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임의비급여로 결국 또 다른 (효과 있을 확률이 매우 희박한) 항암제를 처방하고 말았답니다. ㅠ_ㅠ

이번 주는 환자들을 대하면서 참 힘이 들었습니다. 전이암에 대한 항암화학요법이 발달하고, 제가 주로 보는 대장암의 경우에는 전이병변을 떼어내는 수술을 함으로써 더욱 오래 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완치율 자체가 많이 올라갔다기보다는, 오래 살지만 결국은 돌아가시게 되는, 수명 연장 효과가 주된 것입니다. 전이성 대장암의 평균 (엄밀히 말하면 평균 (mean)이 아니라 중앙값 (median)이지만 쉬운 이해를 위해 평균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수명은 치료를 하지 않았을 때 6~8개월가량입니다. 항암화학치료를 하였을 때의 평균수명은 18~22개월 정도입니다. 요즘은 그것보다 더 오래 사시는 분도 많아졌습니다. 3년, 심지어는 4~5년을 사는 환자들도 꽤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분들이 점차 자신의 상태에 대해 오해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설명 드렸던, 완치가 안 된다는 사실은 어느새 잊습니다. 아니, 알고 있지만 애써 잊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결국 쓸 약이 떨어지고 호스피스를 설명 드리면 받아들이지 못하십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도대체 뭘 위해 이렇게 고생한 거냐고 반문하십니다. 뭘 하다니요. 이제까지 열심히 치료받으면서 여태껏 살아오신 거잖아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라는 생각이 들어 억하심정이 들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고생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환자이기에 참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 꼭 하시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대체요법 같은 것을 많이 권유했지만 저는 선생님 말씀만 따라왔어요. 선생님만 믿고 한눈팔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거라고요."

'그런데 이게 뭐냐, 책임을 져야 할 게 아니냐.' 그런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여기서 멈추시죠. 제가 알아서 뭔가 조치를 취해주기를 바라시는 것이죠. 자신을 이대로 내버려두지 말고 뭐라도 해라, 라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십니다.

오늘은 이런 눈빛을 이기고자 더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요즘은 가급적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도 하면서요.

"제가 환자분 같은 상황을 직접 겪진 않아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주제넘은 것일는지 몰라요. 하지만 이제까지 많은 비슷한 환자들을 보아 온 경험, 그리고 말기 암으로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를 생각하면 제가 환자분이라면 항암치료 받지 않을 거예요. 지금 시간은 너무 소중한 시간이에요. 자신을 위해 쓰세요. 2-3주 간격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며 여기에 종속된 채로 살아가지 마시구요. 의

사들은 대부분 항암치료를 많이 받지 않아요. 결과를 알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죠. 환자분께서 치료를 계속 받고 싶어 하시는 것이, 완치가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아서라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이미 치료를 중단할 기회를 수없이 지나왔고, 그래도 원하셔서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은 그만할 때에요. 항암, 여기서 중단하면 당분간은 훨씬 좋은 몸 상태로 지내실 수 있어요. 당장 암이 몸을 힘들게 하진 않을 테니까 식욕도 나고 피로도 풀릴 거구요."

그나마도 외래 진료가 아니고 입원환자여서 차분히 많은 것을 설명 드렸습니다. 정말로 위에 써놓은 모든 말씀을 직접 드렸습니다. 오늘 찍은 CT를 보여드리면서요. 제 자랑은 아니지만 대학병원 급의 암센터에서 이렇게 자세한 설명을 담당교수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환자가 있나요?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으실 수 있을 정도로 말씀드린 거 아닌가요?

결국 어떻게 했을까요?

저는 임의비급여로 결국 또 다른 (효과 있을 확률이 매우 희박한) 항암제를 처방하고 말았답니다. ㅠ_ㅠ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