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질문] 몇 분간의 면담으로 한달에 1000만원을 기꺼이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판단해 낼 수 있을까

①  옷차림을 보고 판단한다.
②  직업을 물어보고 판단한다.
③  사는 동네를 보고 미루어 짐작한다.
④  몇평짜리 아파트에 사는지 물어본다.
⑤  직접적으로 한달에 1000만원을 부담없이 쓸 수 있냐고 물어본다.

얼핏보면 황당하고 어이없는 질문 같지만, 천만원짜리 신약이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질문은 이제 종양내과 의사들에게 직면한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암이 줄어들 확률 70~80%,
-부작용 거의 없음.
-완치 목적 아님.
-약이 듣는 기간동안 생명이 연장됨.
-이 약으로 효과가 있으면 1년이든 2년이든 효과 있는 기간동안 계속 사용하게 됨
-보험적용: 당연히 안됨
-1년 사용하게 되면 1억2천 소요


담당의사:
환자분의 유전자 유형을 분석해보니, 효과가 좋고 부작용은 거의 없는 항암제가 있는데, 가격은 비쌉니다. 한달에 천만원 정도 하는데 이 항암제를 한번 써보시겠습니까? 완치 목적은 아닙니다.

담당의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암환자와 가족분들은 어떤 느낌이 될까.

암에 대한 분자 생물학적인 이해도가 높아지고, 유전자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면서, 타겟항암제를 비롯한 각종 항암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효과는 좋고 부작용은 적다. 머리도 안빠지고, 별로 힘들지도 않으면서 하루 한두번 혈압약 먹듯이 먹으면서 일상생활도 다 가능하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매우 좋은 소식들이고, 암환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약들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비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갈수록 임상시험에 대한 규제 (regulation)는 강화되고 있고, 임상시험을 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늘어나고 있다. 약이라는 것이 원래 원가는 얼마 안되지만, 연구개발비가 많이 들게 되어있고, 연구개발비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연구개발비 상승은 고스란히 신약의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기업의 본질은 이윤추구이다. 제약 회사 광고를 보면 신약개발을 통해 인류를 건강하게 만들고, 사람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제약회사도 이윤추구를 목표로하는 기업이다. 아무리 인류를 건강하게 만드는 거창한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손해보는 일은 안한다.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윤추구가 나쁘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건전한 이윤추구의 동기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손해보는 짓은 안한다. 공익을 위하여 누군가에게 손해를 보라고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좋은 항암제가 있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다 그러면 그 돈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

1) 환자 본인의 건강을 위하는 행위이므로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것이 맞다
2) 암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위한 일이므로 국가나 사회가 부담하는 것이 맞다.
3) 누가 부담해야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환자인 나는 어쨌거나 싼 가격에 그 약을 쓰고 싶다
4)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암환자 치료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서, 내가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싶지는 않다.
5) 폭리를 취하는 제약회사가 나쁘므로 제약회사에게 행정조치를 취하여 약값을 강제로 내리도록 규제한다.

암환자 진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이는 국가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모두 겪고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니 암환자가 늘어나고, 예전에 마땅한 치료법이 없던 시절에는 쓸 약도 없었으니 의료비가 문제되지 않았지만, 점차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약이 나오고 의료비가 상승하고 있다. 암치료 성적이 좋아지니 계속적인 치료를 받는 환자가 늘어나게 되고, 환자들의 기대수준은 높아지면서, 최고의 진료를 받기 원한다.

이에 따른 비용문제는 어떻게 해야할까. 한사람의 암환자를 1년 살리는데 드는 비용이 1억이라고 하면 이 비용을 국가나 사회가 부담해 주는 것이 타당할까? 아니면,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쓰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수 있고 의료보험 재정이 고갈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므로 1억은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타당할까?

단일의료보험 수가로 묶여있는 우리나라에서 모든 의료 수가나 비용의 문제는 국가의 통제하에 묶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안타깝게도 정부에서는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거나 내지는 모른척 하고 있는 것 같다. 버티면 어떻게든 되겠지. 내 임기중에만 문제되지만 않으면 되겠지. 이런 생각인 것 같다. (물론 정부에서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여러 정책이 준비중이겠지만, 최일선에서 환자 진료를 보는 의사 입장에서 체감할만한 아무 변화가 없어서 필자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의료비 상승 부분이 문제될때마다 나오는 것은 약값 강제 인하조치, 수가인하 (그나마 저수가인 수가를 더 깎는다), 건강보험료 약간 올림 (직장인들의 표 때문에 건강보험료를 많이 올리지는 못한다). 이런 정책뿐인듯 싶다. 최근에는 포괄수가제 도입 이라는 우리 실정에서 잘 맞는지 모를 제도까지 졸속으로 생겨났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런 것들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의료비를 묶어 두고자 하는 잠깐의 꽁수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진료비가 얼마나 늘어나고 있는지, 왜 늘어나고 있는지, 국민 소득을 감안해볼 때 바람직한 의료비 수준은 얼마가 적정인지 이런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즉흥적으로 의료현실을 무시하고 탁상행정으로 펜대 굴리면서 나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는 한데, 개인적으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만족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던간에 사회에 컨센서스를 모아 나가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하는 일이다. 이해당사자들간의 의견을 조율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발전을 모색하는 일. 필요하면 돈을 더 걷고, 걷힌 돈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일. 여기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감기치료에 들어가는 재원을 암치료로 돌린다던가, 건강보험료를 올리던다, 담뱃값을 올려서 건강보험료 재원으로 확보하던가, 아니면 다른 세금을 건강보험료로 사용하던가.

천만원짜리 항암제를 권하는 의사가 나쁘다던가, 비싸게 약값을 받아 챙기는 제약회사가 나쁘다는 식으로 몰아 세워서, 의사-환자 관계를 이간질 시키고, 나몰라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포괄수가제 논란이나,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도를 보면 여전히 씁쓸하다. 기름값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세금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기름값이 비싸다고 정유사들을 몰아세우며 정유사들의 이기주의로 몰아봐야, 근본적인 해결은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출산이 국가적인 문제라면서 출산지원금 몇십만원 주면 출산률이 올라갈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근본을 건드리지 않아서 그렇다.

이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합의에 입각한 근본적인 대책이 좀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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