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수술을 마치고 나와서 저녁 8시에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새벽 4시다. 8시간. 신경외과 3년차의 수면시간 치고는 너무 사치스러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무사히 잠만 잤던 것은 아니다. 부재중 전화 12통에 문자메세지 7통, 그 중에 병원에서 온 것이 10통의 전화와 4통의 문자메세지. 1년차가 버티면서 무사히 일 처리를 했기에 망정이지 큰 사고 치를뻔 했다. 일 많은 초저녁에 전공의가 연락두절이라니 얼마전 밤 12시 1년차 선생이 intubation(기도삽관)에 실패했다며 중환자실에서 다급히 걸려온 전화를 자느라 세통째 겨우 받아 중환자실로 달려갔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려보니 간담이 서늘해진다. 최근들어 수술방 재실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체력이 고갈을 넘어 마이너스 수준에 이르고 있다. 도대체 왜이리 피로한 것일까. 피로엔 우루사라는 고향 형님 백일섭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병동 약 보관함에서 몇알 집어 먹어보지만 효과가 없다. 이 새벽 차분하게 책상에 앉아 그 원인을 곰곰이 분석해본다. '설마 어머니가 보내준 홍삼을 먹지 않아서?' 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까지 하는 것을 보니 심신이 많이 지쳐있기는 하나보다.

삼십분쯤 지났을까. 무릎을 '탁' 치면서 나는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C-Arm. 최근들어 허리 수술과 함께 통증 클리닉 환자의 치료를 대부분 전담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C-Arm 방사선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졌다. 문제는 차두리의 간 때문이 아니라 C-Arm에서 나오는 방사선 때문이었던 것이다. C-Arm은 인체 내부의 모습을 실시간 동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영상을 보면서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기기다. 요즘 로컬에서 많이들 하는 신경 통증치료 역시 C-Arm에서 나오는 x-ray로 인체내부를 실시간 관찰하면서 주사바늘을 인체 내부의 목적지에 삽입하고 통증 완화물질을 주입하는 기술이다. 이동형 x-ray 기계를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치료를 받다니, 수혜자인 환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혁신적인 기술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같이 치료에 참여하는 의사나 간호사 입장에서 C-Arm의 사용은 썩 반갑지만은 않다. 한 조사에 따르면 수술 참여자별 피폭선량에서 수술자의 경우 1.49mSv, 제1 조수 0.87 mSv, 소독간호사 0.7 mSv, 마취과 간호사 0.31 mSv, 방사선사 0.05 mSv, 순환 간호사 0.28 mSv로 모두 기준치 5mSv/3mo보다 낮았으며 순환간호사, 마취과 간호사 방사선사의 경우에는 자연 방사선에 의한 피폭선량(<0.5mSv)에 해당하는 결과를 보였다고 한다.



수술자의 입장에서 1.49mSv에 이르는 방사선 피폭량은 자연 방사선에 의한 피폭선량(0.5mSv)의 세배 가까이 되는 수치. 하루 십여명에 달하는 환자를 치료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상당량의 방사선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납으로 구성된 꽤 무거운 하지만 방사선 피폭량을 줄여준다는 Apron(납복)을 입고 시술한다지만 원천봉쇄는 어려운 일이다. 역시 체력 저하의 주범은 방사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은 그렇게도 '모두 너의 트레이닝을 위함이다. 도전해보거라' 라며 먼발치에서 제자의 모습을 훈훈하게 지켜보는 척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스승님의 깊은 속내도 모르고 제자는 감동하여 방사선 노출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에브리데이 환자 치료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대안이 필요했다. 이제 로컬에 나가도 부끄럽지 않는 신경통증 차단 기술도 익혔고, 그간에 치료했던 환자들의 결과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아래년차와 임무 교대하기 전까지 목발이라도 짚고 다닐 생각이다. 건강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지, 간 핑계대는 차두리도, 차두리가 홍보하는 우루사도, 엄마가 강요하는 홍삼도 내 건강을 지켜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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