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8월 2일부터, 같은 해 11월 25일까지 아프리카 스와지랜드 카풍아 원광 진료소에서 4개월간 의사로 지내온 이호준 입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제가 왜 그곳 카풍아로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과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 그리고 느낀 점들을 나누기 위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저는 의사입니다. 그렇기에 의과대학을 나와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곳 에 들어가기 전에 저에게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7년 전, 2004년 6월 말, 전 남아프리카의 부스터 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3개월 정도를 보낸 다음, 다시 이집트와 수단등에 있으면서 아프리카라는 대륙이 어색하지 않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이었을까요? 그 덕에 의과대학에 있는 6년 내내 계속 아프리카를 그리워하게 되었고, 그렇기에 이번에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아프리카에서의 경험 때문에, 저는 평생 이들을 위해서 또는 이들과 같이 사는 의사가 되겠다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실제로 조금이나마 경험해 보지 않고 그것을 위해서 수련을 받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조금은 어려운 일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의대를 졸업하고, 1년 정도 제가 하고자 하는 일들에 대해 미리 경험해보자 라는 마음을 가지고 카풍아로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카풍아 원광 진료소는 지난 1년간 이곳에 있었던 권준호 라는 기생충학 전공을 하는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를 통해서 이곳을 알게 되었고,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한번 와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이곳을 오려 결정할 때 한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종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이였고, 기독교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그리고 지난 2004년에 1년간 아프리카에 있을 때는 기독교의 선교사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고민들이 있었고, 갈등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도와야 하는 일이라면, 종교보다는 그들을 돕는 것이 더 우선되고 중요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 했기에,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마지막으로 이곳을 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스와질란드는 참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입니다.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전세계에서 가장높은 HIV(사람면역바이러스)의 감염율을 가지고 있고(26%), 가장 낮은 평균기대수명 (37세)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통계수치에서 보이는 데로, 많은 사람들이 HIV에 감염되어있고, 그로인해 상당한 수준의 사람들이 일찍 죽게 되는 그러한 나라입니다.

수많은 HIV환자들이 있습니다. 근데 그들이 건강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한 HIV 때문이 아닙니다. 외국과의 원조 협약등을 통해서 항바이러스 제제들을 먹고 있는 환자들이 많지만, 그 약을 견딜 수 있는 체력과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기에, 굶어죽고 말라가는 환자들이 더 많은 곳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37세라는 짧은 평균수명과, 27% 높은 감염율 때문에, 부모가 동시에 HIV가 환자인 아이들이 많고 그렇기에 그런 아이들은 상당 수 태어났을 때부터 HIV환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HIV때문에 일찍 죽게 됩니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HIV환자로 살아가야 하는 고아환자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그들은 HIV를 예방하지 않습니다. 진료소에 찾아오는 HIV환자들이, 자신이 성병에 감염되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콘돔과 같은 피임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비 감염자와 성관계를 갖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왜 이렇게 높은 비율의 감염이 있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진료소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모두 HIV환자인것은 아닙니다. 준호의 경우처럼 기생충 환자도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일 년에 한번정도 먹는 구충제를 매일 줘야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거의 써본 적이 없는 프라지뗄이라는 약도 여러 번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감염병 환자들을 보고 있자 하면, 아 정말 아프리카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반면에, 만성병환자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선진국병이라고 알려져 있는 당뇨병이나 고혈압 환자의 비율도 높습니다. 사실 이곳 사람들은 설탕을 좋아하기 때문에, 체중이 증가하고, 그로인해서 고혈압과 당뇨는 쉽게 생기게 됩니다. 젊은 시절 HIV로부터 견뎌, 그 삶을 살아남는가 하면, 어느 순간 당뇨, 고혈압 또는 관절염과 같은 만성병질환으로 아파하고 어려워합니다.

