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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Woodlouse from flickr


맑은 날이다. 가벼운 면바지를 접고, 쪼리를 신고, 한 치수 작고 오래 입어 색이 바랬지만, 그만큼 오래 입어 내 몸에 딱 맞추어진 피케셔츠 하나를 입고, 메신저 백을 둘러매고 출근한다. 오늘은 출근하는 길에 주변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평상시에는 아이폰을 쥐고, 밤새 있었던 트위터의 일들을 따라가려고 하지만, 오늘은 아이폰은 가방에 넣고,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길을 보면서, 주변을 보면서 출근했다. 사실 아침에 방문 앞에 개 두 마리가 제대로 누워 있길래 개 사진을 찍었는데, 필름을 감고 보니 e100vs였다. 아 내 필름, 눈물이 났다. 정말로- 주변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좋다. 염소들이 지나가고, 소가 풀을 뜯고 있고 그리고 나무와 풀들이 보인다. 좀 더 주위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진료소에 도착하니 몇 환자들이 있다. 오늘은 환자들의 양해를 구하고 환자들의 사진을 찍었다. 세 살 먹은 아이와 같이 온 엄마 그 둘을 같이 찍은 사진. 열 살 먹은 소녀가 다섯 살 먹은 자신의 동생을 데리고 와서 같이 찍은 사진. 이렇게 환자들의 사진도 하나둘씩 내 필름 속에 기억된다.

드디어 Fluconazole을 구했다. 드디어 진균 감염 환자가 왔을 때, topical 제제인 연고만 주는 것이 아니라 경구를 통한 치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가격. 한 알에 2,000원이라니, 한국의 약전과 흡사한 책이 있어서 찾아보니 한국의 5년 전 가격은 50mg, 경구용 제제일 때 2,760원/T라고 했다. 물론 보험이 되면 더 싸겠지만, 한국에서도 비싼 약이다. 이곳은 200mg이기도 하지만 2,000원이라니, 한국에 비하면 싼 것이 아니냐고 말을 하겠지만, 28개들이 짜리 세 박스를 구매한 가격이 대략 1,000란드였다. 대략 이곳 노동자 평균월급이다. 비싸다. 그래도 HIV/AIDS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진균 감염에 사용할 수 있겠지. :)

오랜만에 다시 방문 진료를 갔다. 사실 요즘 센터에서 사용하는 4x4가 고장 나서 2륜 구동 경차를 가지고 이동하는데 그러기에 방문 진료가 쉽지는 않다. 사실 오늘 방문 진료의 주 타겟은, HIV(+)이며 AIDS 상태로 되어버린 환자가 멈추지 않는 설사를 한다고 해서, 걱정된 마음으로 갔다. 근데 문제는 그 도로가 우리의 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차를 멈추고 청진기와 약가방을 들고 내렸다. 반대편을 보니 정말로 아름다운 스와지랜드의 산간지역 그리고 그 사이의 골짜기가 보였다. 아름답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길을 보니 사람만 지나가는 길이 보였다. 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길.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는 길. 그런 길이었다. 상상은 했을까?

다행히 그 길로 들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나왔다. 바로 그 환자다. 아직도 설사하는지 물어보니, 설사는 멈추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근데 영어로 이야기해도, 이 나라 말인 스와찌로 말해도 잘 못 알아 듣는다. 혹시 다른 정신질환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로 이야기를 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결핵약을 오래 복용한 결과 귀가 잘 안 들린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결핵의 기본 치료법인 4제 요법의 약 중에서 간독성 귀 독성이 있는 약들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관찰하면서 약을 투여하지만, 스와지는 그런 것 없이 모든 4제의 약을 한 개의 알약으로 만들어서 60일 치씩 세 번 이런 식으로 나눠주곤 한다. 그렇기에 한 종류의 약을 빼거나 멈추지 못하고 그냥 귀를 잃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 속상한 일이다.

환자는 설사는 멈추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리를 보여줬다. 카포시육종이 보였다. 환자는 말한다. 한쪽 다리가 점점 부어간다고, 그리고 간지럽다고 말이다. 분명히 다리는 부어 있다. 근데 발톱 등은 심하게 무좀균 때문에 침범되어 있고. 발등과 다리조차 진균감염이 의심되었다. 게다가 HIV/AIDS 환자. 내일 환자에게 진료소에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환자는 올 수 있다고 말한다. 진료소에는 KOH도 있고, 현미경도 있고, 슬라이드도 있으니 검사를 해서 균사체를 발견하게 되면 진균치료를 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환자에게 내일 보자고 하며 이별을 고했다.

센터에 도착해서 샤워할 준비를 하니, 문 앞에서 사람들이 막 나를 부른다. 그리고 무언가 갈색의 족구 공만 한 물체를 나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묻는다. "What is this?", 무얼까 궁금해서 자세히 가서 보니, 거북이다. 응 그러니까 자라나 남생이가 아니라 거북- 아프리카 스와지랜드 카풍아 한복판에서 거북이가 나타난 것이다- 색과 모양을 보니 바다거북처럼 보이지는 않고, 책에서 한두 번 읽고 넘겼을만한 사막거북이었다. 그래도 이곳은 사막(!?!)이니까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거북이가 닌자 거북이 되어서 센터에서 살아갈 수 없을 터, 저쪽 수풀이 우거진 쪽으로 풀어주라고 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그 거북을 들고 그 수풀이 우거진 쪽에 풀어줬지만.

무언가 매일매일 한 곳에 빠져서 쉽게 시간이 가는 기분이다. 이번주 주말은 10월 15일이고, 이제 이곳 카풍아에 있을 날이 한 달 반 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적응해서 무언가 할 듯한 그러한 기분이 드는데, 벌써 두 달 반이 지나가다니, 시간이 참 밉게 빠르다. 이곳이 좋은 데 말이다.

조금 있으면 달이 뜰 시간이다. 어제보다 48분 정도 늦게 뜰 테니 달 뜨는 것을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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