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대한민국에서 신경외과 전공의로 산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권익 따위에는 관심을 가질 겨를조차 없었다. 여성부가 신설되고 난 후, 우리 사회에 여풍(女風)이 불어 닥칠 때에도 여성이 남성위주의 문화에서 여성스러움 혹은 아름다운 꽃 이라는 상품적 가치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개인의 기본적 능력과 잠재력을 통해 공정하게 평가받고 대접받는, 나아가 그들 스스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적 변화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대적 조류에 별 관심 없이 여성은 그저 성(性)의 한 분류일 뿐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이 지난 날 내 모습이었다.

이런 내게 변화의 바람이 찾아온 것은 본격적으로 의사 일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산부인과 인턴으로서 병동과 수술방을 오가던 그 시절에 만났던 한 삼십대 중반의 여성. 임신중독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태아를 포기해야만 하는 위험한 상황까지 직면했지만 끝내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임신 지속 시 위험성과 함께 부득이하게 태아를 포기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수차례 설명했지만 결국 의료진과 가족도 그녀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고, 위험을 감수한 채 임신과 출산이 진행됐다. 다행스럽게도 아이와 산모 모두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었고, 이후 중환자실에서 며칠을 보낸 후 건강하게 퇴원했다. 자신의 생명까지 담보로 한 채 출산을 진행해야 했을까, 처음에는 어리석다 생각했다. 하지만 응급 제왕절개술을 마치고 난 후 그녀의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면서 이 세상 모든 여성, 그리고 어머니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전 한 유방암 환자가 두통 때문에 촬영한 뇌 MRI에서 전이 소견이 보인다며 신경외과로 협진이 의뢰됐다. MRI 소견은 낭성 전이성 종양이 의심되는 상태, 낭 속에 들어있는 종양액을 배액하고 방사선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만일 방치한다면 부종이 심해져 전방의 뇌간을 압박해 자칫 생명까지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대개 유방암은 치료 성적이 좋은 암으로 알려져 있는데다가 환자의 경우 전신 항암치료에 저항성을 보여 더더욱 뇌 전이 병소에 대한 조속한 치료가 필요했다.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했던 아주머니는 수술하자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남편과 자식을 먹여 살려야하기에 수술은 못하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아주머니를 교수님까지 나서서 반강제적으로 설득해 수술을 결정하게끔 만들었다. 단, 수술 결정에는 조건이 몇 가지 붙었다. 시간이 소요되는 전신 마취는 하지 말 것과 수술 후 이틀 내에 퇴원시켜줄 것. 적어도 세 시간 이상 진행될 수술을 국소 마취로 진행할 경우 수술 진통뿐만 아니라 환자 스스로가 그 공포를 견디지 못할 것이며, 수술 후 이틀은 상처관리도 제대로 마무리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결정이었지만 눈앞에 난 불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마지못해 아주머니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기로 했다. 어머니라는 이름 때문에 자신의 건강보다는 가족의 생계를 먼저 걱정해야만 했던 정말 말도 안 되고, 너무나도 안타까운 환자였던 것이다.

지난 달 병동 간호사들과 함께 불시에 인천 월미도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저녁이나 한 끼 하려고 자리를 마련했지만 그 자리에서 한 간호사의 모습이 안쓰러워 급 결정한 그녀 나름의 일탈이었다. 결혼 2년째에 접어든 그녀는 3교대 근무를 마치고 나면 집에 가서 오로지 애보고, 잠자고, 밥 차리는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답답해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일주일에 두 번 찾아오는 소중한 오프인데다가 대학원 수업까지 있는 날이었지만 과감하게 하루 저녁을 희생하기로 했다.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와서 애 재우라는 전화 한 통을 시작으로 일탈은 시작됐다. 또한 곧 있을 결혼식 때문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근무를 앞 둔 두 명의 간호사가 그 일탈에 동행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장시간의 수술 통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지만 이 땅에서 여자 그리고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희생당해야만 하는 그녀의 잠깐의 일탈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 시간 남짓을 달려 월미도에 도착했고, 이후 철부지 어린이들처럼 놀이기구도 즐기고, 폭죽도 터뜨리고, 스티커 사진도 찍고, 조개구이도 먹었다.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대로를 질주해보기도 했고 이런 저런 수다도 잔뜩 주고받았다. 여자라서 그리고 어머니라서 희생을 강요당해야만 했던 그녀들에게 즐거운 일탈이 됐는지 모르겠다.

미혼 시절을 지나 결혼을 하고 나면 대한민국 여성들은 대부분 육아와 가사를 떠안게 된다. 아직도 주요 포털에서는 남녀평등과 차별이라는 테마를 두고 논쟁이 끊이질 않으며, 연인들은 결혼을 앞두고 대부분 가사와 육아의 분담을 놓고 토론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고스란히 여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시댁이나 친정의 도움 없이는 일하는 여자가 그 모든 일을 혼자서 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은 '훌륭한 워킹우먼 + 나쁜 아내, 며느리, 엄마' 또는 '평범한 워킹우먼+ 보통 엄마 + 불량아내'의 조합으로 근근이 살아가며 직장생황과 자녀양육, 가사살림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 여기에 가난이라는 테마가 결부되면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중 그 어느 것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는 현실을 깨닫고, 그 때문에 누군가는 아픔을 겪기도, 또 누군가는 자아를 잃어버리고 헤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답답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돌파구는 무엇일까. 독립정신을 가져라? 의지를 갖고 대항하라? 프로가 되라? 이런 뻔한  대답 말고 정말 현실적인 답안은 없는 것일까. 벌써 몇 년 째 환자를 마주하고 간호사들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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