많은 수의 스와지 사람들이 이렇게 어려워하고 있는데 정부의 병원은 그렇게 여유로운 편은 아닙니다. 현지병원에서 관리를 받고 있는 고혈압, 당뇨환자들의 경우, 현지 병원의 시설이 열악하기에, 카풍아 진료소로 검사를 받으러 오기도 합니다. 물론 검사뿐만이 아닙니다. 정부병원에 약이 떨어졌기 때문에, 같은 약을 받으러, 또는 카풍아진료소로 담당 의원을 바꾸기 위해서 오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사실 스와지랜드의 비-도시 / 도서 산간지역은 의료시설이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어느 정도 자원봉사 병원에 의지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런 곳에서 저는 무엇을 했을까요?

가장 먼저가 된 것은 그곳 진료소에서 매일매일 환자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적은날은 20명가량에서 많은 날은 50명이 넘는 환자를 보았습니다. 물론 ‘딱 어느 정도다’라고 정해져 있는 숫자는 아닙니다. 그날그날의 날씨에 따라서 환자는 많이 달라집니다. 농번기나, 비가 오는날 추운 날은 하루에 채 10명정도 될듯한 환자를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농빈기이거나, 날씨가 좋고, 그 전주쯤에 날씨가 추웠던 경우는 하루에 50명이 넘는 환자가 와서 정신이 없기도 합니다. 진료소 주변에 마을 회의나 행사가 있다면 그날은 하루 족히 70명은 넘게 봐야한다고 준비해야하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진료소에서 봐야하는 환자들이 있다면 일주일에 한번정도, 너무 멀리있기에, 그리고 환자의 몸 상태가 안 좋기에 진료소를 올 수 없는 HIV/AIDS 환자들을 보러가기 위해 차를 타고 30-40분씩 비포장도로를 타고 더 산골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HIV에 감염되고 결핵에 감염돼 결핵약을 먹다가 귀가 멀고, 간이 망가져, 소리를 잘 듣지 못하고, 복수가 차오르고 다리가 부어있는 안드레아스, 부모가 HIV환자여서 HIV를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고아가 되어 버린, 가난하지만 정이 많이 갔던 센조, 카풍아에서 처음 방문진료를 갔을 때 만났던, HIV에 걸렸지만, 그리고 약을 먹고 있었지만, 그보다 영양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에, 너무나도 말라있었던, 그리고 그래서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던 놈필로까지, 위에 이야기한 세 명이 아니더라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던 방문 진료입니다.

그리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시간이 될때 카풍아가 아닌 다른 무의촌 지역으로 현지정부병원, 의사들과 힘을 합쳐 무의촌 봉사를 가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4명의 의사들과 같이 400명가량의 환자를 보았던 시토벨라 의료봉사와, 카풍아 인근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고산지대에 있는, 수많은 기생충에 감염된 아이들과, 교통수단이 없어 정부병원조차 가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관절염환자를 보았던 마쯔아냐 지역 의료봉사가 있습니다.

4달이라는 시간은 참 짧은 시간이지만, 저에게는 그 어떤 곳에서의 시간보다 값지고 귀한 시간을 보낸 기간 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평생 일을 해야 할 곳일 수도 있는 아프리카를 좀더 깊게 이해 할 수 있는 시간 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내가 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원조와 도움이 아닌 그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원조, 그리고 그들에게 진정 도움이되는 원조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들의 도움에 의지하고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혼자서 일어 날 수 있는 그러한 의미의 원조에 대해서 말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그곳에서의 시간은, 나보다 남을 생각하고,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 이었습니다. 매일의 일과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고 나면, 꽤나 많은 자유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제한적인 공간과 제한적인 자원들인지라, 어떠한 재미있는 일을 하기보다는 책을 읽고, 그리고 그에 따라서 내 자신과 남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그리고 바쁜 한국에서 가지지 못했던 내 자신에 대해서 돌보아볼 수 있는 그러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미 아프리카의 5개나 되는 나라를 다녀왔고, 또 나중에 어떠한 나라에 있게 될 수 있겠만, 이번 2011년의 스와지랜드의 카풍아는 평생 잊을 수 없는, 20대 인생에 가장 값진 순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카풍아에 계신 김혜심 교무님, 황 수진교무님, 도광교무님, 선공교무님 그리고 정명님.  모두들 그곳에서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11.12.13
Evanston, Illinois,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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