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주말에 무슨 진료소 일기일까. 이런 생각이 든다. 금요일 오전 진료 이후 48시간째 환자를 안 보고 있는데, 이 묘한 기분은 뭘까? 햇볕은 조금 뜨겁지만 바람은 차갑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햇볕이 내리쬐는 한국의 가을 날씨다. (절기상으로 이곳은 봄인데 말이다.)

이곳에 온 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25일이니까 정확히 두 달은 아니지만 8주 정도 지났다. 그동안 많은 환자를 봤고, 많은 고민을 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에게는 다시 두 달, 8주라는 시간이 남았다. 또 그동안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

이곳에 와서 의사의 한계를 느끼고, 부족함을 느끼고, 그리고 내가 옳다고 믿었던, 진리라고 믿었던 현실이, 사실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또 남은 두 달 동안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된다.

한국에서 진료소 일기를 읽으시는 분에게, 종종 너무 힘들고 어렵고 환자의 고통과 함께하는 모습에 차마 잘 지내느냐 라는 말을 못 건네겠다는 말을 듣곤 한다. 그것이 내가 원했던 것일까? 공지영 작가의 말처럼. 글이란 어떠한 떠다니는 나비 같은 것을 박제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이 스와질랜드 시골 마을에서 쓰인 박제된 글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넘어, 한국에서 다시 나비가 되어서 날아가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의 고통과 아픔을 공감해야하고, 그들을 위로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개인의 감정으로 넘겨버린다면, 너무나도 힘들어진다. 아마 이곳에 오고 나서 초반 몇 주간은 내 무기력함에, 현지 환자들의 너무나 열악한 상황과 그리고 안 좋은 질병 상태에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난 슈퍼맨이 아니니까. 내가 정작 이곳 아프리카 시골마을로 온 이유는 슈퍼맨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슈퍼맨이 되지 않고서라도, 이들의 건강이 유지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너무나 안 좋은 상태의 환자나, 내가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환자를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듯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서 마음속에서 정리하고 그것을 넘겨야 할 시간... 그러기에 저녁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니 퇴근한 뒤에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좋은 듯하다.

앞으로 두 달 남은 기간 작지만, 이들에게 도움된다면 도움 주고, 나 또한 많이 배워가고 싶다. 이곳에서 해답을 얻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평생 머릿속에서 고민해야 할 질문의 시작점을, 그 시작이 되는 작은 어떤가를 얻을 수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ps: 갑자기 글을 쓰기가 싫어졌다.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을 위한 글이 아니라,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내뱉는 말들. 그러한 말들이 많아지다 보니까, 생각을 정리할 때 정작 필요한 글을 못 만들어내는 듯하다.

바람이 분다. 차가운 바람. 그리고 습한 바람. 점심 먹으러 슬슬 센터로 내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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