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트윗으로 개인문자가 옵니다. '선생님, 저 OOO입니다. 트윗과 블로그로 종종 인사드렸죠? 이번에 기회가 닿아 제주로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혹시 시간되시면 만날 수 있을까 해서 문자 보냅니다.'

그 선생님은 언젠가부터 제 블로그에 종종 방문해서 댓글을 남기곤 하던 분이었습니다. 시골에서 공보의를 하시며 의사들의 블로그 공유사이트 운영에 어느 정도 참여하는 듯 해보이던 분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제 블로그 글을 사이트에 소개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트윗에서도 인사를 나누기 시작하며 종종 실시간 멘션을 주고받기도 하였습니다. 온라인 활동을 하다보면 사뭇 궁금해지는 사람들이 있죠. 궁금하다보면 직접 만나보기도 싶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선생님도 그런 분들 중의 한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마침 제주에 여행을 온다하시고 만나고 싶다 하시니 별다른 일만 일어나지 않아 시간이 허락한다면 저도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죠.

주말저녁 제주에 산다는 친한 지인과 함께 마주선 그 선생님의 모습은 정말 착하고 선한 모습이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아내분과 함께 나란히 서 있는데, 살짝 호리하면서도 착하고 선한 느낌은 부부라 그런지 너무도 닮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앉아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금은 남도의 작은 마을에서 공중보건의를 하고 있고 아내 분은 그 지역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랍니다. 올해가 공중보건의 마지막 해라면서 복무가 끝나기 전 제주에 여행을 가보자 해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공보의 마치면 전공의수련을 시작하거나 전임의로 들어가겠거니 해서 물어보았더니,

음… 인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네요. 서울의 대형병원 인턴으로 합격된 상태라고 합니다.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의사의 직업적 삶에 있어 군의관이나 공보의 시절은 나름 여유가 충만한 휴가와도 같은 시절인데 그런 시절을 마치자마자 시작하는 일이 다른 것도 아니고 지옥 같은 수련의 맨 첫 단추라니… 군의관을 마치자마자 전공의 생활에 뛰어들었던 저도 그 번뇌했던 괴로움에 너무 힘들었는데 이 선생님의 마음을 어떨까… 괜한 걱정과 저의 예전 기억과 감정들이 뒤엉켜 한동안 말없이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외과를 하고 싶었던 저를 흔들던 것은 주변사람들의 만류였습니다. 외과의 수련강도는 외과 선배들조차도 되도록 다른 과를 하는 게 나을 거라는 자조적인 조언을 할 정도로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에 흔들린 저는 다른 과를 지원했지만 거의 합격이나 다름없는 조건에서 '뒤통수'를 맞아 인턴수련을 마치고 결국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의 3년은 제게는 나름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군복무중인 의사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로 가장 편안한 군의관보다도 가장 힘든 공보의가 차라리 낫다는 말이 있긴 한데, 저 역시 군조직의 비효율과 답답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우연찮게 남도의 바닷가로 차출되어 보낸 3년의 시간은 신혼의 삶과 함께 많은 경험과 기회, 그리고 만남을 만들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마치고 다시 외과의 길로 들어서려 했지만, 또다시 주위의 만류에 흔들리게 되었죠.

