 스티커까지 붙여서 냈고 교수님으로부터 흐뭇한 미소를 선사받았다. 하지만 2학기가 되어 내 친구 차례가 되자 친구는 귀찮다며 과제를 아예 안 냈다. -_-;; 결과는 C+.

게다가 물리화학에서는 당시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좀 생겨서 공부를 거의 하지 못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단 한번 받은 D학점을 하필이면 이 시기에 받은 것이다.
 
이런 일들이 마치 짠 것처럼 겹쳐지자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이러다 B학점 못 받는 거 아냐?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그 여유를 만끽할 수 없었다. 불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B학점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엄습했다. 교학과에 전화를 걸어볼까? 교수님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씀드리고 선처를 부탁해야 하나? 유급문제도 아니고 장학금 문제로 그러는 건 너무 웃긴 일 아닌가. 그렇게 가슴 졸이는 날들이 지나고 어느 날 우체통을 보니 성적표가 와 있었다. 봉투를 뜯어본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학점 2.9……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머릿속이 멍해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마당에 서서 성적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너무 죄송했다. B학점도 못 받아서 공짜로 주겠다는 장학금을 발로 차버린 아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주머니에 성적표를 넣었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도 나는 성적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화를 내실까? 불호령을 내리시겠지? 수백만 원이 눈앞에서 사라졌는데 마음이 상하지 않으실 리가 없지. 그나저나, 우리 집에 등록금을 낼 여유는 있을까? 당시 4남매가 모두 대학을 나오고 내가 막내였기 때문에 집이 한참 쪼들릴 때였다. 막막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성적표를 들고 안방으로 갔다. TV를 보시는 아버지 앞에 슬그머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버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무슨 일이냐?”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던 나는 조용히 성적표를 내밀었다. 긴장한 탓에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성적표가 왔는데요.”
“응. 그런데?”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이번에 시험이 너무 어려워서...... 성적이 별로 안 좋게 나왔어요.......”

아버지께서 굳은 얼굴로 성적표를 집어 드셨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인처럼 말을 이었다.

“3.0 이상이어야 장학금 나오는 거잖아요...... 그런데 요번에 제가...... 그걸 못 넘겨서 장학금을 못 받을 것 같아요.”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 미안함을 어찌해야하나. 집안 형편도 썩 좋지 못한데 등록금까지 마련해야 하니 부모님은 또 얼마나 힘드실까.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아버지.”
“2.9 받았구나. 괜찮다.”

불호령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뜻밖의 온화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화를 내지 않으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죄책감이 더 커지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장학금을 못 받게 되어서.......”
“사실은 2.5였다.”
“네?”

나는 무슨 말씀이신가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아버지는 씨익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장학금 나오는 거, 기준이 3.0이 아니라 원래 2.5 이상이면 받는 거다. 네가 공부 안 할까봐 내가 그냥 3.0이라고 말한 거야. 학점 2.9 받았으면 장학금 나올 테니 걱정 마. 괜찮어.”

아버지의 그 말씀에 나는 봄눈 녹듯 긴장이 풀어져버렸다. 아아, 정말 다행이다.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구나. 짜릿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곧바로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이 밀려왔다. 그런 건 일찍 말씀해주셔도 되잖아요. ㅠ_ㅠ 내가 그렇게 못 믿을 만 했던 것일까. 그것도 모르고 혼자 맘고생 했던 것이 너무 억울했다. 아아, 나의 죄책감과 눈물을 돌려줘요.

그 후로도 다행히 장학금을 잘 받으며 대학을 졸업했다. 장학금 기준이 C+ 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어찌나 마음이 편하던지. 그런 걸 보면 아버지께서 내가 이렇게 긴장을 풀 것을 미리 아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쨌든 그때를 생각하면 재미있기도 하고, 아찔하기도 하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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