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고등학교 시절 나의 우상이었던 故 노무현 대통령을 언젠가부터 내 마음 속에서 서서히 지워갔다. 그 이후 흰 가운을 입고 의사 행세를 했던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자살 시도 후 응급실을 찾아온 환자들이 그토록 밉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필시 그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결국 그들이 선택한 그 자살이라는 수단은 세상의 아픔으로부터 자신만 도피하면 된다는 생각, 내가 떠나고 난 뒤 남겨진 가족들, 사람들의 아픔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 행동일 뿐이었다. 이 세상에는 나 뿐이라는 그리고 자살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지극히 이기적이면서 극단적인 이 생각 때문에 그가 살았던 이 세상과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주변 여기 저기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결국에는 그들의 사랑하는 가족들 앞에서 생의 마지막을 알려야 하는 나는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저승사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제발 살려달라 오열하는 그들 앞에서 식어가는 생명의 열기를 되살릴 수 있는 그 어떠한 마지막 몸부림조차 통용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해지고 미워진다.

 집에서 투신했던 한 젊은 여자의 마지막 생을 정리하며 나는 또 다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새기는 악역을 맡을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지켜보는 앞에서 저 아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으로 몸을 던졌던 그녀,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손을 붙들고 있는 힘껏 끌어올렸지만 결국 자식의 비극적인 추락을 목전에서 지켜봐야했던 그녀의 어머니. 이보다 더한 비극은 없었다. 내원 후 곧장 시행한 뇌CT 소견은 앞으로 남은 그녀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벌써 일러주고도 남음이었다. 미친듯이 약을 퍼부어도 오르지 않았던 혈압 그리고 아무리 피를 쏟아 부어도 잡히지 않았던 혈색소. 몸에 존재하는 열린 구멍에서는 미친듯이 피가 쏟아져 나오고,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늘 그래왔던 것처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하늘에 달렸겠지요' 라는 번지르르한 말만 내뱉으며 실상은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그런 무능한 사기꾼 약쟁이를 또 연기해야만 했다.

 적지않은 피 검사가 시행되었고, 수많은 주사가 투여되었다. 어떻게든 살려달라는 가족들의 부탁에 몇시간을 환자 옆에 매달렸지만 이미 죽음의 강을 넘어비린 그녀에게 다시금 생기를 불어 넣어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내가 그녀의 가족들에게 벌어주었던 시간은 고작 12시간. 마지막을 준비하기에는 촉박하고 너무나도 부족했던 그 시간, 하지만 내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며 우는 그녀의 어미니와 동생에게 더한 시간을 벌어줄 수는 없었다. 나도 모르게 새어나왔던 눈물을 꾹 눌러담고 피를 아무리 쥐어짜도 돌아오지 않는 혈압을 멍하니 바라보며 끝내 자살이라는 수단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를 한없이 원망했다. 얼마나 마음의 고통이 심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냐며 가는 길 더한 고통을 줄 수 있는 심폐소생술은 끝내 거부한 그녀의 아버지의 당부대로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마무리 되었다.

'이천십이년 몇 월 몇 일 몇 시 몇 분  *** 환자분 사망하셨습니다.'

 울부짖는 그녀의 가족들을 뒤로한 채 남겼던 유일한 말이다. 퉁퉁 부어버린 두 눈은 감길 필요조차 없었고, 여전히 코와 귀에서는 여전히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환자에 대한 슬픔보다는 그가 자살을 선택한 것에 대한 미움이 더 커져버린 지금, 누군가는 이런 나를 두고 철부지고 이기적이고 심지어 무책임하다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중요하다. 누군가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끔 나든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고 고찰도 필요하다. 경제 문제 때문이라면 먼저 나라를 이 따위로 운영하는 위정자들을 손가락질 해야 마땅하고, 학교 폭력 때문이라면 가해자와 그들을 제대로 관리 못한 학교 선생, 나아가 개판 오분 전의 교육 시스템을 만든 책임자부터 비난해야 마땅하다. 자살을 유도하는 혹은 선택할 수 밖에 없게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겨누어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이전에 적어도 자살을 선택한 그들과 그들의 가족 사이에서 오가며 그 아픔을 함께 경험하고 고뇌할 수 밖에 없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살을 선택한 그들이 먼저 미워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아직도 내 마음은 아직도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일런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