결정적이었던 것은 제가 후송하던 통합병원에 복무 중이었던 같은 학교 출신이자 외과전문의였던 선배의 한마디였습니다. '지금 내가 앞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을 똑같이 겪고 싶다면 외과에 지원하는 것을 말리지는 않는다.' 이 말에 결국 다른 과를 지원했다가 낙방하고는 제대 후 아르바이트와 또 다른 과 수련을 잠깐 경험해보다가 결국 '누가 뭐래도 외과에 간다'고 결심하고 가을턴 모집에 지원하여 외과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수련시작에 대한 첫 기억은 단연 수술실이었죠. 위암으로 위를 절제하는 수술이었는데, 그 긴장감에 수술중 배가 너무 아파서 중간에 잠시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병동을 돌아보고 미팅준비하고 회진하고 오더수정 및 차트정리를 마친 후 잠시 바깥에 나와 보면 멀리보이는 거리의 사람들은 아직도 출근에 바쁜데 제 얼굴엔 벌써부터 피로가 한가득 섞인 진득한 땀과 기름이 배어나와 있고 붓기가 빠지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서울의 탁한 공기와 번잡함, 자동차 소음… 뭔가 이전의 여유를 잠깐이라도 만나보고 싶어 건물 밖을 잠시 나온 건데도 그럴 수 있을만한 것은 하나도 없고 저는 다시 분주히 수술방으로 들어가거나 병동환자의 드레싱을 챙겨야 했습니다. 이틀에 한번 퇴근하는 삶은 사람을 정말 지치게 만들더군요. 그것도 서울 한복판의 번잡한 도심 한가운데에서 틈새하나 느끼지 못할 만큼의 여유 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심리를 공황상태의 직전까지 몰아붙였습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그나마 시간이 좀 긴 오프를 이용해 거의 무조건 외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아내에게 근무교대시간 맞추어 차를 가지고 오라 해서는 병원 앞에서 바로 외곽으로 달려 나가 시골의 초록과 강물의 흐름을 보아야만 뭔가가 조금 풀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누워서 침 뱉는 일이긴 하지만 의국은 또 얼마나 열악했나요. 각 년차당 2명의 인원이 있어야 할 의국에 3년차 2년차 각 한명씩에 1년차인 저는 형뻘인 선생님과 2명을 다행히 채웠죠. 하지만 맨 윗년차의 행태는 의사로서 최악의 매너였고 시간이 흐르며 들어오는 아랫년차들은 들어오는 족족 매번 수련을 포기하고 도망가기 일쑤였습니다. 의국을 나올 무렵에는 다행히 아랫년차들을 조금 채워 의국에 안정감이 들긴 했지만 저는 3년 반 동안 콜당직도 아닌 이틀에 한번 퇴근하는 대기당직을 꼬박 채워야만 했습니다.

전공의 수련은 나름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제게는 비교적 알찬 수련이긴 했지만, 그 생활을 다시 시작하라면 차라리 의사직을 포기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겪고 싶지 않은 생활이었습니다. 그런 암흑 같은 기억의 시기를 지금 제 앞에 앉은 선하게만 생긴 선생님이 머지않아, 그것도 인턴부터 겪어야 한다니 암담해지기로는 저도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숙소를 물어보니 마침 집 근처라 하네요. 그날 저녁은 지인과 좀 더 다니겠다며 바로 헤어졌는데, 집에 돌아와서도 그 선생님에 대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일요일이었던 다음날 아침, 문자를 넣었습니다. '집근처에 해장하기 좋은 집이 몇 군데 있는데 만나서 아침해장 할래요?' 답이 옵니다. '숙소에서 조식을 먹긴 했지만, 좋습니다.' 전날 만남에서 선물이라며 멸치 한 상자를 건네받았는데 저도 문득 선물로 좋을만한 게 뭐가 없나 급하게 둘러보다가 요즘 제가 즐겨듣는 음반을 하나 꺼냈습니다. 그리고 나름 맛집이라는 곳에서 함께 갈치국을 먹고는 배 시간이 다가오는 항구까지 천천히 걷습니다. 헤어져야 할 지점에서 가지고 나온 음반을 건네고는 그냥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번엔 제주에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내려오셔요. 술 한 잔 살 테니… 그리고 힘들겠지만 그냥 눈 딱 감고 해치우세요."

생각해보면 제가 힘들었던 수련의 시절을 보내는 데에 버틸 수 있었던 힘이 돼 준 것들 중 하나는 군의관 3년 동안 그곳에서 보낸 추억과 만난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련의 생활 중에도 생각나면 종종 연락하고, 휴가 때가 되면 득달같이 달려 내려가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었던 관계, 그리고 내 흔적이 느껴지는 그곳의 풍경들을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수련만 마치면 바로 내려오겠다는 다짐도 하곤 했었죠. 선생님도 그럴 겁니다. 수련을 하다보면 종종 보건소 주변의 밭에 널렸던 양파 줄기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순박한 모습들, 거친 손으로 따뜻하게 건네주시던 먹을거리들이 생각날 겁니다. 관사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사마귀를 잘 가지고 논다며 보건소로 놀러온 아이들이 주머니에서 꺼내던 사마귀들도 생각이 나겠죠. 그런 기억들이 아마도 힘든 수련기간을 버티게 하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 이틀 후 트윗에는 선생님의 맨션이 뜹니다. '그럼 좀 어때…, 한번쯤은 좀 어때….' 이건 제가 건네준 음반에 실린 노래가사였습니다. 보고 있자니 문득 이 선생님, 수련기간 중 제주에서 한번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뭐 어떻습니까. 바닷가에서 소주 한잔 걸치며 호탕하게 웃음 주고받고는 다시 올라가 하던 일 하면 될 것을. 그저 공보의 수련도 마무리 잘 하시고 계획한 수련 무사히 잘 마치시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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