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산행을 즐기기에는 조금 이르다는 10월 초순 해질 무렵, 남해 금산을 찾았다. 지금은 이동면 복곡 입구에서 금산 8부 능선까지 개설된 도로를 따라가기에 무언지 모르게 약간 낯설다는 느낌도 들었다.

상주 방향에서 금산에 올랐던 때가 그 어린 시절 1964년과 그리고 1966년이었나 보다. 산 높이가 불과 681m라 했지만, 오랫동안 산길을 올라야 했기에 그리 녹록한 오름길은 아니었다. 비지땀을 흘리면서 도달한 쌍용문(雙龍門), 그 아름다웠던 가을 단풍, 그리고 조금 초라해 보였지만 아담했던 보리암과 3층 석탑 등이 뇌리를 스친다. 당시에도 남서쪽 상주해수욕장을 내려다본 그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중에서 유일하게 산악공원에 해당하는 남해 금산은 바다에서 솟아오른 산이기에 내륙에 있는 산보다 훨씬 더 높아 보였다. 금산의 원래 이름이 보광산(普光山)이었는데 조선 후기 이성계(李成桂)가 이 산에서 100일 기도를 한 후 산신에게 자신이 왕이 되면 산을 온통 비단으로 감싸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마침내 왕이 된 이성계는 약속에 따라 산의 이름만을 금산(錦山)이라 이름 붙였다.


금산 보리암 -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처


금산 보리암 -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처

보리암은 신라 신문왕 3년(683) 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막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 하고, 절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 하였다는데, 이것이 보리암의 전신이다. 보리암은 강원도 양양 낙산사 홍련암, 경기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 기도처로 유명하다. 남해군에서는 용문사, 화방사와 함께 남해 3대 사찰이기도 하다. 사진은 <보리암 보광전>


보리암의 삼층석탑


보리암의 삼층석탑

신라 김수로 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이란 돌로 세웠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불가사의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신기하게도 이 탑 앞에서는 나침반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사실이다. 석탑의 첫 번째 기단에 나침반이 놓여 있는데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침반의 바늘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보리암 해수 관음보살상


보리암 해수 관음보살상

산과 바다와 기암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보리암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언제부턴가 끊임이 없다. 불자라면 남해 보리암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해수 관음보살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 관음보살상, 강화도 보문사 관음보살상과 더불어 최고의 명물이 되었다.

그리고 불가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바닷가에 상주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바닷가 쪽에 이렇게 관음성지가 몰려 있게 된 것이다. 더구나 바닷가에 몰려 있는 관음성지는 그 지리적 특성 탓에 저절로 일출이나 일몰 명소로도 소문이 났고, 그런 멋진 터와 풍광이 기도의 효험을 높여준다고 했다.


흔들바위


흔들바위

비스듬히 누워있는 큰 바위 끝에 조그마한 돌이 얹혀 마치 자라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이 바위를 흔들어 보았고, 실제 흔들리는 것까지 확인하였는데, 지금은 ...


망대 옆의 문장암


망대 옆의 문장암

금산 정상의 망대 옆에는 장화처럼 생긴 '문장암'으로 일명 '명필바위'라고도 불린다. 조선 중종 때 대사성을 지낸 한림학사 주세붕 선생이 전국을 다니며 풍류를 즐기다가 남해에 있는 금산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아왔는데, 금산의 쌍홍문을 통하여 이곳 정상까지 올라와 보니 과연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신비로운 전설이 가득함에 감탄하여 바위에다 '由虹門 上錦山'(홍문이 있으므로 금산에 오르다.)이라는 글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어서 문장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남해금산 봉수대(烽燧臺)


남해금산 봉수대(烽燧臺)

봉수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밤에는 횃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이다. 이 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시행되었다. 봉수대는 각각 일정한 거리를 둔 산꼭대기 중에서 시야가 확 트인 곳에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불꽃이나 연기를 한 번 올리지만,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두 번,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세 번,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네 번, 육지에 상륙했을 때 다섯 번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올렸다. 이곳 금산 봉수대는 고려 의종 때 설치되어 조선 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곳에서 점화된 봉수는 창선 대방산을 통해 사천, 진주 등을 거쳐 한양에 전달되었다고 한다.


봉수대는 금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 설치되어 있는데 사방의 조망이 넓고 비길 데 없이 아름답다 하여 망대(望臺)라고 부른다. 이곳에 오르면 금산의 38경과 남해의 만경창파를 한눈으로 굽어볼 수 있다. 뒤쪽으로 삼천포 화력발전소가 보이고, 날씨가 좋으면 통영, 거제도, 욕지도 그리고 올망졸망 모여 있는 이름 모를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금산이란 존재를 더욱 각인하기 위해 남은 사진 한 장도 남기도록 하였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시, 이성복 시인의 <남해금산>을 읊어본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참조  http://blog.naver.com/hyouncho/50033588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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